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0일, 박민성이 부산 지역에서 뛰는 유일한 여자 리틀야구 선수로서 롯데 구단으로부터 초청받아 롯데-한화전 시구를 했다. 사진은 포수 강민호(현 삼성)와 파이팅을 나누는 모습.
롯데자이언츠 제공
"선수로 사직에 다시 설 수 있어서 너무 기뻤습니다."
여성은 오직 '시구자'로서만 그라운드를 밟을 수 있었다. 그러나 9년 동안 야구 선수의 꿈을 놓지 않고 달려온 한 소녀는 끝내 '선수'로 프로야구 경기장에 섰다.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투수 박민성(22)이 그렇다.
박민성은 여자야구 대표팀 '에이스' 중 한 명이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공을 잡았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15년 4월 10일, 박민성은 부산 지역 유일의 여자 리틀야구 선수라는 이유로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구단의 초청을 받아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한화전 시구를 했다.
그때 '야구소녀'의 마음 한 켠에 "나도 언젠가 선수로서 많은 관중들 앞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이 일었다. 같이 야구를 하던 친구들은 엘리트 중·고등학교 야구부에 진학하고, 프로에 도전하고 있는데, 박민성은 엘리트 팀에서 뛸 수가 없어 부산에 있는 어느 사회인 여자야구팀으로 향했다.
뛰어난 야구 실력 덕에 고등학교 1학년부터 여자야구 대표팀에 전격 발탁된 박민성은 지난 2023년 대표팀 주축으로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야구연맹(BFA) '여자야구 아시안컵' 3위를 이끌었고, 향후 10년 넘게 '여자야구'를 책임질 재목으로 평가 받는다.
어린 나이에 국제대회를 두루 경험한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생겼다. 바로 9년 전 시구했던 사직야구장에서 '선수'로 당당하게 그라운드를 누빈 것이다.
프로야구 롯데 구단은 지난 2024년 11월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간 한국여자야구연맹과 손잡고 '2024 자이언츠배 여자야구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대회가 초대 대회로 프로야구팀이 여자야구 대회를 주최한 첫 사례이기도 하다. 롯데에서 '여자야구 저변 확대와 대중화'를 위해 만든 것이다.
박민성의 사회인야구 소속팀 '창미야'도 이 대회에 참가했다. 당시 박민성은 화농성관절염 때문에 재활 중이어서 투수로 마운드에 서진 못했고, 타자로 타석에 섰다. 내야 수비도 봤다. 그럼에도 너무나 벅찼다고.
박민성은 필자와 통화에서 "선수로 사직구장에 설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다. 그 어느 때보다 긴장했던 것 같다. 사직구장에서의 경기는 내게 뭔가 특별하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했다.
투수가 주포지션인데 부상으로 인해 마운드에서 투구하지 못한 건 아쉽다고도 했다. 그러나 박민성은 "아쉬움도 있지만, 나의 출발점과 같은 사직구장에서 이렇게 선수로 뛰니 나의 '성장'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라며 웃었다.
▲박민성이 국제대회에서 투구를 하는 모습.
황혜정
대회 열고 야구교실까지... 롯데의 시도가 의미 있는 이유
롯데 구단은 단순히 보여주기용 대회를 만든 게 아니었다. 경기 전 여성 팬 대상 '야구교실'을 열었고, 프로 선수들이 먹는 뷔페 만찬이 준비됐다. '창미야'와 '리얼디아몬즈'의 결승전 경기에는 롯데 투수 최준용과 포수 손성빈이 투입돼 실감난 중계를 했다. 해당 영상은 15분 분량으로 편집돼 구단 공식 유튜브 계정에 올라갔는데, 조회수 7만4000회(3월 20일 기준)를 기록했다. 롯데 선수들의 웨이트 훈련 모습을 담은 영상보다 조회수가 훨씬 높다. 여자 선수들의 경기 영상도 충분히 화제성이 된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한편, 이날 결승전 관중은 약 300명. 2만 명 앞에서 경기를 하는 프로야구 경기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너무나 의미 있고 뜻깊은 300명이 이날 여자야구 경기를 끝까지 지켜봤다. 롯데는 실제 프로야구 경기처럼 여자 선수들 사진과 이름을 대형 전광판에 띄우며 일일이 소개를 했고, 이닝 중간 여자야구 관련 퀴즈를 진행하며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관중 호응을 유도했다.
박민성은 "롯데에서 여자야구에 힘 써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덕분에 우리를 보러 와주시는 관중들이 생겼고, 많은 분들이 보고 계시는 자리에서 야구를 할 수 있는 좋은기회였다. 좋은 추억 만들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했다.
9년 간 야구공을 놓지 않고 끝내 '선수'로 사직구장을 다시 밟은 박민성도 대단하지만, 드라마 같은 서사를 완성시키는 판을 깔아준 롯데 구단의 기획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2024시즌 한국 프로야구 1000만 관중 돌파의 최대 공헌자는 20~30대 여성이었다. 롯데는 여성을 단순히 야구를 '관람'하는 팬으로 인식하는 것을 넘어 '직접' 공을 던지는 주체로 받아들였다. 결국 그것이 한국 야구의 저변 확대와 궁극적인 발전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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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시구한 그 소녀를 다시 사직구장에... 롯데 칭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