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백수아파트>를 연출한 이루다 감독.
영화 <백수아파트>를 연출한 이루다 감독.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고향 충북 청주에서 유독 재개발 관련 사건들이 눈에 들어오던 시기가 있었다. 주민들을 협박하던 건설사, 주민끼리의 갈등, 업체들의 각종 비리 등. 영화 연출부 일을 10년 넘게 하면서 자기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유독 이 사건이 떠올랐다고 한다. 첫 장편 연출작 <백수아파트>로 관객과 만나게 되는 이루다 감독은 주요 사건으로 재개발 지역 원주민을 쫓아내기 위한 술수를 부리는 시공사, 그리고 용역 업체 간 짬짜미를 다뤘다.

무거워 보일 수 있는 소재지만 감독의 가장 큰 목표는 '유쾌함을 잃지 말자'였다. 주인공으로 내세운 안거울(경수진)이 핵심이었다. 말대로 백수라고 동생에게 질타받는 존재지만, 특유의 오지랖으로 정의구현을 해야 속이 풀리는 존재. 이혼한 동생과 살며 그의 자녀를 돌보다 동생의 질타로 '백세아파트'라는 곳에 월세를 얻은 안거울의 이야기는 감독의 어떤 지점과 닮아 보였다. 25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신예 이루다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백수가 성취하는 이야기... '언더독'을 애정하는 이유

영화 <백수아파트>는 2020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 수상작이다. 정확히는 상반기에 떨어졌던 작품을 수정한 결과 당해 하반기에 수상하게 됐다고 한다. 친가족에게 무시당하는 백수가 아파트 층간 소음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가 점차 일이 커지는 과정을 담았는데, 감독이 직접 겪었던 사건 일부도 담겨 있었다.

"백수가 성장하고 성취하는 이야기를 쓰자는 게 1번 목표였고 그 다음이 층간 소음 문제였다. 개인적으로 언더독의 성장물을 좋아한다. 사람들이 연대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도 좋아하고. 제가 눈물이 없는 편인데 일본 영화 < 100엔의 사랑 >을 보고 펑펑 울 정도였다. 여기에 제가 겪었던 층간 소음 문제도 반영했다.

1년간 고생했는데 어느 날 무서워지더라. 날을 잡고 오피스텔 집집을 돌아다녔다. 알고 보니 건물 외벽에 붙어있던 현수막의 줄이 삭으면서 벽을 쾅쾅 치고 있더라. 그때 생각했다. '오지라퍼' 한 명이라도 살았으면 이렇게 다들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이 생각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떠올랐다. 사소한 걸 심도 있게 파는 누군가로 따뜻함을 전하고 싶었다.

재건축 비리는 제가 청주에 살면서 무리한 재개발 추진으로 원주민이 고통받는 일을 종종 봤기에 참고했다. 그렇다고 사회 고발 같은 거창한 주제를 제시하려던 건 아니다. 다만 시공사와 조합의 카르텔이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 내부고발자 없이는 진실을 밝히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한 오지라퍼로 감화된 사람이 내부고발자가 된다면 오지랖의 선한 영향력과 연대의식의 중요성을 한층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층간소음 범인을 찾기 위해 몇몇 이웃과 동분서주함에도 결국 특정 개인을 지적하고 박제하는 식으로 결론 내지 않는 데 있다. 소동극 형식이라지만 이루다 감독은 "빌런은 개인이 아닌 시스템임을 말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안거울이라는 캐릭터가 중요했다. "시나리오 쓸 때 캐릭터 이름 생각하는 걸 좋아하고, 가장 먼저 결정해놓고 쓴다"며 "거울이 가진 단단한 이미지에 K-장녀로서 일종의 미러링 효과를 주기 위함이기도 했다"고 짚었다.

"설정상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삼남매(장녀는 안거울, 두 동생은 각각 변호사와 경찰)가 꽤 부대끼며 의지하며 살았을 것이다. 둘째 두온(이지훈)이 변호사 시험을 준비할 때부터 전적으로 뒷바라지를 해줬을 것이다. 물론 영화엔 둘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나오는데, 딸 이름을 명경이라고 지은 걸 보면 누나를 존경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참고로 김주령 배우님이 맡은 지원이란 캐릭터는 고모 이름에서 따왔다."

마동석, 그리고 배우들의 지원

 영화 <백수아파트>의 한 장면.
영화 <백수아파트>의 한 장면.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감독 이름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름대로 연출의 꿈을 이뤘다. 대학교에서 연출 전공 이후 꾸준히 영화 일을 해왔다. 변영주 감독의 <화차>(2011)가 첫 대중영화 현장이었다. 본래 꿈이던 연출, 개봉까지 약 14년이 걸린 셈.

