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스틸컷
쇼박스
<퇴마록>의 영화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소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1998년, 안성기와 신현준 주연의 실사영화 <퇴마록>이 제작된 바 있다. 감독은 영화학으로 최고 명문 중 하나로 꼽히는 뉴욕대학교 예술학 학사 박광춘이 맡았다. 원작자는 얼마 개입하지 못하고 박광춘이 직접 각본작업까지 했다는데, 그 결과는 오늘 기억되는 바와 같다. 한국 영화계는 학벌이 무용하다는 사실을 이를 통해 또 한 번 깨닫게 된 것이다.
손익분기점을 크게 넘긴 상업적 성취에도 후속편에 대한 이야기는 전무했다. 오늘날처럼 인터넷을 통해 감상이 빠르게 오가는 시대였다면 흥행조차 기대할 수 없었을 만큼 참혹한 평이 주를 이뤘다. 독자적 세계관을 갖춘 탄탄한 원작이 있는 만큼 이제와 다시금 실사로 기획하는 움직임이 있으나 그 작품성을 우려하는 이도 적잖다.
애니 <퇴마록>은 위와 같은 이유로 쏟아진 우려를 단박에 걷어낸 준수한 작품이다. 국내, 세계, 혼세, 말세, 외전 등으로 구성된 시리즈 가운데 '국내편'의 특정 에피소드를 다루었다. 주인공인 박신부와 현암, 준수가 만나는 이야기로, 원작의 이야기가 상당히 압축돼 단순하게 바꾼 대신 기본적 세계관과 캐릭터의 전사 등을 묘사하는데 집중한 흔적이 역력하다.
독창적 세계관, 선명한 이야기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퇴마사들이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 세상을 위협하는 악마에 저항하는 이야기, 그 싸움의 서막을 <퇴마록>은 제법 단단하게 열었다. 박윤규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의사로 일하다 천주교에 귀의해 신부가 된 이다. 악령에 쓰인 환자를 만나 치료에 실패한 뒤 충격을 받고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로부터 수십 년 간 퇴마에 매진하니, 가톨릭 교단 안에서까지 이단이란 비난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영화는 박 신부에게 옛 친구이자 해동밀교 호법인 장호범이 찾아오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반도에서 비밀리에 전수되던 해동밀교는 145대 째인 현 교주 대에 이르러 일대 위기를 맞이했다. 교주 서섭국이 밀교의 본래 뜻을 왜곡하고 힘만을 추구한 끝에 금단의 악신을 인간세로 불러오려는 계획을 꾸미고 있는 탓이다. 문제를 눈치챈 호법들이 모여 서 교주를 막고자 하는 가운데, 교주의 양자이자 밀교의 미래로 꼽히는 준후를 밀교 바깥으로 보내 안전을 기하려 한다. 장 호법이 박 신부를 찾은 것도 그 때문이다.
한편 현암은 또 다른 목적으로 해동밀교의 숨겨진 본산을 찾아온다. 그는 일찍이 사고로 부모를 잃고 동생과 둘이 살아왔는데, 초자연적 현상으로 하나 남은 동생까지 잃은 뒤 무공에 매진했다. 그가 중점적으로 연마한 태극기공에다 우연한 계기로 만난 아미파 승려로부터 70년 내력까지 이어받으니, 현암의 능력을 쉬이 짐작하기 어렵다. 그가 해동밀교를 찾은 건 아미파 승려의 제안에 따른 것으로, 이곳에서 박 신부와의 인연도 시작되는 것이다.
아쉬움 속에도 다음을 기약한다
<퇴마록>은 박 신부와 현암, 그리고 준후가 처음 만나는 계기이며, 이들의 혁혁한 공으로 서 교주의 계획이 깨어지는 일이다. <퇴마록> 가운데 가장 아쉽다는 평가를 받는 국내편, 그 중에서도 일부의 이야기를 응축해 다루었지만, 장대한 이야기의 시작으로 무리 없다는 평이 나온다. 무엇보다 세계관을 내보이고 캐릭터와 그 전사까지 보이는 가운데, 악의 범람을 저지하는 인물들의 활약이 흥미롭게 그려졌다. 국내편의 일부만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장기적인 시리즈화 가능성 또한 충분하다.
OTT 전성시대 가운데 30만 명에 불과한 아쉬운 기록이라지만, 개봉 수 주가 지나도록 박스오피스 상단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단 점은 긍정적이다. 100만 명대라는 손익분기점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에도 그 반응이 나쁘지 않단 점은 고려할 만하다. 무엇보다 소설에 대한 추억을 간직한 3040 중년세대 외에도 젊은 층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단 점도 주목해야 한다. 작품에 대한 향수를 가진 이들과 작품이 호소력을 발할 수 있는 세대가 폭넓게 분포돼 있다는 점은 향후 <퇴마록>이 장기적으로 성공한 시리즈로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던진다.
현재로선 3D 애니메이션이 해외 작품에 비해 상당히 어설프게 보인다는 점, 또 성우들의 연기가 아쉽다는 점이 작품성을 깎아내리는 한계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명확한 단점이 도리어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과 통한단 점을 무시해선 안 된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기술이며 연기는 발전할 밖에 없다. 한국 영화계가 가진 자산은 이러한 부분을 충분히 보완하고도 남는다. 중요한 건 산업이 자리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다. 오늘의 관객이 가능성이 움직거리는 <퇴마록>과 같은 작품에 더 많은 관심을 주어야 하는 이유다.
▲퇴마록포스터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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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