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플래쉬> 스틸
<위플래쉬> 스틸(주)NEW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다. 전 세계 독립예술영화 신작을 국내에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자리다. 사람이 플라나리아처럼 분신 개체를 가질 수 있다면 염원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봐야 할 작품은 잔뜩인데 아무리 상영 회차 가득 채워 영화에 몰두해도 전체 상영작 중 2할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늘 아쉽게 영화를 놓치고 분해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나름대로 이것저것 볼 영화 선정 기준을 정해서 고르게 된다. 다시 볼 기회가 예상된다거나, 상업 개봉이 확정된 작품은 후 순위로 미루게 마련. 개봉이 예정되더라도 당장 보지 않으면 현기증 날 것 같은 영화는 순위가 당겨진다. 흔히 '3대 영화제'로 꼽히는 국제영화제, 특히 시기 문제로 부산이 늘 첫 국내상영이 되곤 하는 베니스·칸영화제 공개 작품이 첫손에 꼽히곤 한다. 상대적으로 북미권 독립영화는 아래로 밀려난다.

그렇게 2014년 가을 부산에서도 잔뜩 미리 시간표 짜 놓고 극장과 극장을 건너뛰며 영화에 몰두하고 있었다. 마지막 회차 영화가 끝나면 컴컴한 가운데 숙소로 돌아가거나 여러 행사장을 기웃거리게 된다. 영화제 주요 무대인 영화의 전당 앞마당을 그렇게 이동하던 참, 야외 상영장에서 갑자기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주변을 지나던 모든 이들이 화들짝 놀라서 야외극장 방향을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하면서.

시간표 책자를 급히 확인한 결과, 해당 시간 야외 상영작은 <위플래쉬>란 작품이었다. 야외 상영되는 작품은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영화제 출품작 중 비교적 대중적이고 보기 편한 영화가 선정되는 편이다. 그래서 오히려 제쳐놓고 고르게 된다. <위플래쉬> 역시 그래서 건너뛴 작품이었다. 하지만 대체 무슨 영화이길래 저렇게 상영 도중 폭발하듯 탄성을 자아내는 걸까? 감독이나 배우가 무대인사에 나서도 얻기 힘든 호응인데 말이다.

결국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의문을 풀기 위해 반년이 지난 다음 해 봄 개봉한 영화를 확인해야만 했다. 보고 나서 본인의 형편 없는 선구안을 자조하며 대체 왜 영화제에서 5천 명이 함께 비명을 지를 기회를 놓쳤나 스스로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지 않은 이들이 비슷한 한탄을 토로하는 걸 나중에도 종종 겪을 수 있었다. 대체 이 영화는 무엇을 감추고 있는 걸까?

가학적 훈육에 물들어가는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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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는 뉴욕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음악 학교 '셰퍼'에 입학했지만, 크게 주목받진 못하는 재즈 드럼 지망생이다. 학내에서 그저 그런 빅밴드 연주자, 그것도 보조 역할에 그치는 중이다. 그런 앤드류가 아침 일찍부터 홀로 연습실에서 드럼 연습에 매진하던 중, 학교 내 최정상 위치의 밴드를 이끌던 '플레쳐' 교수가 지나던 길에 불쑥 방문해 말을 건넨 후 사라진다. 당일 자신의 밴드 연습 현장에 갑자기 나타난 플레쳐는 앤드류를 지목해 자신의 밴드에 합류하길 권한다. 기회를 잡은 앤드류는 망설임 없이 플레쳐의 밴드로 향한다.

앤드류는 플레쳐의 메시지를 보고 영문을 모르면서도 새벽 6시에 늦을세라 허겁지겁 달려오지만, 연습실은 텅 비어 있다. 대체 무슨 일인지 혼란하던 그는 9시가 되어서야 다른 구성원들이 시간 딱 맞춰 들어오는 걸 목격한다. 플레쳐 교수는 앤드류를 친근하게 소개하고, 잠깐 쉬는 시간에는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자신의 진가를 알아주는 저명한 스승을 만난 기분에 앤드류는 잔뜩 흥분할 수밖에 없다.

