▲11일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열린 하나은행 2024~2025여자프로농구 플레이오프 5차전 부산 BNK 썸과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의 경기. BNK 박정은 감독이 작전타임 때 선수를 격려하며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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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 감독이 이끄는 여자프로농구 부산 BNK 썸이 '끝장승부'에서 용인 삼성생명을 물리치고 2년 만에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성공했다.
11일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열린 하나은행 2024~25 여자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PO·5전 3승제)' 5차전 홈 경기에서 정규리그 2위 BNK가 3위 삼성생명을 70-58로 제압했다.
앞서 1, 2차전을 잡았던 BNK는 이후 내리 삼성생명에 두 경기를 내주며 '업셋'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5차전에서 에이스 김소니아의 20점 14리바운드 맹활약으로 더블-더블을 기록한 것을 비롯해, 이소희(15점), 안혜지(10점 8어시스트), 이이지마 사키(12점), 박혜진(11점) 등 무려 5명의 선수가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는 고른 활약에 힘입어 중반 이후 큰 위기 없이 완승을 거뒀다.
넘지 못한 '우리은행', 이번에 다시 만난다
유난히 저득점에 접전 양상으로 진행된 이번 4강 PO 시리즈에서, BNK는 5차전에서 최초로 70득점 고지를 넘기며 이번 PO 팀 최다 득점, 최다 점수차(12점) 기록을 달성했다. 정규리그 상대전적에서 삼성생명에게 2승 4패로 밀렸던 아픔도 설욕했다.
BNK의 챔피언결정전 진출은 2022-23시즌에 이어 역대 2번째다. 당시 BNK는 정규리그와 챔프전 모두 아산 우리은행의 벽을 넘지 못하고 2등에 만족해야 했다. 특히 챔프전에서는 3전 전패로 한 경기도 이기지 못하고 완패를 당했다.
공교롭게도 이번에도 상대는 우리은행이다. BNK는 2024-25시즌 정규리그에서 우리은행과 선두 경쟁을 펼쳤으나 결국 2게임 차이로 1위를 내줘야 했다. 3년 연속 우승을 노리는 우리은행은 4강전에서 KB와 역시 5차전까지 가는 혈전을 치른 끝에 4년 연속 챔프전 진출에 성공했다. 창단 첫 우승을 노리는 BNK에게, 우리은행은 반드시 넘어야만 하는 마지막 관문이다.
BNK를 이끄는 박정은 감독 역시 '여성 감독 첫 챔프전 우승'이라는 신화에 다시 도전하고 있다. 한국 여자농구의 레전드인 박 감독은, 용인 삼성생명의 '원클럽맨' 출신으로 2013년 현역에서 은퇴한 후, 친정팀에서 수석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18년에는 WKBL에서 경기운영본부장을 역임하며 행정가로서도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박정은 감독은 2021년 3월 BNK의 2대 사령탑으로 전격 선임되며 커리어 첫 감독 경력을 시작했다. 박 감독은 BNK의 연고지인 부산 출신으로는 최초의 여성 사령탑이기도 했다.
사실 박 감독이 부임할때만 해도 성공 가능성에 대한 기대는 그리 높지 않았다. 2019년 여자농구 제6구단으로 창단한 신생팀이었던 BNK는, 당시 무명 선수들로 구성돼 창단 두 시즌간 5-6위에 그친 최약체팀이었다.
'여성이자 스타 출신 감독'에 대한 보이지 않는 선입견도 부담이었다. WKBL은 여성 프로스포츠 리그라는 정체성이 무색하게 정작 여성 감독의 비중이 낮았고 성공사례도 사실상 전무했다.
박정은 감독보다 선배인 전주원 전 국가대표팀 감독(현 우리은행 수석코치)도 정작 프로무대에서는 아직 감독을 맡아보지 못했다. 박 감독의 전임자이자 BNK의 초대 감독이었던 유영주 전 감독도 여자농구계의 레전드 출신이었지만, 지도자로서는 결국 이렇다 할 성과를 남기지 못하고 성적부진으로 사퇴했다.
당시 BNK 내부에서도 후임으로는 검증된 남성 감독을 영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고심 끝에 또다시 여성 감독이자 초보 사령탑인 박정은 감독을 선택한 것은 '모험수'에 가까웠다.
