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5년 결성해 1997년 1집 앨범을 발표하고 공식 데뷔한 델리스파이스는 자우림과 크라잉넛, 노브레인, 언니네 이발관 등과 함께 인디밴드 1세대를 대표했던 4인조 모던록 밴드다(2013년 이후 3인조로 재편). 특히 아다치 미츠루 작가의 만화 < H2 >를 모티브로 만든 델리스파이스의 5집 타이틀곡 <고백>은 영화 <클래식>과 드라마 < 응답하라 1994 >의 OST로 쓰이며 큰 인기를 얻었다.
<고백> 외에도 <항상 엔진을 켜둘께>와 <달려라 자전거>, <고양이와 새에 관한 진실> 등 많은 곡들이 사랑 받았지만 델리스파이스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노래는 역시 1집 타이틀곡 <차우차우>다. 부제이기도 한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가사의 전부인 <차우차우>는 부드럽게 시작해 점점 강렬한 사운드가 입혀지면서 48초 동안 이어지는 전주가 일품인 노래다.
<차우차우>는 떠나간 연인을 잊기 위해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지만 자꾸만 그 사람이 생각난다는 내용의 노래다. 그리고 <차우차우>가 발표된 지 16년이 지난 2013년, <차우차우>의 가사를 차용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가 제작·방송됐다. SBS 수목 드라마로 방송됐던 이보영과 이종석 주연의 판타지 법정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였다.
이보영과 이종석 전성기 연 드라마
▲이보영은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통해 연기대상 대상과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을 휩쓸었다.
SBS 화면 캡처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다가 2000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대전-충남 진에 선발된 이보영은 데뷔 초 항공사의 광고 모델로 출연해 단아한 매력을 뽐내며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영화와 드라마를 합쳐 1년에 세 편의 작품에 출연할 정도로 바쁘게 활동했던 이보영은 2009년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를 끝으로 휴식기를 가졌다가 2010년 <부자의 탄생>을 통해 복귀했다.
<애정만만세>와 <적도의 남자>를 통해 배우로 입지를 탄탄히 굳힌 이보영은 2012년 KBS 주말드라마 <내 딸 서영이>에서 주인공 이서영을 연기하면서 45%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견인했다. <내 딸 서영이>를 끝낸 이보영은 2013년 6월 SBS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출연해 '짱변' 장혜성 변호사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했고 SBS 연기대상 대상과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을 휩쓸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끝내고 동료 배우 지성과 결혼한 이보영은 2014년 <신의 선물-14일>에 출연한 후 출산과 육아를 위해 3년 간 휴식기를 가졌다. 이보영은 2017년 복귀작 <귓속말>을 20.3%의 시청률로 이끌며 건재를 과시했고 2023년 <대행사> 역시 16%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닐슨코리아 시청률 기준). 이보영은 오는 여름 방영 예정인 MBC 금·토 드라마 <메리 킬즈 피플>에 출연할 예정이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는 장혜성 변호사를 연기했던 이보영의 연기도 대단했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박수하 역을 맡았던 이종석의 열연 또한 기대 이상이었다. 2005년 모델로 데뷔한 이종석은 2010년 <시크릿 가든>과 2011년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2012년 < 학교 2013 > 등으로 주목 받았지만 한 작품을 이끌어갈 주인공으로는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은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종석은 데뷔 후 첫 주연작이었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초능력 소년 박수하 역을 맡아 호연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극찬을 받았다. 그 해 SBS 연기대상에서 10대스타상과 우수연기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 확실히 자리 잡은 이종석은 <피노키오>와 < W> ,<당신이 잠든 사이에>, <빅마우스> 등을 차례로 히트 시켰고 오는 7월에는 문가영·류혜영 등과 함께 tvN 드라마 <서초동>에 출연할 예정이다.
