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3·1운동 106주년을 맞이했다. 조선의 후신인 대한제국이 끝내 멸망하고 일제가 한반도를 무단통치한 지 10년째 되던 1919년, 한반도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었다. 식민지로 전락한 망국의 백성들이 거리로 나와 옛 국가의 복원을 부르짖으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친 일대 저항운동이었다.

세계의 경향에 발맞춰 왕정이 아닌 공화정의 수립을 지향했던 지식인들의 선언이, 이미 망했을지라도 제 나라였던 조선의 복원을 부르짖은 민중의 열망과 합쳐져 이뤄낸 불길은 대단한 것이었다. 2000만 명에 불과했던 당대 식민조선인 가운데 200만 명이 적국의 군대가 점령한 거리로 나와서 만세를 불렀다 하니, 한반도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순간이 바로 이날이 아니었을까.

역량을 갖추지 못했던 식민지 조선이 만세운동으로 독립에 이를 수 없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3·1운동은 향후 역사에 길이 남을 빛나는 사건으로 자리한다. 첫째로는 그 정신을 직접 계승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단 사실, 둘째는 공화정이 향후 수립될 국가체제로 사실상 합의되었다는 점, 셋째는 일본의 식민지통치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만큼의 효과를 이뤄냈다는 것이 3·1운동의 주된 의의가 될 테다.

소외된 독립운동사를 조명하는 창작극

 영화 <암살> 스틸컷
영화 <암살> 스틸컷쇼박스

3·1운동의 성과에도 식민지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로 남았다. 그것도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식민지 조선의 잠재력에 위기감을 느낀 일제는 저항의 가능성을 완전히 말살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한다. 한반도는 문화통치를 통해 민심을 달래고, 만주 등 해외 거점을 초토화하려 한 것이다. 특히 장기적으로 만주를 식민화해 제국의 경제적, 군사적 기반을 강화하려는 계획까지 더해진 간도참변은 역외 독립군에게 그 기반을 상실케 하고, 간도에 정착한 조선인 사회 전반에 치명적 타격을 입혔을 정도였다.

항일운동을 다룬 영화 가운데 상업적으로 가장 크게 성공한 <암살>은 일제가 벌인 간도학살 이후 국지적 전투에서 암살작전 위주로 변경된 무장독립운동의 한 장면을 창작해 구성한 작품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밀명을 받아 조선 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박병은 분)와 민족의 배신자 강인국(이경영 분)을 암살하려는 이들이다. 여성 독립군 안옥윤(전지현 분)을 비롯해, 감옥에서 탈옥한 속사포(조진웅 분)와 황덕삼(최덕문 분)으로 구성된 3인방, 어찌저찌 이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되는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분)이 바로 그들이다.

영화는 카와구치가 과거 1920년부터 전개된 간도출병에서 전쟁범죄를 저지른 자란 걸 드러낸다. 극 중 일본 장교로 위장해 카와구치에게 접근한 하와이 피스톨이 '조선인을 몇이냐 죽여보았느냐'고 묻자 그가 손가락 세 개를 드는 장면은 이 영화의 인상적 순간 가운데 하나다.

처음엔 그저 3명인 줄 알았던 손가락 세 개의 의미가 나중엔 300명이었단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더욱 끔찍한 것은 역사가 기록하는 간도출병이 간도전투가 되지 못한 탓이다. 간도출병은 차라리 참변이며 대학살이라 불러야 마땅한데, 일본이 대대적으로 군을 움직인단 첩보를 입수한 독립군이 먼저 간도를 떠난 탓으로 상대를 찾지 못한 일본군이 대신 만주 일대의 조선인을 닥치는 대로 죽였기 때문이다.

3000명 조선인 학살 '간도의 비극'

 영화 <암살> 스틸컷
영화 <암살> 스틸컷쇼박스

역사는 간도참변으로 죽은 조선인이 3000여 명에 이른다고 기록한다.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피해는 기록한 것보다 훨씬 컸을 게 자명하다. <암살>에서 카와구치를 죽이려 하는 안옥윤 또한 간도참변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다. 그녀는 이완용을 암살하려 한 독립운동가의 딸로 그려지는데, 제 어머니의 암살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뒤 유모에 의해 만주로 옮겨진다. 그러나 유모는 이후 간도참변에서 일본군에게 총에 맞아 죽고, 안옥윤은 수많은 이들이 끔찍하게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한 사실을 목격한다.

