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열린 다큐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 기자간담회에서 국극인 조영숙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11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열린 다큐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 기자간담회에서 국극인 조영숙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75년. 여성국극 1세대 조영숙 선생이 외길인생을 걸어온 시간이다. 1950년대와 1960년대 크게 흥행했던 영광의 시절을 뒤로하고 그는 사비를 털어가며 극의 명맥을 이어가려 했고, 제자들을 키워왔다.

1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언론에 선공개된 <여성국극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하다>엔 여성국극이라는 장르로 하나가 된 1세대와 3세대 예술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창극의 한 종류이자 여성 단원이 중심이 된 여성 국극은 지난 2024년 10월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정년이>로 한층 대중에게 가까워졌다. 2019년 4월부터 연재된 웹툰을 기반으로 한 해당작품은 합숙 생활을 하며 한국의 전통 춤과 판소리, 구전 설화가 어우러진 종합 예술을 극적으로 묘사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올해로 93세인 조영숙 선생이 바로 배우 김태리가 연기한 정년이의 실제 모델이다. 그리고 그 곁에서 명맥을 잇고자 20년 넘게 그의 사사를 받는 박수빈·황지영은 여성국극제작소를 설립했고 2024년 안산문화재단에 의하 상주예술단체로 선정됐다. 영화는 박수빈, 황지영이 주축이 돼 1세대 국극 예술인부터 3세대가 한데 모여 <레전드 춘향전>을 여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일본·중국에도 있는 여성국극, 한국만 명맥 끊기려 해"

판소리 다큐멘터리 <수궁>(2023)에 이어 여성국극에 주목한 유수연 감독은 "<수궁> 속 주인공인 정의진 선생이 30년간 경력단절로 힘들어 할 때 그를 설득해 무대에 올린 분이 바로 조영숙 선생님이셨다, <수궁>을 만들며 여성국극을 처음 접했다"며 "제가 국악이나 전통문화 전공자는 아니지만 사라져가는 어떤 것들을 지키려는 사람들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그걸 지키려는 여성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번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수빈과 황지영은 여성국극과 함께 뮤지컬 등 여러 무대 연기를 하는 배우기도 하다. 박수빈은 "조영숙 선생님을 조명하고 싶다는 감독님 말씀에 감격했었다. 혹여나 도중에 무산될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무사히 개봉하게 됐다"며 "여성 국극 현장에 있는 우리가 더욱 진지하게 임할 수 있는 계기였고, 대중적으로 더 친근하게 소개해주는 의미도 있어 감사하다"고 운을 뗐다.

이어 박수빈은 "웹툰도 그렇고, 드라마 <정년이>의 존재도 너무 감사하고 재밌게 봤다. 여성극이 한국뿐 아니라 일본, 대만, 중국 등 동아시아 전반에 존재했던 건데 우리 국극만 명맥이 끊기려고 한다"며 "문화적 가치를 떠나 1950년대 1960년대에 여성국극이란 장르가 있었고, 우리 공연 예술에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주목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여성 국극은 한국 최초의 창작 뮤지컬의 성격도 갖는다. 중국에선 월극, 대만 가자이, 일본엔 다카라즈카라는 여성극 장르가 존재한다. 영화에선 박수빈·황지영이 일본 다카라즈카 공연을 직접 보고 부러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큰 철도 회사 지원으로 2천석 규모의 공연장에서 상시 공연을 하는 데 비해 한국의 여성 국극은 명맥을 걱정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

황지영은 "월극은 문화유산으로, 다카라즈카는 상업화된 공연으로 이어지는데 여성 국극은 과도기에 있다"며 "드라마나 웹툰 덕에 주변에서 제가 여성 국극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다시 언급되기도 했다. 작품으로 기억되는 것도 좋지만, 여성 국극이 탄탄한 기반을 가질 수 있도록 연구가 되는 계기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11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열린 다큐 기자간담회에 유수연 감독(왼쪽부터), 국극인 조영숙, 황지영, 박수빈이 참석하고 있다.
11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열린 다큐 기자간담회에 유수연 감독(왼쪽부터), 국극인 조영숙, 황지영, 박수빈이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

조영숙 선생은 "1950년대에 다카라즈카를 보러 견학간 적이 있다. 우리 국극과 다른 건 거긴 기업 후원에 기숙사 생활을 하며 서른살이 넘으면 퇴단시킨다"며 "다카라즈카가 서양음악도 하는 등 일종의 오페라에 가깝다면 우리 여성 국극은 순수 국악만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조 선생은 "1951년부터 했으니 제가 75년 외길 인생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중요한 문화재임을 느꼈기에 고난을 무릅쓰고 영화 제목처럼 끊어질 듯 하며 유지되도록 피나게 노력했다"며 "음악, 판소리, 무용, 재담이 있는 종합 예술인데 나라에서 너무 몰라준다. 우리 (1세대) 책임이 크다. 그럼에도 그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포기 못하겠더라. 악착같이 물고 늘어졌다"고 했다.

조영숙 선생은 국가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 예능 보유자로 등록돼 있다. 그는 "내가 국가유산이라지만 얼마 전까지 사글세를 살았다. 여성 국극을 한다고 버티다 보니 빈털터리가 됐지만 우리나라 백성이니 그걸 지켜내야 했다"며 "유명한 소리꾼 딸인데, 내 DNA도 어쩔 수 없더라. 하지만 내 개인 보다 문화 예술을 위해 노력하는 많은 후배들을 위해 더욱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간절한 바람을 드러냈다.

영화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는 오는 19일 개봉한다.
여성국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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