"어렸을 땐 이름으로 놀림도 받았다. 이름이 특이해서 선생님들이 발표도 자주 시켰다. <화차> 때 제가 최연소 스태프라고 알고 있다. 그때 슬레이트를 정말 열심히 했다. 나름 노하우가 있거든. 감정신인지, 야외인지 실내인지에 따라 다르게 쳐야 한다. 한 감독님이 연출하고 싶다면 슬레이트를 만 번 쳐보라고 하셨다. 아마 제가 맡고 있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었을 거다.

연출부 안에서 미술, 소품 담당 등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여러 감독님 밑에서 선택과 집중하는 법을 배우고 모든 과정을 흡수했다. 그렇게 돈을 벌어 시나리오를 그때그때 썼다. 그러다 <변신>(2019)을 끝으로 이제 감독을 하지 않고서는 현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정말 그 목표를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관객분들 만나는 게 감회가 남다르다. 저와 함께 연출 준비를 한 친구들이 많거든. 다같이 기뻐해주고 있다."

여기에 배우 마동석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의 <백수아파트>에 세 그룹의 제작사가 참여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마동석이 설립한 빅펀치픽쳐스다. 처음 이루다 감독의 시나리오를 읽고 제작을 결심한 이오콘텐츠그룹 오은영 대표 권유로 노바필름과 빅펀치픽쳐스가 참여하게 됐다. 투자·제작까지 약 3년이 걸렸다. 마동석 또한 여러 차례 시나리오 회의에 참여해 감독에게 캐스팅과 주요 설정 관련 아이디어를 전했다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한국영화 제작 편수가 줄 때라 꽤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그래도 꾸준히 기획 피디님과 발전시켜나갔다. 그 과정이 당시엔 힘들었는데 나름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는 과정이었다."

끝으로 이루다 감독은 안거울 역의 경수진을 비롯, 기꺼이 신인 감독 작품에 참여해준 배우들을 언급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제작사 추천으로 만나게 된 경수진은 감독도 내심 원하는 캐스팅이었고, 배우 고규필·이지훈은 이 작품을 위해 평소 눈여겨 본 바 감독이 발 빠르게 캐스팅한 경우였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연기력이었다. 경수진 선배는 <나 혼자 산다>에서 봤을 때 그 능동적인 모습에 꼭 뵙고 싶었다. 정말 가식 없고, 마치 전교 회장 느낌이더라(웃음). 선배님도 거울 역할을 꼭 하고 싶다셔서 기분 좋게 미팅했던 기억이 있다. 규필 선배님은 특유의 그 쭈글한 연기톤을 제가 너무 좋아한다. 원래 일정이 안 돼서 시나리오를 못 드렸는데, 일정이 될 수도 있다는 소문을 듣고 제가 급히 접선했다. 현장에서 정말 진짜 그대로 연기하시는 분이시더라.

두온 역의 이지훈 배우는 제가 연출부일 때 한 작품에 출연한 인연이다. 그 작품은 비록 세상에 못 나왔는데 그때 그 친구 재능이 뛰어나다는 걸 알게 됐다. 대사의 미묘한 뉘앙스까지 다루는 통찰력이 있는 배우다. 그리고 김주령 선배님은 제가 엄청 팬이었다. 너무 같이 하고 싶어서 제 개인사를 다 읊었던 기억이 있다. 가만히 들으시더니 이 이야기와 감독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 하셨다. 그때 살짝 울컥했다. 영화 초반 등장하셔야 하는데 이웃집 사람들 그룹에서 튀지도 않고 묻히지도 않게 그 균형감을 잘 잡아주셨다."

첫 영화를 떠나보내며 이루다 감독은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를 막힘 없이 설파했다. "물론 막중한 책임과 부담이 있는 건 맞지만, 이야기의 힘을 믿어주시고 같이 하신 분들 덕에 정말 잘하고 싶었다"며 말을 이었다.

"좀 건방진 말일 수 있지만 연출부일 때 잘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잘한다는 말을 들으며 일했다. 제가 연출부 안에서 처음 해보는 보직일 때도 딱 그 마음으로 했을 거다. 물론 처음일 때 좀 덜컹거리긴 했지만 늘 잘 해냈던 것 같다. 그래서 첫 연출도 정말 잘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부담이 크긴 했지만, 함께 하는 배우들 스태프들로 힘을 얻었다. 제가 영화 작업을 좋아하는 이유기도 하다. 연대하는 걸 좋아한다(웃음). 이 작품으로 선한 카리스마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영화 속 거울이 씩씩거리면서도 불법적인 폭력이나 욕을 하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그 모든 게 소통하면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영화 <백수아파트>를 연출한 이루다 감독.
영화 <백수아파트>를 연출한 이루다 감독.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백수아파트 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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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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