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회 미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마이키 매디슨
제97회 미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마이키 매디슨EPA=연합뉴스

<아노라>가 현지시각 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여우주연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을 수상하며 5관왕에 올랐다. 총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남우조연상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수상했다.

성노동자 이야기를 다룬 저예산 독립영화인 <아노라>가 각본과 연출력, 연기, 편집 등 모든 주요 요소가 조화를 이루며 올해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립영화 오래 살아남을 것... 극장서 영화 보자"

생애 첫 감독상과 각본상 거머쥔 숀 베이커 감독은 무대에 올라 "진정한 독립영화를 인정해 준 아카데미에 감사하다"라며 "이 영화는 인디 아티스트들의 피와 땀, 눈물로 만들었다. 독립영화는 앞으로도 오래 살아남을 것"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베이커 감독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열풍을 겨냥한 듯 "이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라며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세상이 분열되고 있다고 느끼는 요즘 중요한 경험이 된다. 극장이 위협받고 있지만 극장 관람이라는 위대한 전통을 계속 이어가자"라고 강조했다.

<아노라>는 작품상 경쟁에서 <에밀리아 페레즈>와 유대인 건축가의 미국 정착기를 담은 <브루탈리스트>에 밀리는 했으나 최근 <에밀리아 페레즈>의 주연 배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이 과거 소셜미디어에 차별과 혐오 표현을 올렸고, <브루탈리스트>가 배우들의 발음 교정 등에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신분 상승을 꿈꾸는 뉴욕의 스트리퍼가 러시아 재벌2세와 결혼했으나 시댁의 반대와 훼방에 부딪히는 이야기를 담은 <아노라>는 현대 계급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아노라>는 예상을 깨고 여우주연상까지 받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마이키 매디슨은 가장 유력한 후보로 평가받던 <서브스턴스>의 데미 무어를 제치고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매디슨은 "할리우드는 항상 너무 멀게 느껴졌는데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되니 놀랍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 노동자 커뮤니티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저는 계속 지지하고 동맹이 되겠다"라며 "그 커뮤니티에서 만날 수 있었던 모든 여성들은 이 놀라운 경험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20대 배우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실버 라이닝 플레이북>의 제니퍼 로렌스 이후 10년 만이다.

'유대인 예술가' 브로디, 두 번째 남우주연상

 제97회 미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에이드리언 브로디
제97회 미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에이드리언 브로디AFP=연합뉴스

에이드리언 브로디는 <브루탈리스트>로 생애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29세였던 2003년 <피아니스트>에서 홀로코스트(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를 견뎌내던 유대인 음악가를 연기해 아카데미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했던 브로디는 이번에도 홀로코스트를 피해 미국에 정착한 헝가리 출신 유대인 건축가를 연기했다.

그는 "전쟁과 체계적인 억압이 트라우마, 반유대주의, 인종차별, 타자화를 남겼다"라며 "과거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증오를 방치하지 말라는 교훈"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이밖에 <컴플리트 언노운>에서 미국의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을 연기한 티모시 샬라메가 남우주연상에 후보에 올라 경쟁했으나 브로디에 밀렸다.

<에밀리아 페레즈>의 여배우 조이 살다나는 <위키드>의 아리아나 그란데, <컴플리트 언노운>의 모니카 바바로, <콘클라베>의 이사벨라 로셀리니 등을 제치고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이로써 살다나는 한 작품으로 칸국제영화제와 미국 아카데미에서 모두 연기상을 받은 첫 번째 배우라는 이색적인 기록을 세웠다.

이민자 가정 출신인 살다나는 수상 소감에서 "나는 꿈과 존엄성, 근면성을 가진 도미니카 출신 미국인 최초로 아카데미상을 받았다"라며 "내가 마지막이 아닐 것으로 믿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나홀로 집에> 시리즈 맥컬리 컬킨의 친동생으로 유명한 키런 컬킨은 <리얼 페인>에서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사촌 형제와 함께 폴란드 여행을 하는 연기로 남우조연상을 차지했다.

팔레스타인 참상 고발한 <노 어더 랜드> 장편 다큐상

국제장편영화상은 정보기관에 끌려가 실종된 남편 없이 강력한 모성으로 다섯 자녀와 가정을 이끌며 군사독재에 저항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브라질 영화 <아임 스틸 이허>가 받았다.

팔레스타인의 참상을 고발한 다큐멘터리 영화 <노 어더 랜드>는 장편 다큐상을 수상했다. 팔레스타인 활동가인 바셀 아드라 감독은 "전 세계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인종 청소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라고 말했다.

공동 감독을 맡은 이스라엘 저널리스트이자 유발 아브라함은 "우리는 가자지구의 잔인한 파괴를 봤고 이는 반드시 끝나야 한다"라며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잔인하게 끌려간 이스라엘 인질들도 풀려나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진정으로 자유롭다면 이스라엘 사람들도 안전할 것"이라며 "다른 방법은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시상식 진행을 맡은 유명 코미디언 코넌 오브라이언은 유쾌한 입담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에밀리아 페레즈>의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은 트랜스젠더 배우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2021년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을 겨냥해 인종차별 발언을 한 것을 비롯, 여러 혐오 논란 탓에 수상이 불발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가스콘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과거 발언을 사과하며 이날 시상식에 참석했고, 자신을 향한 오브라이언의 뼈 있는 농담도 박수로 웃어넘기며 동료 배우들의 수상을 축하했다.

모건 프리먼은 "할리우드가 거인을 잃었다"라며 최근 타계한 배우 진 해크먼을 애도했고, 블랭핑크의 리사는 K팝 가수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무대에 올라 도자 캣, 레이와 함께 007 시리즈 헌정 공연을 펼쳤다.
아카데미 오스카 아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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