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주)디스테이션

<콘클라베>는 예기치 못한 교황의 선종 후 빠르게 진행되는 교황 선출 과정, 즉 콘콜라베를 전지적 시점으로 바라본다. 로버트 해리스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피터 스트로갠이 각색한 대담한 지적 스릴러다. 연출은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에드워드 버거 감독이 맡았다. 실화는 아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건강이 악화돼 현실감과 현장감이 동반된다. 곧 콘클라베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미치게 된다.

'콘클라베'란 교황 선출 방식을 뜻한다. 라틴어로 '콘 클라비스(Con clavis)', 즉 열쇠로 문을 잠근 방을 의미한다. 외부와 단절된 철저한 비밀 공간에 선거권을 가진 전 세계의 추기경이 소집되면 절반을 넘긴 후보자가 나올 때까지 제한 없이 투표한다. 몇 날 며칠이 걸릴지 모른다.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외부 영향을 최소화한다. 선거권을 가진 사람이 그 어떤 것도 보고 듣지 않도록 철저한 보안을 유지한다. 과반수가 안 되면 검은 연기가 나오고 교황이 선출되면 흰 연기로 알린다.

영화 속에서는 사흘 동안 6번에 걸친 투표 과정이 반복된다. 총과 폭탄의 위험보다 파괴적인 심리전이 벌어진다. 교황에 빗대었지만 리더의 자질을 논하는 각축장이라 봐도 무방하다. 추기경들을 한 공간에 모아두고 펼쳐내는 극은 정치 못지않은 쫄깃한 심리적 서스펜스를 선사한다.

교황 선출로 드러난 가톨릭의 민낯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주)디스테이션

갑작스러운 교황의 선종을 애도할 시간도 없이 추기경 대표인 단장 로렌스(랄프 파인즈)는 콘클라베를 총괄하게 된다. 최대한 정확하고 철저하고 자질을 검증해야 한다. 그런데 당선이 유력했던 후보들이 연이어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하나둘씩 제거되고 콘클라베는 미궁에 빠진다.

스스로 중립적인 위치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시험에 드는 일이 벌어진다. 최근 기도에 어려움이 생겨 단장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신이 권력을 탐하고 있지 않은지 의심할 지경까지 이른다. 순탄하게 흘러가던 중 최초 아프리카계 교황의 탄생이라 불린 아데예미(루시언 음사마티)의 스캔들까지 터졌다.

로렌스는 고민에 빠진다. 초반 선대 교황의 뜻을 잇는 벨리니(스탠리 투치)의 지지자였지만 진보 진영의 분열로 표가 나뉘며 몇 표가 의도치 않게 자신에게 흘러들자 당황스럽다. 화가 난 벨리니는 보수 진영 테데스코(세르지오 카스텔리토)쪽으로 표가 흘러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며 중도 진영인 트랑블레(존 리스고) 쪽을 밀어 달라며 압박한다.

하지만 트랑블레의 자질도 의심받기 충분했고 엄청난 흠을 알게 된 로렌스는 난관에 부딪힌다. 게다가 선종한 교황이 임명한 아프가니스탄 카불 사역자 베니테스(카를로스 디에즈)가 복병으로 떠오르자 극심한 혼란이 생긴다. 그로 인한 긴장감을 서서히 고조되고 종국에는 폭발한다.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종교의식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주)디스테이션

잔잔한 호수 위에 돌멩이가 떨어져 파문이 일듯, 끝까지 완주하게 돕는 동력은 추기경들의 욕망이다.권력 앞에서는 모두가 평범하다. 이 보수적인 종교 집단에서 벌어지는 질투, 혐오, 배신의 늪에 빠진 추기경들의 비밀이 낱낱이 들추어진다.

총성 없는 전쟁터다. 가톨릭교회는 성추문, 불법자금, 성직 매매, 동료 사찰 등으로 얼룩져 있다. 또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수녀의 배척은 비일비재했다. 언론과 사회가 알면 종교계가 지탄받을 엄청난 진실까지 대의를 위해 까발린다.

고위 관직을 얻기 위해 필수 관문인 청문회를 받는 과정이 오버랩된다. 관계, 재산, 허물 등 대중 앞에 모든 것이 까발려지는 상황과 유사하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이 있겠냐는 말이 성직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종교인일지라도 윤리적 도덕적 잣대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나약한 인간임을 말한다. 교황 선출을 '신이 정한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선택받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가 펼쳐진다. 고매한 백조의 모습으로 있지만 수면 아래에서 열심히 발을 놀리고 있는 백조와 닮았다.

리더의 자질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주)디스테이션

영화는 인종, 파벌, 이념, 젠더, 성욕, 생명윤리를 아우르며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음모와 암투를 벌이는 종교인을 정치인에 빗대 지켜보는 재미, 철저하게 감춰진 특별한 세계를 들여다보는 묘미가 있다. 그들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말을 하면서도 출신 지역, 신념에 따라 파벌을 형성하고 편 가르며 세속적인 태도를 취한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영화의 템포와는 다르게 서거한 교황이 키우던 '거북이'는 적재적소에 등장해 숨 돌릴 틈을 준다. 구약과 신약에 등장하는 거북이는 기독교의 덕목을 상징한다. 거북이의 꾸준히 묵묵히 길을 가는 습성은 신의 지혜를 이해하는 인내심을, 단단한 껍질은 안식처를, 장수는 영적 성장과 영원한 본성을 뜻한다.

영화에서는 자꾸만 탈출하는 까닭에 외부와 단절된 장소의 답답함을 해소하는 장치로 활용되기도 했다. 결국 거북이는 해방을 맞는다. 기도의 어려움이 생겨 관직을 버리려던 로렌스는 비로소 신념에 가까워진다. 인간을 향한 의심이 믿음이 되고 확신이 되는 마지막 순간, 본질은 다양성을 아우르는 포용력임을 깨닫는다.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 사고보다 유연한 사고, 즉 개방성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폐쇄된 성당이 폭탄으로 깨지고 닫혀 있던 창문이 열려 빛이 들어오며 새 시대가 왔음을 알린다. 그로 인한 허를 찌르는 반전 결말은 묵직한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당신이 로렌스라면 어떤 선택을 할 거냐고 묻는 것만 같다.

콘클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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