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초혼, 다시 부르는 노래>의 한 장면.
커넥트픽쳐스
민중가요가 위로가 되고 힘이 되던 시기가 있었다. 대학교 교정에서든 노동 현장에서든 이 노래를 배우고 구전하며 함께 거리에서 투쟁하던 이들은 기성세대가 됐고, 공교롭게 지금 대한민국에선 또다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 나오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케이팝이 그때의 민중가요처럼 거리에 울려퍼지고, 이젠 기성세대가 그 케이팝을 배워 함께 노래하는 이 시기에 영화 <초혼, 다시 부르는 노래>는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10일 서울 건대입구 롯데시네마에서 언론에 공개된 영화는 단순히 과거의 소환 내지는 민주주의 위기 시대를 한 번 더 깨우치려는 계몽적 역할에 그치지 않고 있었다.
1992년을 배경으로 영화는 대학 내 민중가요 동아리 들꽃소리 학생들의 해맑은 모습과 삼형공업 노동자들의 거친 현실을 교차해 보여준다. 서로 독립돼 보이는 두 그룹은 어느새 임금 체불과 부당해고 이슈로 노동자들이 연대를 요청하며 하나로 묶이게 되고, 현장에 뛰쳐나가 노래로 응원하던 대학생들과 이에 화답하며 투쟁을 이어가던 노동자들이 백골단에게 무참하게 폭행당하는 사건으로 번지게 된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중심 축 중 하나가 안온한 환경에서 자란 민영(김정연)이다. 목사였던 부친이 광주 사역 중 사망한 아픔이 있는 인물인 그는 대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사회 문제나 이념 문제와는 거리가 먼 존재였다. 노래를 좋아했고, 무대에서, 사람들 앞에서 신나게 노래하는 선후배들의 모습에 매료돼 우연찮게 들꽃소리 동아리에 들어가게 된 민영은 애써 보지 않았거나 외면했던 비참한 사회 곳곳의 현실을 마주하며 각성하게 된다.
검찰과 정치인, 그리고 일개 자본가의 유착, 폭력 시위로 매도하며 폭압적으로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을 진압하는 군경 등 이미 익숙한 갈등 구조가 도식적으로 제시되긴 하지만, 영화의 진짜 힘은 장면 중간중간 등장하는 노래에 있었다. 누군가에겐 분명 낯설고 생소할 수 있는 민중가요가 당시 시대상에 재현되며, 지금의 내란 사태 국면과 정확하게 대구를 이룬다.
"민주주의 뛰어난 한국, 그 중심엔 이름 모를 시민들 있었다"
연출을 맡은 조정래 감독은 이미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인 <귀향>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영화로 소환한 바 있다. 국악을 좋아했고 본인 또한 고수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어 <두레소리>나 <소리꾼> 같은 우리 음악 자체를 소재로 한 영화를 내놓을 만큼 음악에도 큰 애정이 있어 보인다.
가상의 동아리, 가상의 노동현장 사건을 가져왔지만 곳곳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실제 우리 현대사에서 비극처럼 스러져간 존재들을 토대로 했다. 다큐멘터리 <왕십리 김종분>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고 김귀열 열사, 그리고 현재까지 죽음의 원인조차 규명되지 못한 이내창·이철규 열사가 소리패 들꽃소리 관련 주요 캐릭터들로 등장한다.
이날 언론시사회엔 주요 캐릭터를 연기한 김정연·윤동원 배우를 비롯 들꽃소리 노래패와 백골단, 조직폭력배 역할 등을 한 여러 배우들도 자리했다. 조정래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까지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외면받고 무시당한 사연을 언급하며 십시일반 후원해 준 사람들과 기꺼이 참여해 준 배우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조정래 감독은 한번도 뵙진 못했지만 학교 선배기도 했던 이내창 열사의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아프도록 많이 울며 언젠가 영화로 부활시키겠다 다짐했던 사연을 전했다. 그리고는 "전 세계 어떤 국가보다 민주주의가 뛰어난 한국인데 그 중심엔 언제나 청년들, 노동자들, 이름 모를 시민들이 있었다"며 개봉에 대한 벅참 감회를 밝히기도 했다.
영화 말미 엔딩크래딧이 올라갈 때 출연 배우와 함께 당시 노래패 활동을 했던 주역들이 올라와 노래하는 장면에서 큰 울림이 있다. 영화엔 '사계', '그날이 오면', '전노협진군가', '우산' 등 1980, 90년대 민중가요 11곡은 물론이고, 이 영화를 위해 새롭게 탄생한 '들꽃처럼' ,'꿈꾸는 고래' 등의 자작곡도 등장한다.
<초혼, 다시 부르는 노래> 관련 정보 |
제 목 : 초혼, 다시 부르는 노래
영 제 : The First Soul: Song Written Again
감 독 : 조정래
주 연 : 김정연, 윤동원, 박철민, 김동완
장 르 : 감동 드라마
제 작 : 제이오엔터테인먼트
배 급 : 커넥트픽쳐스
개 봉 : 2025년 3월 19일 |
▲영화 <초혼, 다시 부르는 노래> 공식 포스터.
커넥트픽쳐스
▲영화 <초혼, 다시 부르는 노래>의 한 장면.커넥트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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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귀향' 감독의 다음은 '의문사'... 민중가요로 전하는 다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