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딩턴: 페루에 가다!> 스틸컷소니픽처스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패딩턴' 시리즈가 8년 만에 돌아왔다. 2014년과 2017년에 나온 1, 2편의 후속작인 <패딩턴: 페루에 가다!>는 편수를 알리는 숫자 대신 부제를 붙이는 등, 전편과의 차별화를 위해 고군분투한 흔적을 숨기지 않는다. 그런 <패딩턴: 페루에 가다!>는 어떻게 기존 시리즈에 잘 녹아들면서도 자신만의 특색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
없는 건 없다고 하기
<패딩턴: 페루에 가다!>는 제작 과정부터 난항을 겪었다. 시리즈의 기반을 다져 온 폴 킹 감독이 티모시 샬라메 주연의 <웡카> 시리즈에 집중하기 위해 하차했고, 두 전작에서 주인공 '패딩턴'의 든든한 조력자 역을 맡아 주던 '메리 브라운' 역의 샐리 호킨스도 지병으로 하차했다.
그 빈자리를 꿰찬 것은 기후위기 현상에 대한 지적을 담은 단편영화 <노 프레셔>(No Pressure)로 이름을 날린 두갈 윌슨 감독과 <노팅 힐>, <휴고>등 다양한 작품에 조연으로 등장한 에밀리 모티머다. 이 둘은 < 패딩턴 2 >와 <패딩턴: 페루에 가다!> 사이의 간극을 없는 것 취급하는 대신, 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두갈 윌슨 감독은 폴 킹 감독의 동화적인 상상력을 이어가지는 못하지만, 대신 고전 영화에 해박한 자신의 특성을 십분 활용해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올리비아 콜먼이 맡은 '원장 수녀'가 페루의 들판에서 노래를 부르며 패딩턴 일행을 환영하는 장면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의 오마주이며, 액션을 통해 웃음을 선사하는 슬랩스틱 장면들은 무성 영화 <스팀보트 빌 주니어(1928)> 속 버스터 키튼의 스턴트를 차용하는 등 고전적 장면들이 적극적으로 재창조된다. 장편에 있어서 본인만의 스타일이 부족한 두갈 윌슨 감독이 이에 대한 대처법을 찾아낸 것이다.
배우 교체 역시,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작품 속에서 유기적으로 처리된다. 2편과 <패딩턴: 페루에 가다!> 사이의 시간이 길어진 만큼, 시리즈 속 주·조연이 전부 성장했다는 설정을 추가하면서 캐릭터의 외모에 변화가 생겼을 수도 있다고 여기도록 만든 것이다.
에밀리 모티머는 샐리 호킨스의 바통을 이어받아 자상하면서도 여전히 어딘가 엉뚱한 메리 브라운의 역할을 깔끔하게 수행해 냈고, 시리즈의 전작에서부터 메리의 자식들 역할을 맡았던 배우들도 이를 자연스럽게 보조해 준다. 샐리 호킨스 배우의 개인적인 팬이라면 아쉬운 마음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배우와 별개로 시리즈의 유기적인 연결성만을 중시하는 관객이라면 어떤 어색함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문화적 편견 유쾌하게 비틀기
이뿐만 아니라, <패딩턴: 페루에 가다!> 제작에는 또다른 난제가 주어졌다. 바로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는, 본작의 주 무대가 될 페루를 어떻게 다룰지에 관한 문제였다.
서양 영화 제작사들은 항상 남미권 국가를 영화 속에서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다. 원주민들을 '야만의 대상'으로 설정해 스페인 침략자들을 선하게 묘사하여 지적받기도 했고, 원주민들을 '선한 사람'으로 여겨도 그들의 발달한 고대 문명에 외계인의 도움이 있었다고 치부하는 등 문화적 편견을 강화해 온 것이다. 이러한 경향성은 2008년 영화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을 비롯해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중후반까지도 이어졌다.
<패딩턴: 페루에 가다!>는 과거 영미권 영화들의 과오를 직시하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스튜디오에서 '이국적인' 풍경을 재현해 내는 대신 페루의 리마, 마추픽추 등에서 직접 영화를 촬영한 것은 물론이고, 과거의 작품들을 유머러스하게 반성하는 모습도 보인다.
작중 악당인 '헌터 카봇(안토니오 반데라스 분)'은 페루에 숨겨진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를 찾기 위해 그곳의 숨겨진 문을 열 수 있는 패딩턴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영화는 중후반까지만 해도 이 전설을 식상하게 재활용하는 듯하나, 결말 부분에서 웃을 수밖에 없는 반전을 제공한다. 실존하는 엘도라도의 보물은 진짜 금이 아니라 '금빛 마멀레이드'였다고 밝힌 것이다.
마멀레이드는 시리즈 내내 패딩턴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그의 소박한 삶에 대한 사랑과 가족 사랑을 상징하기도 한다. 본작은 그러한 마멀레이드를 식민지배적인 전설의 반전 요소로 사용해 문화적 편견을 유쾌하게 비튼 것이다.
이처럼, <패딩턴: 페루에 가다!>는 작품 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기발한 재치와 깔끔한 완성도로 전작에 못지않은 영화로 거듭났다. 동시에, 소재의 한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시리즈뿐 아니라 서구 영화계 전반의 떳떳하지만은 못한 과거 행보를 익살스럽게 지적하기도 한다. 사회운동에 적극적이던 두갈 윌슨 감독의 성향을 생각해 보면 이 역시 지극히 의도적인 행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모험 영화가 필요하다면, <패딩턴: 페루에 가다!>를 관람하면서 비영미권 국가를 영화 속에서 다루는 방식의 차이에 주목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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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픽션 신봉자. 이야기가 가지는 힘을 믿고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