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나고 두어 시간쯤 흐른 뒤였다. FC서울과 김천 상무의 경기가 졸전 끝에 막 0-0으로 마쳐진 참이었다. 다음 주 진행해야 하는 책 모임 선정도서를 빌리러 도서관에 들러야 했다. 근처에 사는 친구를 불러내어 저녁에 술 한 잔을 곁들일까. 휴대폰을 집어 든 건 그 때문이었다.

검은 화면이 환해지며 문자가 들어왔다.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보내온 부고 문자였다. '신나리 회원 본인상'이란 글자가 던져진 돌멩이처럼 눈에 박혔다. 또 한 명 창작자가 세상을 떴구나.

이름이 낯이 익었다. 2년 전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그녀가 만든 작품을 본 일이 있었다. < 8부두 >와 <붉은 곡>, 나는 두 작품 모두에 대한 평을 연달아 써냈었다. 그중 < 8부두 >는 각별히 응원해 온 제1회 반짝다큐페스티발(반다페) 개막작이었다. 익히 관심이 있던 부산항 제8부두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져 마땅하지만 얼마 회자되지 못한 그 문제를 신나리 감독이 다큐로 제작해 다루었다(관련기사: 부산에서 세균실험? 이 다큐의 충격고발 https://omn.kr/238n3).

신나리 감독 급성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던 신나리 감독 생전 모습
신나리 감독급성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던 신나리 감독 생전 모습박민경

신나리 감독, 백혈병 투병 끝 3일 별세

나의 평온한 삶 너머 어딘가에 마지막 숨을 간절하게 내뱉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현실의 장벽을 부수겠다고 곡괭이질을 하는 이도, 좀처럼 관심이 답지하지 않는 문제 위에 집요하게 카메라를 가져다 대는 이도 얼마든지 있겠다. 내가 의자에 눕듯이 기대어 잔디 위를 구르는 공을 쫓아 달리는 이들을 구경하는, 먹고 마시고 욕하다 웃어젖히는 그렇고 그런 순간에도 저기 어딘가에선 소중하고 때로 고통스러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어쩌면 다큐, 그리고 영화의 효능이 그런 것일지 모른다. 간절함과 열망, 추함과 아름다움, 이뤄져 마땅한 도전과 닿지 못한 채 고꾸라지는 실패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도록 하는 것. 그로부터 나 아닌 다른 누구의 삶을, 뜻을, 업을 대면토록 하는 일 말이다.

세상 어떤 이별은 아쉬워해야만 한다. 어떤 상실은 애통해해야만 한다. 어떤 죽음은 기억돼야만 한다. 내가 한 번도 만나본 일 없는 신나리 감독의 부고 글을 쓰기로 한 건 그 때문이다.

영화깨나 보았단 이도 신나리란 이름을 처음 들었을 수 있겠다. 놀랄 일도 아니다. 한국 독립영화, 그중에서도 다큐멘터리 분야 바깥으로 그녀의 작품이 드러나 대중과 만난 일이 드물었던 탓이다. 2018년 작 <녹>으로 부산독립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외 다수 영화제에서 여러 작품이 소개된 바 있다. 그러나 한국 독립다큐가 대개 그러하듯 대중과의 접점이 있다 하기는 어렵다. 한국사회, 문화예술계, 그리고 영화계가 잃은 아까운 것에 대하여 애써 되새기는 이유다.

신나리 감독 2018년 작 <달과 포크> 촬영 당시 함께 사진을 찍은 신나리 감독(오른쪽)과 주인공 박민경 타피스트리 작가(왼쪽), 제작자 이진승 PD(가운데).
신나리 감독2018년 작 <달과 포크> 촬영 당시 함께 사진을 찍은 신나리 감독(오른쪽)과 주인공 박민경 타피스트리 작가(왼쪽), 제작자 이진승 PD(가운데).박민경

영화인들이 말하는 다큐인 신나리

나는 신나리 감독을 만나본 적 없으므로 그를 알 법한 이들 몇 명에게 전화했다. 전화 받은 이들 모두가 제 일처럼 나서준 건 예상 밖이었다. 직접 얽힌 사연을 들려준 이가 있고, 가까이 지냈다는 다른 누구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알려준 이도, 함께 찍은 사진을 뒤져서 보내온 이도 있었다. 그렇게 다다른 이야기가 기대보다 훨씬 풍부하게 되었으므로, 기사는 본래 쓰려던 모양보다 더욱 품이 들게 되었다. 영화인이며 많은 이들에게 좋은 사람이었다는 신나리가 떠나는 길, 나는 그녀를 아낀 사람들이 전해온 대로 그녀를 소개하기로 한다.