이처럼 <암살>은 3·1운동 이후 이뤄진 일련의 사건 위에 세워진 이야기다.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일제가 벌인 간도참극, 독립군을 동원한 전투수행 대신 암살작전으로 전개된 무장투쟁의 변화를 모두 반영했다. 그 과정에서 실제 존재했던 밀정의 존재와 그것이 낳은 폐해 또한 소재로 활용한다. 실재했던 역사를 있는 그대로 혹은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하는 대신,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전면적 창작을 감행한 흥미로운 시도다.

장르적 상업영화 연출에 탁월한 자질을 발휘해 온 감독 최동훈이다. 그가 전지현과 하정우, 이정재, 조진웅, 오달수, 이경영, 조승우, 김해숙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을 다수 기용해 찍어낸 독립운동 영화는 10여 년 전 한국영화가 서 있던 대중적 관심과 영화적 역량, 창작의 활기가 어떤 상태였는지를 확인케 한다. <암살>이 있고 꼭 1년 뒤 김지운의 <밀정>이 있었다. 영화진흥위원회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두 작품은 각기 1270만 명과 750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모두 손익분기점을 상회했다.

꺼져가는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

 영화 <암살> 스틸컷
영화 <암살> 스틸컷쇼박스

흐른 시간은 10년 안팎이지만 독립운동을 다룬 작품을 바라보는 평가는 전과 같지 않다. 2022년 <영웅>은 327만 명, 지난해 <하얼빈>은 490만 명의 관객을 모았을 뿐이다. 두 작품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두 작품 모두 실화를 뼈대로 약간의 극적 변주를 감행했다. 제작 일선에선 독립운동을 다룬 작품이 별다른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때문일까.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상상의 날개를 펼쳐나간 수준급 각본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비단 문화예술만의 문제는 아니다. 관심을 두고 때때로 후원하는 몇몇 독립운동 및 독립운동가 기념사업회 관계자를 마주할 때면 최근 몇 년간 독립운동에 관심이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푸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각종 기념사업이며 제작 콘텐츠에 대한 관심은 물론이고, 생존에 직결되는 후원까지 급감하고 있단 소식이다. 무엇보다 이런 단체를 후원하는 층이 대체로 고령에 접어든 기성세대이고 보면, 독립운동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

1000만 관객 모은 독립운동 영화의 가치

 영화 <암살> 포스터
영화 <암살> 포스터쇼박스

영화가 나온 당시만 해도 <암살>은 흥행성적에 비해 아쉽다는 평을 많이 받아들었다. 각별히 빛나는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부터 <타짜>, <전우치>, <도둑들>에 이르는 화려한 전작들에 비하여 <암살>의 짜임새며 흐름이 다소 아쉬웠던 탓일 테다. 총기를 잃고 재기만 남은 듯한 각본과 연출이 눈에 밟히는 것도, 장점이던 선명한 캐릭터가 더는 새롭지 않게 느껴지는 것도 단점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암살>은 다시금 조명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그건 독립운동을 그저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는 흔한 방법에서 그치지 않고 창작을 위한 재료를 발굴하는 장으로 활용한 자세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익히 영화에서 다뤄진 적 드문 간도참변을 캐릭터의 전사로써 인상적으로 활용해 역사적 반영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자세라면 일제강점기 전체 기간 가운데 수많은 이야기를 발굴해 영화화 하는 것이 가능할 테다. 다수 대중이 충실히 알지 못하는 소재를 바탕으로 말이다.

또한 활약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못한 독립운동가 김원봉이며 실제 전선에서 활약한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 전월순, 이화림의 존재를 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렇다면 <암살>이 이룬 성취가 충분하다 하지 않을까. 일제의 폭압과 민족적 저항의 의미를 되새기는 3·1운동 기념일에 <암살>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암살 최동훈 전지현 하정우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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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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