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개봉한 영화 <원스>는 여전히 널리 회자되는 명곡 'Falling Slowly'로 익히 알려져 있다. 비록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였으나, 두 남녀가 음악으로 연결되는 낭만적인 이야기는 세계적인 흥행을 이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Falling Slowly'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뮤지컬 <원스>는 바로 이 영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영화에 등장하는 그(Guy)와 그녀(Girl)처럼 뮤지컬에서도 그와 그녀는 직접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한다. 뮤지컬 <원스>는 바로 이 지점에서 특별하다. 그와 그녀뿐 아니라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직접 악기를 연주한다.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캐릭터가 연기를 하지 않을 때도 무대 양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공연을 지켜보고,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며 공연을 이끈다.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배우들의 템포를 조절하는 통상의 뮤지컬과 달리, <원스>는 오직 배우들만의 힘으로 모든 음악을 완성한다.
연기와 노래, 악기 연주를 두루 할 수 있는 배우를 찾는 것부터 쉽지 않고, 연습 기간도 상대적으로 길다는 까다로운 조건 탓에 <원스>는 10년 동안 국내에서 공연되지 못했다. 공연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히는 토니 어워즈를 석권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여러 현실적 제약 탓에 오랫동안 잊혀진 채 있었다.
단, <원스>의 10년은 무의미한 기다림이 아니었다. 월동이 길었던 만큼 탄탄하게 돌아온 것. 지난 2월 19일 개막한 <원스>는 현재 탄탄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 역에 윤형렬, 이충주와 함께 밴드 출신 한승윤이 캐스팅되었고, 박지연과 이예은이 '그녀'를 연기한다. 이 외에도 박지일, 이정열, 김진수, 강수정 등이 함께 한다.
▲뮤지컬 <원스> 공연사진
신시컴퍼니
관객과 함께 즐기는 프리쇼의 매력
극장 로비는 공연이 시작하기 한참 전부터 붐빈다. 객석으로의 입장이 시작되기도 전에 관객들은 줄을 길게 서 있다. <원스>의 특별한 매력이라 할 수 있는 프리쇼를 위해서다.
<원스>는 공연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배우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프리쇼를 진행한다. 이때 관객은 함께 무대에 올라 쇼를 즐길 수 있다. 작품의 배경은 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바(bar)인데, 무대에 오른 관객들은 실제로 음료나 와인을 구매해 마실 수 있다. 마치 바를 방문한 손님처럼 말이다.
프리쇼가 특별하긴 해도 완전히 새로운 형식은 아니다. 작년에 공연된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도 프리쇼를 진행했고, 배우들이 직접 관객과 소통하기도 했다. 다만 <원스>의 프리쇼가 특별한 점은 관객과 무대라는 공간을 공유하고, 음료를 사서 마실 수 있도록 함으로써 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하게 한 점이다.
프리쇼는 단순한 즐길 거리 이상의 의미가 있다. 공연을 즐기기 위해서는 관객이 뮤지컬의 세계관을 인정해야 한다. 시공간적 차이가 명확하다 할지라도, 판타지의 세계라 할지라도 뮤지컬의 세계관을 인정해야 공연에 몰입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원스>의 프리쇼는 관객을 작품의 세계관에 동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뮤지컬 <원스> 공연사진
신시컴퍼니
한바탕 쇼를 끝낸 뒤 <원스>가 조명하는 삶
무대에서 관객이 내려가고 공연이 시작된 후로도 프리쇼와 다르지 않은 쇼가 한동안 이어진다. 무대와 객석을 밝히는 조명도 여전히 점등되어 있다. 여전히 관객은 더블린의 바에 배우들과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여기까지 보면 관객과 배우 사이에 존재하는 가상의 벽을 뜻하는 '제4의 벽'이 제거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와 그녀가 처음 만나는 순간 제4의 벽은 다시 생겨난다. 그녀가 객석 통로를 통해 무대로 걸어오는 동안 조명은 서서히 꺼지고, 끝내 그와 그녀만을 비춘다. 운명 같은 만남을 상징하는 듯한 장면이다. 이때부터 <원스>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독자적으로 갖추고, 관객은 여기에 동의하면서 새로운 쇼가 시작된다.
그리 밝지 않은 현실에 낙담하던 그가 자신의 음악을 원하는 그녀를 만나고, 서로 위로하고 마음을 나누다가 다시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 언뜻 보면 뻔하게 느껴질 수 있는 서사이지만, 여기에 음악이라는 공통 감각을 발견하는 과정과 'Falling Slowly', 'Gold' 등의 명곡이 더해지면서 작품은 특별한 매력을 갖는다.
이뿐 아니라 그와 그녀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것을 다시 떠올리게 해준다. 낙담하던 그는 자신의 음악을 들어주는 한 사람, 다시 말해 아주 사소한 데에서 희망을 찾는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다. 또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을 괴롭히던 것들도 조명되는데, 이 역시 아주 사소한 것이다.
절망을 야기하는 것도, 절망에 빠진 한 사람을 희망으로 건져내는 것도 아주 사소한 무언가일 수 있다는 사실을 <원스>는 이야기한다. 특히 그와 그녀가 마음을 나누며 부르던 'Falling Slowly'는 공연 말미에 이르러 다시 한번 등장하는데, 이때는 곡의 의미가 사랑에서 인생으로 확장된 듯한 느낌을 준다.
낙관과 용기의 메시지를 음악의 힘을 빌려 전하는 뮤지컬 <원스>는 5월 31일까지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공연된다.
▲뮤지컬 <원스> 공연사진신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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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악기 연주, 관객은 와인... 뮤지컬 '원스'의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