<그 자리>·< 9월 >·<천국장의사 그리고 봄> ·<녹>·<붉은 곡>·<달과 포크>·<불타는 초상>·<엄마의 워킹>·<뼈>,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된 연출작만 9편이다. 필모그래피에 올라 있지 않은 장·단편을 더하면 십수 편을 헤아린다. 앞으로 공개될 수 있는 미완의 작품도 몇 편이 있다. 지난 십수 년간 극영화로 시작하여 다큐로, 다큐 안에서도 다양한 분야를 왕성하고도 폭넓게 오간 행보가 주목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만든 김영조 감독은 신나리 감독의 작업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이다. 10여 년 전,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다큐 강좌에서 강사와 수강생으로 마주한 인연이 발단이 됐다. 신나리 감독에게 다큐를 권한 것도 김 감독이고 보면 고인이 생전 그를 스승으로 언급하곤 했다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김영조 감독이 동료 작가로 제가 바라본 신나리 감독을 말한다.

김영조 감독에게 신나리 감독은 늘 진심을 다하는 이였다. 때로는 그 진심이 버겁게 보일 때도 적잖았다고 전한다. 그는 "낯을 많이 가리는 사람이지만 알고 보면 굉장한 의욕도, 욕심도 있어서 관심이 갔다"며 "막상 작품에 들어가면 자기가 찍으려고 하는 다큐 속 대상과 관계를 열심히, 깊이 맺으려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고 입을 열었다.

신나리 감독을 눈여겨 본 김영조 감독이 당시 제작 중이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출부 자리를 제안한 게 그녀의 첫 다큐작업이 됐다. 이후 김영조 감독은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신나리 감독을 제작부터 촬영, 편집 등 다방면에서 도우며 필모그래피 전체에 깊이 참여한다.

신나리 감독 제1회 반짝다큐페스티발 당시 상영관에서 공개된 신나리 감독의 병상 메시지.
신나리 감독제1회 반짝다큐페스티발 당시 상영관에서 공개된 신나리 감독의 병상 메시지.반짝다큐페스티발

영화를 사랑한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김영조 감독은 신나리 감독이 유독 영화를 힘들게 찍는 이였다고 기억한다. 김 감독은 "이 친구는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다가가서 밥도 먹고 선물도 하면서 챙기는데, 가끔은 저도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며 "멘토 입장에서 '그러다 보면 작품이 감독의 뜻이 아니라 출연한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끌려갈 수도 있으니 때로는 차가워져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가끔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 부분이 아니라 엉뚱한 데 너무 심취하기도 해 작품이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기도 했다"면서 "옆에서 지켜보며 너무나 힘들게 작업하는 게 아닌지, 건강도 안 좋은데 너무 지치는 건 아닌가 그런 걱정을 자주 했다"고 털어놨다.

김 감독은 신나리 감독이 영화를 누구보다 사랑한 이로 기억됐으면 한다. 그 사랑이 너무 커서 괴로움도, 행복도 맛봤다고 말이다. 그는 "나도 영화과를 나와서 20년 넘게 이 일을 하고 있는데, 어디서나 말로는 영화를 사랑한다고 한다"면서도 "하지만 내가 정말 영화를 사랑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한 친구가 바로 신 감독"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조 감독은 이어 "영화란 게 도대체 무엇인지, 어떻게 작업해야 하는지, 자기는 영화를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이런 물음을 던져주는 친구였다"며 "이제와 돌아보면 나야말로 영화의 본질에 대해 잊고 있었던 게 아닐까, 오히려 그 친구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신 감독 생전 영화역정을 정리한 작업이 있었단 건 다행한 일이다. 2023년 봄, 제1회 반다페에서 특별전 성격으로 작품 여럿을 상영한 것이다. 당시 운영위원이던 다큐 감독이자 제작자 조이예환이 기획한 것으로, 다큐인은 물론이고 반다페를 찾은 일반 관객에게까지 그런대로 호평을 받았다.

조이예환 감독은 "신나리 감독과는 2016년 인디다큐페스티발(이하 인다페)에서 처음 만나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며 안면을 텄다"며 "많은 이가 알아주지 않는, 그럼에도 계속해서 자신만의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동료들이 있단 사실에 든든함을 느꼈다"고 떠올렸다. 그는 "'나도 서울에서 주류가 아니라 힘든 부분이 있었는데 부산에서 작업한단 게 대단하다, 앞으로 더 힘내서 버텨보자'는 이야기를 나눴던 걸로 기억한다"며 "이후 만날 때마다 신 감독이 '조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 놀 수 있는 인다페가 꿈과 같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작업을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고 말해준 게 기억에 남는다"고 추억했다.

