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야구 대표팀 투수 곽소희가 공을 던지고 있다. 투구폼이 흡사 한화 투수 김서현과 닮았다.
여자야구 대표팀 투수 곽소희가 공을 던지고 있다. 투구폼이 흡사 한화 투수 김서현과 닮았다.황혜정

다들 묻곤 한다. "여자야구는 왜 취재하는 거예요?"

그도 그럴 것이 '조회수'로 수입을 얻는 요즘의 미디어 생태상, 공들인 여자야구 기획 기사 100개보다, 인기 프로야구 스타의 인터뷰 기사 1개를 쓰는 것이 더 이득이다. 인정한다. 들인 품 대비 '가성비'가 상당히 떨어지는 일이다. 기사를 읽는 독자를 고려하더라도 '여자야구' 선수들은 생소하다 보니 독자들이 더 재밌어하는 알 만한 선수들의 이야기를 쓰려 한다.

필자가 지난 2년 넘게 여자야구를 취재하며 들은 소리는 "도대체 왜?"였다. 그때마다 "저도 큰 기대 없이 갔다가 보다 보니 너무 재밌고, 스토리가 풍부하네요"라고 하기도 해보고, "여자야구도 엄연히 남자 프로 선수들과 똑같은 규격에서 똑같은 공으로 하는 야구고, 국가대표팀도 운영되는데 취재는 해야죠"라고 하기도 하거나, 멋있어 보이고 싶을 땐 "여자야구가 발전해야 야구 산업 전체 '파이'도 커지죠. 궁극적으로는 야구 산업을 키우는데 이바지하는 거죠"라며 넘어가기도 한다.

지난해 가을, 2년 9개월 동안 재직했던 첫 회사인 한 스포츠 일간지를 퇴사하고 쉬는 중에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2019)를 보다가 마음을 울리는 이유를 발견했다. 바로 대학야구를 보러 간 프로팀 스카우트의 말에서였다.

드라마 <스토브리그> 14화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프로야구팀 '드림즈'의 스카우트 팀장 양원섭(배우 윤병희)은 팀원 한재희(배우 조병규)를 데리고 대학야구팀이 훈련하는 곳으로 향한다. 그러자 한재희는 양 팀장에게 "요새는 대학야구 선수들 잘 선발하지 않지 않아요?"라며 이곳에 자신을 데리고 온 연유를 묻는다. 양 팀장은 "맞다. 우리팀도 잘 안 뽑는 추세"라며 프로에서 대학 출신 선수들을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양 팀장은 "프로팀 스카우트가 와서 봐줘야지 제대로"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 다음 말이 백미다. 양 팀장은 이같이 덧붙이며 눈을 반짝인다.

"아무도 안 보는 노력을 하고 있으면 얼마나 서글프겠냐. 대학야구를 보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지."

너무나 공감한 말이다. 주중에는 학업에 집중하거나 생업을 이어가는 선수들이 주말마다 1박 2일로 소집 훈련을 받는다. 주말에만 야구를 하는 게 아니다. 주중에도 짬을 내 따로 레슨장을 다니거나 근력 운동을 하며 프로 선수만큼 노력하면 노력했지, 덜 하지도 않는다.

감독이 기자에게 "감사하다"며 고개 숙이는 이유

 여자야구 대표팀 외야수 양서진(왼쪽)과 내야수 정다은이 이닝을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여자야구 대표팀 외야수 양서진(왼쪽)과 내야수 정다은이 이닝을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향하고 있다.황혜정

물론 모든 야구 선수들이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며' 야구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누구는 XY 염색체로 태어나 야구를 잘하면 엘리트 야구부가 있는 중·고등학교에 들어가 자연스레 프로야구 선수의 꿈을 꾸고, 실제로 프로 선수가 돼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돈을 받고 야구를 마음껏 한다. 반면 누군가는 XX 염색체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엘리트팀에 입단하지 못하고, 프로야구 선수의 꿈조차 꾸지 못한다.

이로 인해 '한국 여자야구 대들보' 김라경은 '직업 야구 선수'로 뛰고 싶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자야구 실업팀을 운영하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김라경이 일본 무대 진출을 위해 열심히 훈련을 할때 같은 센터를 다녔던 키움히어로즈 외야수 이형종은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김라경은 내가 인정하는 야구인 3명 안에 듭니다."

그만큼 김라경이 야구를 대하는 태도, 훈련에 쏟아 붓는 노력 등이 베테랑 선수가 보기에도 대단했던 것이다.

이렇게 별다른 지원 없이 묵묵히 다들 사비를 들여가며 각고의 노력을 하는데 단지 '프로'가 아니라는 이유로, '프로' 입단 예정 선수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미디어도, 팬들도 찾지 않는다.

그럼 미디어와 팬이 많아지면 실력이 좋아질까? 필자는 그렇다고 믿는다.

여자야구를 취재하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와주셔서 감사하다"라는 인사다. 서울권 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직 제안도 고사하고 '사명감' 하나로 여자야구 대표팀을 3년째 이끌고 있는 전 롯데·SK 포수 출신 허일상 감독은 매번 필자에게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인다. 허 감독은 "기자님이 와주시니 오늘따라 선수들의 움직임이 너무 좋네요. 자주 와주세요"라고 말하곤 한다.

물론 필자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일 수도 있지만, 선수들은 입을 모아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내가 잘한 플레이가 기사로 나가니 더 잘하고 싶어진다. 기사가 나가면 주변에서 응원의 메시지를 많이 받는다. 힘이 정말 많이 난다"고 한다. 기자 1명의 출현으로도 큰 동기부여가 되는 셈이다.

팬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여자야구 국가대표 훈련장은 대부분의 경우 고정적으로 화성 드림파크에서 주말마다 열리는데, 협소한 관중석에 앉아있는 10명 남짓 관중들은 전부 선수 가족이나 친구들일 뿐, 친인척 관계가 없는데 멀리서 보러 오는 사람은 없다. 이해한다. TV나 신문, 인터넷으로 여자야구 중계나 기사를 찾아보기 힘든데, 팬이 될 기회도, 경기 정보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1명의 팬이 찾아오는 그날까지 더 열심히 여자야구의 매력과 감동적인 스토리를 알리는 데 힘쓰겠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께서도 여자야구를 보고 싶다면 주말마다 화성 드림파크를 찾으면 된다. 관람은 무료이며, 선수들의 훈련이 끝나면 언제든지 함께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을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여자야구 대표팀 훈련을 도와주러 오는 프로야구 출신 '스타' 선수들을 볼 수도 있다.

 여자야구 대표팀 외야수 주은정이 타구를 쫓아 달려가고 있다.
여자야구 대표팀 외야수 주은정이 타구를 쫓아 달려가고 있다.황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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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필자는 전 스포츠서울 야구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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