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의 작품에서 삭발 연기로 화제를 모은 데미 무어.
부에나 비스타
그러나 이후는 거짓말처럼 달랐다. 21세기 들어 데미 무어가 출연한 작품 가운데 뚜렷한 성공작이라 할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출연한 20여 편의 작품이 대부분 졸작, 몇 편만이 범작 정도로 평가할 만한데, 그마저도 연기를 인상적이라 말하긴 민망한 수준이다.
나오는 평이라곤 나이에 비해 잘 가꾼 몸매와 관련한 것이라거나 영화홍보에 영향을 미치는 가십거리가 고작이었다. 출연작 면면을 고려하면 작품을 보는 안목까지도 형편없다는 소리를 들을 만했다. <서브스턴스> 출연 직전쯤에 이르러선 데미 무어를 배우로서 끝장났다고 보는 이가 그렇지 않은 이보다 수십 배는 많았을 테다.
워낙 사생활이 파격적이라고는 하지만 세 번째 이혼 뒤 무려 16살이나 어린 배우 애쉬튼 커쳐와 교제를 시작한 건 가뜩이나 불안했던 데미 무어의 이미지가 가십거리로 소진되는 데 기여했다. 전남편 브루스 윌리스가 그 교제를 직접 축하하고 응원까지 했음에도 대중은 그를 할리우드 톱스타들의 기묘한 사생활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며 도마 위에 올리길 꺼리지 않았다. 네 번째 이혼을 전후해 감행한 수차례 전신 성형이며 미용에의 집착이 언론을 통해 적나라하게 알려지며 그녀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확고하게 고정시켰다.
특히 수술 사유와 관련한 온갖 루머부터, 그녀가 받은 구체적인 수술과 시술 종류, 가격 등과 관련한 적나라한 기술, 데미 무어가 성형중독에 빠져 있다는 확인된 바 없는 온갖 기사들까지 마치 사실처럼 언론을 통해 보도된 건 충격적인 수준이다. 심지어는 성형외과 전문의들이 각 매체에 나와 데미 무어의 수술과 관련한 온갖 인터뷰를 진행해 그 할리우드에서조차 자성의 목소리가 일었을 정도다. 데미 무어 스스로 성형수술 사실과 그것이 남긴 허망함 등에 대해 털어놓은 건 온갖 논란이 갈무리된 2010년대에 이르러서였으니 그간 감내해야 했을 고통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 락다운 213주 > 스틸컷그린나래미디어
자연인으로서 데미 무어가 걸어온 행보가 영화 <서브스턴스> 속 엘리자베스와 겹쳐 보이는 건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데미 무어보다 이 역할에 더 어울리는 배우는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엘리자베스는 데미 무어를 연상케 하고 데미 무어는 엘리자베스를 떠올리게 한다.
배우의 삶이 그려낸 모양이 작품 속 캐릭터와 꼭 맞는 절묘한 광경을, 그것이 빚어내는 강력한 힘을 관객은 <서브스턴스> 가운데 확인하게 된다. 이 영화가 특출난 파괴력을 지니게 되기까지 데미 무어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물론 데미 무어는 오스카의 주인이 되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관객은 아주 오랫동안 그녀의 수상 불발을 아쉬워할 게 분명하다. 그건 배우의 삶 전체가 작품 속 인물의 캐릭터와 맞아떨어지는 희소하고 특별한 장면을 관객 또한 느끼기 때문이고, 그런 광경은 영화 역사 전체를 가로질러도 채 몇을 찾아낼 수 없는 탓이다.
그리하여 나는 여기서 오스카 수상에 실패한 데미 무어의 이야기를 적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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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