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의 썸머> 스틸
롯데컬처웍스㈜롯데시네마
대개 이런 유형의 작품은 20·30대 여성을 주요 공략대상으로 삼는 법이다. 하지만 <500일의 썸머>는 확실히 다른 결이다. 오히려 그 대척점에 선 젊은 남성들에게 초점을 두고, 그들의 연애 시절 심리 묘사와 구축에 무척이나 공을 들인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있자면 주마등처럼 본인의 사랑과 이별을 떠올리는 건 물론, 뒤늦게 자신이 당시에 무엇을 실수했고 놓쳤는지 심판대에 선 기분을 느끼기에 이른다. 이 영화에 비길 연애 코치가 따로 없을 지경이다.
그런 세밀한 표현을 보고 있자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 이도 제법 나올 테다. 그 정도로 은근히 제법 맵다. 톰이 무심코 저지르는 이기적인 면모와 일방적인 태도에 뜨끔해지면 뒤를 따르는 건 돌아올 수 없는 실연의 회한이다. 그때 조금만 덜 성급했다면, 생각을 차분하게 하면서 상대를 배려했다면 어쩌면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후회.
이런 놀라운 심리 유발 효과는 영화가 500일 동안의 주요 분기점을 막연한 시간순과는 전혀 다른 배열로 해부하듯 펼치기에 가능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위주로만 이상화하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편집하는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속성을 폭로하듯, <500일의 썸머>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로맨스를 해체해버린다.
그리고 균형감 있게 톰과 썸머의 시선을 분배해가며 잘잘못을 관객에게 제시한다. 그렇게 공을 넘겨받은 관객은 배심원이 된 양, 매번 국면마다 이건 톰이 실수했고, 저건 썸머가 너무했네 하며 판정을 내려야 한다. 그저 웃고 슬퍼하며 구경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SNS 숏폼 콘텐츠에서 우려먹는 소재가 있다. 젊은 남성이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면, 그저 친절하게 응대하거나 웃어주기만 해도 머릿속에선 벌써 결혼식 장면이 재생된다는 이야기다. 그 익숙한 설정은 영화 속 톰의 그것과 거의 복사해 붙인 수준이다. 톰 역시 정작 말도 제대로 붙이지 못하면서 혼자만의 상상을 펼친다. 그리고 꿈이 실현되자 그야말로 꿈나라에 머문다. 마치 피그말리온이 아름답게 조각된 동상에 외사랑을 펼치듯 말이다. 하지만 그의 상대는 명백히 자아를 가지고 독립된 삶을 살아가는 성인이다. 톰의 궁극적 패인은 바로 거기에서 비롯된다.
이 영화를 본 이들 사이에서 유독 흥미로운 지점은 썸머에 관한 평판이다. 톰이 21세기 한국 남성들이 평범하게 연애에서 저지르는 실수와 편향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형국이란 점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데, 그런 톰의 상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게 갈리는 것이다. 혹자는 썸머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썸 타는 상대를 마치 어장 관리하듯 대한다는 지적을 던진다. 반면에 '썸머 효과'라 영화 속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연예인급 외모는 아니라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누구건 호감가는 썸머의 조건을 볼 때 그 정도 자기 보호 심리가 당연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다양한 결로 나뉘는 연애에 대한 입장은, 그만큼 본 작품이 현대 연애의 구조적 문제에 깊숙하게 파들어간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평범한 듯 비범한 남녀 캐릭터, 세련된 영화 속 패션과 음악, 그리고 쓰라린 연애의 결과로 각자 '성숙'해진 인물들의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틈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미래를 진단하는 자신을 바라보게 될 테다.
▲<500일의 썸머> 포스터롯데컬처웍스㈜롯데시네마
[작품정보]
500일의 썸머
500 Days of Summer
2009|미국|멜로/로맨스, 드라마
2025.02.12. (재)개봉|95분|15세 관람가
감독 마크 웹
출연 조셉 고든 레빗, 주이 디샤넬
수입 (주)퍼스트 런
배급 롯데컬처웍스㈜롯데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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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