기획전을 준비하게 된 이유에 대해 조이예환 감독은 "신나리 감독이 투병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인다페 정신을 계승해 출발하는 첫 반다페 운영위원을 맡게 되었는데, 인다페를 누구보다 즐기던 신 감독 모습이 떠올라 기획전을 제안했다"며 "정작 신 감독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어 영화제에 참여하진 못했지만 병실에서 전한 메시지를 모든 관객에게 공개할 수 있었고, 이듬해 2회 때는 병세가 호전돼 자원활동가로 일해주시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조이예환 감독은 이때의 만남이 신나리 감독과의 마지막 기억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신나리 감독 제2회 반짝다큐페스티발 당시 신나리 감독(오른쪽)과 전년도 특별전을 기획한 조이예환 감독
신나리 감독제2회 반짝다큐페스티발 당시 신나리 감독(오른쪽)과 전년도 특별전을 기획한 조이예환 감독반짝다큐페스티발

'삶은 소중한 것'... 그녀가 남긴 메시지

반다페를 통해 신나리 감독을 알게 된 이들 또한 특별한 감상을 전해왔다. 동료 감독 서혜림은 기획전 당시 영상 메시지를 떠올렸다. 서 감독은 "당시 감독이 아파 반다페에 직접 올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대신 보내온 영상메시지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며 "'내가 인다페에서 동료라는 별을 찾았듯, 반다페가 누군가에게 별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했는데, 듣는 순간 묘한 울림이 가슴 깊이 전해져 쉽게 진정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동료들과 부산국제단편영화제를 찾아 신나리 감독이 이끄는 대로 여행을 했던 기억을 꺼내놓았다. 서 감독은 "부산역으로 급히 가야 했던 나를 위해 엑셀을 팍팍 밟으며 부산 도로를 횡~하고 달리던 모습이 생생하다"며 "특유의 루피 같은 웃음을 씩 짓고는 '걱정 말라, 금방 도착할 것'이라 장담하던 그녀를 보며 속으로 '멋지다'란 말만 되풀이했다"고 추억했다. 이어 "'삶은 소중한 것'이라며 따뜻한 응원의 말을 건네고 쿨하게 사라지던 뒷모습에 한참 웃음지었다"면서 "앞으로도 그때 그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전했다.

신나리 감독과 반다페 자원활동가로 인연을 맺었다는 홍다예 감독은 신나리 감독을 '웃음부자'였다고 기억한다. 홍 감독은 "자원활동을 하다가 심심해서 활동가분들 사진으로 웃긴 포스터를 만든 적이 있는데 신 감독이 본인 걸 보고는 너무 재미있다며 좋아해 주더라"며 "활동하는 내내 실없는 농담과 장난에도 크게 웃어주는 웃음 부자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항상 웃으며 먼저 다가와 주고, 밥 먹었느냐고도 챙겨주던 분"이라며 "활동이 끝나고도 감독님이 자원활동가 모두에게 일일이 고마웠던 것과 멋있었던 점을 이야기해 주었는데, 그 모습을 보며 정말 따뜻한 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소람 감독에게 신나리 감독은 다정했던 이다. 김소람 감독은 "2018년에 처음 만난 뒤 감독님은 내가 올린 사진과 글에 매번 다정한 댓글을 남겨주었다"며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그런 다정함에 어쩔 줄 몰라 큰 호응을 하지 못했는데, 가끔 뜨는 예전 사진들에서 나리 감독님의 댓글을 보면 나를 이렇게 응원해 주는 사람도 있었구나 하고 따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그만큼 다정하지 못했던 것 같아 후회가 된다"면서 "이제 아프지 마시고 편안하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필요한 여러 목소리를 구하는 데 도움을 준 문창현 감독은 신나리 감독을 두고 "새해가 시작될 때면 항상 먼저 인사 나눠주던 분"이라며 "그 마음이 한결같아서 사람들에게 깊이 기억되는 모습을 보니 벌써 그리워진다"고 말했다.

백혈병으로 투병해온 신나리 감독은 지난 3월 3일, 향년 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부산독립영화협회 등 고인이 활동해온 부산 일대 동료영화인들을 중심으로 회고전이며 특별전을 기획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후반작업 중이던 유작 <도반>은 동료 영화인들이 완성해 2026년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상영할 예정이다.

신나리 감독 장례식장에 놓은 근조화환.
신나리 감독장례식장에 놓은 근조화환.이진승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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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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