처음이라 낯설긴 해도 기대에 부풀던 참, 본격 연습에 돌입하자 플레쳐는 돌변해 밴드 구성원들을 갈구기 시작한다. 예체능 계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권위적 교수법인가 싶지만, 플레쳐의 방식은 상상을 초월한다. 조금 전 앤드류와 훈훈한 분위기로 나누던 가족 관계가 졸지에 '패드립' 소재로 변신하고, 완벽주의를 강요하며 제자들을 구석에 몰린 쥐 취급하듯 몰아붙이는데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힐 지경이다. 이건 상식을 벗어난 차원이다.

플레쳐 교수는 끊임없이 밴드 구성원들에게 '최고'를 강요하며 향상심을 주문한다. 그것까진 좋은데 잠재력을 끌어낸다는 명분으로 학대를 불사하는 것은 물론, 교묘하게 자신의 방식을 밀어붙이기 위해 무한 경쟁을 자극한다. 서로 협력해야 할 구성원들 간에 'First' 자리를 놓고 갈등을 부추기며 한계에 부딪힐 때까지 몰아세운다.

앤드류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픈 일념으로 교수의 기대에 필사적으로 부응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예술을 즐기면 되지 과도하게 몰두하는 아들을 염려하는 아버지, 아버지와 다니던 극장에서 일하던 또래 연인과도 갈등을 거듭한다. 그에겐 오직 플레쳐 교수에게 인정받고 최고가 되어 명성을 남기는 게 중요할 뿐이다.

드럼을 치는 손에서 피가 나도록 밥 먹고 잠자는 시간 외엔 연습에 매진하며 다친 손을 얼음주머니에 담가 통증을 잊는 생활이 계속 이어진다. 앤드류의 실력은 당연히 발전하지만, 평범하고 사람 좋던 청년은 점점 예술가의 어두운 일면, 편집적인 광증에 물들어간다. 그렇게까지 노력해서 인정을 받고 싶지만, 플레쳐 교수에게 앤드류는 언제건 더 나은 카드가 등장하면 버릴 패에 불과하다. 그런 취급에 분노한 앤드류는 자신을 자극하며 실력 향상을 극한으로 추구하는 플레쳐에 동화되면서도 인정 욕구로 인해 대립하기 시작한다. 둘의 갈등은 점점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벗어난 단계로 진입하고 만다.

예술교육의 궁극적 목적 질문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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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와 흥행을 이루며 21세기 독립예술영화 신세대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게 된다. 미국뿐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공통된 평판이다. 국내에서도 신진 감독의 저예산 영화치고 기록적인 인기를 끌었다. 관객만 해도 100만이 훌쩍 넘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작품의 인기에 힘입어 2015년 개봉 후 2020년 1차, 그리고 올해 2차 재개봉을 앞둔 상태다. 아마 당분간 5년 단위 재개봉이 계속 이뤄질 참이다. 특히 국내 첫 상영이던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에서 관객들이 열광하던 후반 10분의 공연 장면은 그야말로 눈과 귀를 오롯이 화면에 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경이로움이었다.

하지만 <위플래쉬>가 전하는 열린 결말 메시지에 대해 국내 관객들의 반응은 해외의 일반적 분위기와 좀 달랐다. 외국 반응은 전반적으로 영화의 완성도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작품 속 플레쳐의 강압적 태도에 앤드류가 물들어가는 어두운 그림자에 난색을 전하는 분위기로 이해한 편인 반면, 국내에선 둘의 관계를 마치 천재가 천재를 알아보듯 갈등 끝에 이해와 공감에 도달한 사제간의 훈훈한 화해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적지 않았다. 기묘한 이질감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상반된 반응에 대해 의견은 분분하게 갈렸지만, 예체능은 물론 한국 교육 전반의 강압적-수직적 구조가 영향을 미쳤으리란 점은 공통으로 지적되는 부분이다. 이미 현실 삶에서 앤드류-플레쳐 식 상명하복 권위적 행태에 익숙하다 보니 그나마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까다로운 스승에게 인정받은 제자라는 인간 승리로 <위플래쉬>를 독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영화 안에서도 가학적 교육관 때문에 송사를 치르는 플레쳐의 행태가 드러나는데 말이다.