초능력-법정물-로맨스의 절묘한 조화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여왕의 교실>,<칼과 꽃>을 제치고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홈페이지
지금이야 최고 시청률 24.1%를 기록한 SBS의 효자 드라마가 됐지만 사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기획 단계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작품이다. 타인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남자 주인공과 고교 시절 살인 사건을 목격했던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라는 설정이 비현실적이었고 법정물과 미스터리 스릴러, 로맨틱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가 얽혀 있는 구성도 너무 복잡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SBS에서 편성을 계획했던 드라마들의 제작이 연기 또는 무산되는 일이 생기면서 대타 편성이 확정됐는데 우려와 달리 큰 사랑을 받으면서 결과적으로 SBS의 '복덩이'가 됐다. 2년 동안 각종 재판을 방청하며 법정을 취재해 대본을 완성한 박혜련 작가는 2011년 <드림하이>에 이어 <너의 목소리가 들려>까지 성공으로 이끌면서 명실상부한 스타 작가로 도약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장혜성(이보영 분)의 직업은 국선 변호사다. 장혜성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변호사가 됐지만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국선 변호사에 지원해 합격했다. 사실 영화나 드라에서 국선 변호사는 성의 없는 변론을 하는 캐릭터로 그려질 때가 많다. 장혜성 역시 처음엔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차관우(윤상현 분), 신상덕(윤주상 분) 같은 좋은 동료들을 만나 열혈 국선 변호사로 변모한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주인공 박수하(이종석 분)는 상대의 속마음을 읽어 유무죄 여부를 알아낼 수 있지만 이를 법정에서 증명하는 것은 장혜성 변호사의 몫이다. 박수하의 초능력은 법정에서 '증거 효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는 주인공이 가진 초능력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지만 초능력과 법정물의 매력을 적절하게 연결 시키면서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노래의 제목이나 가사를 인용해 지은 부제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즐기는 또 하나의 재미 요소였다. 이는 단순히 노래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당화 전체의 내용을 포괄하면서 시청자들의 이해도를 높였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시작된 박혜련 작가의 '부제 사용법'은 그녀의 후속작인 <피노키오>(문학 작품 제목)와 <당신이 잠든 사이에>(영화 제목)까지 이어졌다.
"죽인다"는 협박도 유행어로 만든 배우
▲정웅인은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사이코패스 살인마 민준국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시청자들의 극찬을 받았다.SBS 화면 캡처
<내조의 여왕>과 <시크릿 가든>을 통해 전성기를 연 윤상현은 2012년 <지고는 못살아>로 잠시 주춤했다가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차관우 역으로 재도약에 성공했다. 경찰 출신의 차관우는 생계형 국선 변호사 장혜성과 달리 국선 변호사가 되기 위해 로스쿨에 들어갔을 정도로 직업적 자부심이 대단하다. 차관우 변호사는 인간미가 다소 부족했던 장혜성에게 '휴머니즘'을 가르쳐준 좋은 동료였다.
2012년 아침 드라마 <내 인생의 단비>로 주연 신고식을 치른 이다희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판사 출신 유명로펌 변호사를 아버지로 둔 엘리트 집안 출신의 서도연 검사를 연기했다. 어린 시절 폭죽 사고의 피해자였던 도연은 혜성을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자퇴하게 만들고 검사가 된 후에도 변호사 혜성과의 악연을 이어간다. 하지만 마지막엔 함께 사건을 해결하고 혜성에게 과거 자신의 잘못을 사과한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이끈 네 명의 주연은 이보영과 이종석, 윤상현, 이다희였지만 이 드라마의 최고의 신 스틸러는 단연 악역 민준국을 연기했던 정웅인이었다. 특히 "말하면 죽일 거다"라는 민준국의 무서운 대사가 드라마 방영 당시 유행어가 됐을 정도로 큰 화제가 됐다. 박수호의 아버지와 장혜성의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의 왼손까지 잘랐던 사이코패스 살인마 민준국은 법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흔히 판사라고 하면 진중하고 권위적인 이미지가 강한데 그런 이미지를 깨버린 캐릭터가 바로 김광규가 연기했던 부장판사 김공숙이다. 장혜성이 국선 변호사 면접을 볼 때 면접관이었던 김공숙 판사는 장혜성이 변호를 맡은 모든 재판에서 판사를 맡았다. 김공숙 판사는 대부분의 장면에서 유쾌하고 소탈한 매력을 보여주면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드라마의 긴장을 풀어주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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