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7일자 <한국일보> 스포츠면 톱기사에 손가은의 이야기가 올라갔다.
한국일보
보도의 파장은 제법 컸다. 손가은의 경기 모습을 보러 오는 팬들이 있었고, 이들은 손가은에게 빵을 건네며 "덕분에 여자야구 선수가 있는 것을 알았다. 정말 멋있고, 응원하고 있다"고 격려했다고 한다.
다른 매체에서도 손가은 인터뷰 기사를 많이 냈다. 필자가 존경하는 선배 동아일보 임보미 기자가 <옛말된 '금녀(禁女)의 땅'… 78년史 첫 여고생, 1루를 지켰다>라는 기사로 한국일보가 주최한 '봉황대기'에 이어 이듬해 5월 열린 동아일보가 주최한 '황금사자기'에도 출전한 손가은을 조명하는 기사를 썼다.
일주일 뒤엔, 필자가 좋아하는 선배인 경향신문 이두리 기자는 <야구소녀 손가은 "목표는 선수로서 야구를 계속하는 것">이라는 인터뷰 기사를 세상에 내놓았고, 그 다음달엔 주간지 <시사인>에서 이 주의 인물로 손가은을 선정하며 <방망이 휘두르며 길을 내는 여자 야구>라는 인물 기사를 썼다.
다시 1년이 지났다. 손가은은 2024년 8월 16일 '봉황대기' 두 번째 무대에 나섰다. 이번엔 타자가 아니라 투수로 마운드에 섰다. 그것도 선발투수로 당당히 나섰다. 주최사 '한국일보'는 손가은의 경기 내용을 자세히 다루며 "손가은이 53년 봉황대기 역사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지난해 타자로 전국대회 신고식을 치르더니 올해는 당당히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여고생이 봉황대기 마운드에 오른 것은 사상 처음이다. 비록 안타를 치지 못하고 아웃카운트를 잡지 못했지만 10대 청춘의 야구, 그 자체가 낭만적이었다"고 보도했다.
최근 손가은에게 '야구하는 그녀들' 연재의 한 꼭지 주인공이 되어 달라며 당시 일을 물었다. 손가은은 "기사가 많이 나가 친구들이 아직까지도 나를 '손스타'라고 부른다"며 쑥스러워한 뒤 "보도가 나가면서 경기장에서 행실을 더 조심하게 됐다. 그리고 더 잘해야 '여자야구' 선수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질 텐데 결국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해서 여전히 아쉽다"고 말다.
악플도 많았지만, 여성으로서 남자 엘리트 고교야구 무대에 '도전'한 것에 후회는 없다고. 손가은은 "앞으로 더 많은 여학생들이 자신 있게 고교 무대에 도전해, 내가 이루지 못한 안타를 꼭 쳐내길 바란다"며 웃었다.
기자로서 뿌듯하고 자부심을 느낀 순간은 많지만, 손가은 '단독' 보도는 필자 스스로 '잘했다'고 느낀 일이다. '여자야구'에 관심이 없었다면 그저 흘러 지나가 버렸을 한 야구 소녀의 위대한 도전이 기록으로 평생 남게 됐다. 이와 동시에 전국의 몇 안 되는 야구 유소녀들의 마음 속에도 고교야구 무대에서 안타 하나, 삼진 하나를 잡겠다는 불씨가 일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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