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키17>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다행히 학살 명령에 관료들은 순순히 따르지 않았다. 그들은 마샬의 폭력적인 발언과 행동을 몰래 촬영했다. 그리고 극단적인 명령이 떨어지자 "당신들의 행동은 잘못되었다. 위원회에 회부하겠다"며 체포한다. 영부인이 "지금 반란을 일으키는 거냐"고 협박해도 관료들은 흔들리지 않고 그들을 처벌한 다음, 새로운 정치 제도를 만들어간다.
반면, 주인공 '미키'의 행동은 달랐다. 정확히는 17번째 프린트된 '미키17'과 18번째 프린트된 '미키18'의 태도가 다르다고 할까. 원래 규칙은 기존 미키가 사망한 다음에 새로운 미키를 복제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로 두 명의 미키가 존재하게 되었고, 그들은 마샬의 부조리한 행보에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유순한 성향의 '미키17'은 줄곧 마샬에게 복종했다. 매번 자신을 실험에 투입하여 죽게 만들고, 감정도 취향도 없는 실험체처럼 취급해도 묵묵히 넘기곤 했다. 순응적인 '미키17'에게 저항정신을 일깨운 건 또 다른 나, '미키18'이었다.
'미키18'은 "왜 너를 죽이려고 하는 마샬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냐"며 그를 다그친다. 우물쭈물하는 '미키17'에게 거듭 호통치며 "마샬을 없애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하고, 홀로 암살 작전을 펼치기도 한다. 비록 작전은 실패했지만, '미키18'의 호전적인 행동은 '미키17'을 변화시킨다.
마침내 그들은 크리퍼 집단을 학살하겠다는 마샬의 명령에 함께 맞선다. '미키17'이 납치된 새끼 크리퍼를 구출하고 크리퍼 지도자와 소통하는 동안, '미키18'은 폭탄을 이용해 마샬을 처단한다.
처음에는 마샬 앞에서 고개도 못 들던 '미키17'은 '미키18'을 만나 반항적인 인물로 성장한다. 그리고 자신을 수없이 복제해 마샬의 수족으로 만들었던 프린터를 제 손으로 폭파시킨다. 수동적이었던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들과 부딪히며 저항심을 키우고, 불합리한 체제를 박살 내는 영화 < 미키17 >. 역시 봉준호 감독다운 발상이다.
역사가 반복되어도 우리는 '사랑'하는 거야
부패한 정치인 마샬이 죽고, 주인공 미키가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로 끝나길 바랐다. 그러나 < 미키17 >은 스산한 그림자를 남긴다. 대통령 부부가 모두 세상을 떠났음에도 미키는 악몽을 꾼다. 죽은 자신을 수없이 프린트해서 되살렸던 것처럼 끔찍한 독재자 부부가 다시 태어나는 꿈을 꾸는 것이다. 그때마다 미키는 이 모든 일이 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걱정에 빠진다.
영화를 벗어난 현실도 마찬가지다. 지겨운 역사는 반복된다. 나쁜 정치인을 물리치면 다시 나쁜 정치인이 나타나고, 부당한 정권을 종식시키면 또 다른 정권이 집권해 말썽을 피운다. 아무리 정부 형태를 바꾸고 개헌해도 독재자가 나타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다. 이 굴레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 걸까.
영화 < 미키17 >의 해법은 뻔하지만, '사랑'이었다. 소모품처럼 쓰이는 미키를 가여워하고, 끔찍한 고문에 시달리는 크리퍼를 가여워하는 캐릭터들의 마음이 모여 거대한 독재 정권을 무너뜨렸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게 했다.
혼란스러운 시국에 처한 우리도 < 미키17 > 속 캐릭터들처럼 서로 사랑하면 어떨까. 각자가 지닌 고통에 공감하고, 손을 맞잡고, 힘을 합친다면 항상 반복하는 부정부패의 역사 속에서 서로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을 풍자한 건지, 있는 그대로 재현한 건지 헷갈리는 영화 < 미키17 >. 부조리를 종식한 결말까지 대한민국을 닮았으면 좋겠다.
▲영화 <미키17> 포스터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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