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스틸컷
넷플릭스
사실 제주 방언을 모르는 타지 사람들이 보면 드라마의 제목 '폭싹 속았수다'는 말 그대로 '제대로 속아 넘어갔구나'란 뜻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실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 방언으로 하면 '수고 많으셨습니다'란 뜻이란다. 마치 부산 사투리 '욕봤다'와 비슷한 뉘앙스처럼 말이다.
굳이 오해를 살 만한 제목을 쓴 이유가 있을까? 4회차까지 보면, 어쩌면 이 '오해'는 의도된 오해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애순의 삶이 정말로 속았구나 싶은 여정이기 때문이다.
당차고 야무졌던 여자 아이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37명의 반 아이들이 찬성을 해도 반장은 군 장성 집 자식에게 돌아갔다. 엄마가 눈물을 뚝뚝 흘릴 정도로 시를 잘 써도 장원은 그 아이 차지다.
엄마는 애순의 팔자가 자기를 닮을까 걱정했는데, 그 우려는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새아버지는 애순의 발목을 잡았고, 어린 애순은 엄마 대신 그 가정을 지켰다. 어떻게든 식구들을 먹여살리던 애순을, 새아버지는 새 여자를 들이자마자 쫓아냈다. 하루아침에 오갈 데가 없어졌다.
그럴 때 애순에게 손을 내민 것이 관식이었다. '나를 걸뱅이 취급한다', '섬놈이랑은 안 사귈 것'이라면서도 그의 호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던 애순은, 그래서 관식과 함께 도망쳤다. 신혼부부라고 바득바득 우기며 배을 타고 부산까지 감행한 '첫사랑의 도피'. 그 결과는 처참했다. 결국 경찰서에 가게 되고, 관식의 어머니 덕에 다시 제주로 돌아오게 된 두 사람. 정학을 맞은 관식과 달리 애순은 퇴학을 당하고, '요망'하다며 손가락질 당하는 신세가 됐다.
서울로 가겠다고, 대학에 가고 싶다고 했던 애순이지만, 대학을 보내주겠다던 새아버지도, 공부를 시켜주겠다던 관식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애순은 틈만 나면 귀신을 쫓는다며 자신에게 팥을 던지는 시할머니와, 시어머니의 혹독한 시집살이를 감당하며 살아간다.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넷플릭스
서사로만 보면 제주 여인의 수난사와도 같지만, '폭싹 속았수다'가 알고 보니 '수고 많으셨습니다'란 뜻인 것처럼, 애순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첫 아이로 딸을 낳은 애순은 공부를 포기해서 아쉽지 않냐는 관식의 말에 딸을 안으며 '이렇게 예쁜 딸이 있으면 됐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이든 애순에게 딸이 아버지와의 결혼을 후회하지 않냐 했을 때, 애순은 다시 태어나도 관식을 선택할 거라고 말한다. 세상에 의지할 데 없던 애순은 '입신양명' 대신 자신의 보금자리를 스스로 만들어 간다.
드라마는 말한다. 인생이 당신에게 떫은 귤을 준다면 그걸로 당신은 귤청을 만들어 따뜻한 귤차를 만들어 먹으라고. 그렇게 떫고 신 자신의 인생을 따뜻한 한 잔의 귤차로 만드는 과정, 그 기나긴 숙성의 과정을 드라마는 보여주고자 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