민주시민을 육성하는 교육철학이 공식적으로 미국이건 한국이건 통용되지만, 실제 현장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특히 입시 결과가 교육의 성과로 직결되는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요즘 인기를 끄는 드라마에서 강남 명문고 학생들이 성적에 집착해 사교육에 새벽까지 매달리는 건 물론, 부작용을 감수하고 약물에 탐닉하던 것 또한 누구나 하니 따라 해야 하는 필요악 정도로 치부하기 일쑤다. 결과 지상주의가 팽배한 교육 현실에서 특히 더 개인의 재능을 최우선으로 삼는 예체능 교육 현장은 이 영화가 구현한 강압적 교육 구도가 너무나 당연시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플레쳐 교수는 당당하게 제자에게 자신의 교육관을 설파한다. "세상에서 제일 해로운 말이 뭔지 알아? '그 정도면 잘했어'야"라고 한다. 재즈가 왜 요즘엔 이 모양 이 꼴로 카페 배경음악 취급받는지 아느냐며 그는 최고가 되기 위해 목숨 걸고 하지 않기 때문이라 강조한다. 그가 자행하는 온갖 학대는 다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한 촉매 자극이란 합리화다. 앤드류는 이를 신봉하며 인생의 소중한 모든 걸 포기하고 매진한다. 물론 노력을 다하는 건 어느 분야나 권장되는 덕목이지만, 감독은 앤드류를 그저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리지 않는다. 친척들과의 오랜만의 회식 자리에서건, 자신이 고백해 사귀던 여자친구와의 이별에서건 그는 마치 무림 고수가 되고자 속세 인연을 다 끊어버리듯 매정하기만 하다. 재능을 개화할지라도 인간다움을 포기한다면 과연 예술가의 덕목이라 할 수 있을까?

관객을 최면처럼 이끄는 마성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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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 스틸(주)NEW

<위플래쉬>의 제목 어원은 바로 '채찍질'이다. 다 보고 나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제목이다. 영화는 놀라운 완성도로 앤드류와 플레쳐의 대결을 구현하는 것은 물론, 그런 격한 갈등 속에서 보고 들으면 경탄할 수밖에 없는 재즈의 세계로 관객을 이끈다. 그야말로 '마성'의 영화다. 플레쳐의 가학적 수법에 진저리가 나고, 점점 미쳐가는 앤드류를 보면서 고개를 흔들다가도 그런 그들이 힘을 합해 선보이는 기계보다 더한 정교한 연주에 무의식중에 끌려가는 기분이 된다. 특히 마지막 10분의 몰입력은 경이로운 수준이다.

관객은 고민하며 헷갈릴 수밖에 없다. 대체 영화 속 인물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성으론 아니다 싶은 암울한 내용이 맞는데, 정작 감성은 앤드류가 펼치는 아름다운 리듬 앞에서 황홀경에 빠지고 있지 않은가? 연주자는 고통에 일그러지는데 손끝에서 나오는 연주는 천상의 아름다움. 그야말로 '딜레마'의 작품이다. 그런 면모 덕분에 이 영화는 예술지상주의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 그 오래된 논쟁을 필연적으로 소환하게 만든다. 학창시절 [광염소나타]를 읽으며 떠올리던 기억처럼. 그렇게 오랜만에 되돌아온 <위플래쉬>는 여전히 10년 전과 변함없이 매혹적인 동시에 여전히 풀리지 않는 질문을 던진다.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작품정보>

위플래쉬
Whiplash
2014|미국|드라마, 음악
2025.03.12. (재)개봉|106분|15세 관람가
감독 데이미언 셔젤
주연 마일스 텔러, J. K. 시몬스
수입 워터홀컴퍼니㈜
배급 (주)NEW

 <위플래쉬> 포스터
<위플래쉬> 포스터(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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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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