여성 감독 향한 선입견, 실력으로 불식시키다
▲11일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열린 하나은행 2024~2025여자프로농구 플레이오프 5차전 부산 BNK 썸과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의 경기. BNK 김소니아와 박성진이 동료들에게 수비 강화를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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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박 감독은 성과로서 증명해내며 자신과 여성 감독에 대한 선입견을 보란듯이 불식시켰다. 박 감독은 첫 풀시즌이었던 2021-22시즌 4위로 구단의 창단 첫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이어 2022-23시즌에는 정규리그 2위를 기록했고 플레이오프에서는 친정팀 삼성생명을 격침시키며 구단 역사상 최초의 PO 승리와 챔프전 진출및 역대 최고성적 경신, 여성 감독 최초의 챔프전 진출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박 감독은 성과를 인정받아 구단으로부터 3년 재계약이라는 선물도 받았다.
하지만 2023-24시즌에는 6승 24패로 최하위(구단 역사상 2번째)까지 추락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김한별(은퇴)이 부상으로 이탈하며 구심점이 흔들렸고, 구단의 긴축 운영으로 인한 투자 감소와 프런트 내부 갈등이라는 악재까지 겹쳐 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2024-25시즌 BNK는 절치부심하고 대대적인 재정비에 나섰다. 팀의 주축이던 진안, 한엄지, 김한별 등이 은퇴와 이적으로 팀을 떠나고, 이적생인 베테랑 김소니아와 박혜진을 중심으로 선수단이 대폭 물갈이 됐다. 여기에 아시아쿼터로는 전형적인 3&D자원인 이이지마 사키를 영입하여 외곽과 수비를 보강했다.
지난 시즌 최하위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재신임을 받은 박 감독은 2024-25시즌 정규리그에서 이전 시즌보다 무려 +13승을 거두며 팀을 6위에서 2위(19승 11패)로 끌어올리며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4강전에서는 또다시 자신의 친정팀인 삼성생명과 명승부 끝에 승리하며 2년 만에 다시 챔프전 무대를 밟는 기쁨을 누렸다. 변칙적인 압박수비와 센터 없는 스몰라인업 가동 등, 유연한 경기 운영을 보여준 박정은 감독의 전술적 성장도 돋보였다.
BNK는 사실상 선수단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OK 저축은행이나 KDB 생명 시절의 역사를 계승하지 않은 신생팀이기에, 과거의 우승 기록은 반영되지 않는다. BNK는 2019년 이후 창단 6시즌 동안 3번의 플레이오프 진출과 2번의 챔프전 진출을 이뤄냈는데, 이는 모두 박정은 감독 시대에 이뤄낸 업적이다. 박정은의 감독 경력이 곧 BNK의 성장기라도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이제는 어지간한 남성 베테랑 감독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명장' 위성우 감독 뛰어넘을 수 있을까
박정은 감독에게 남은 미션은 여성 감독 최초의 WKBL 우승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WKBL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는 위성우 감독을 넘어야 한다.
우리은행은 올시즌까지 통산 정규리그 우승 15회, 챔프전 우승 13회를 달성한 최고의 명문구단이다. 이중 2012-13시즌부터 9회의 우승이 모두 위성우 감독 시대에 이룬 성과였다.
위성우 감독은 현재 WKBL 포스트시즌(36승)과 챔피언결정전(24승) 양대부문에서 모두 최다승 감독이기도 하다. 그는 챔피언결정전에 9번 진출해 8번 우승을 거머쥐었다. 유일하게 챔프전에서 패한 것은 2021-22시즌 당시 박지수가 이끌던 KB가 3전 전패로 무너진 것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BNK도 첫 챔프전이었던 2년전과는 상황이 또 달라졌다. 당시에도 우리은행과 BNK는 각각 정규리그 1, 2위를 차지했지만, 8게임차나 날 정도로 전력차가 뚜렷했다. 하지만 올시즌에는 불과 2게임 차로 줄었고 양팀간 맞대결 전적은 3승 3패로 호각세였다. 또한 2년 전에 비해 BNK도 감독과 선수단의 큰 경기 경험이 쌓인 상태다.
남자프로농구인 KBL에서는 전희철-허재-문경은-김승기 등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챔프전 우승을 차지해본 사례를 다수 배출한 바 있다. 하지만 WKBL에는 아직 전무하다. 박정은 감독이 '끝판왕' 우리은행마저 넘어서 한국 여성 스포츠 감독의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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