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문해학교 할머니들 이야기, 뮤지컬 되다

[인터뷰] 창작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 원작자 김재환 감독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 공연 사진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 공연 사진라이브(주)

"처음에는 나이 먹고 공부하는 게 창피했지만 지금은 너무 행복해요."
"글자를 배워 내 이름을 쓰고 손주와 소통하는 인물이 꼭 내 모습 같네요."

지난 19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된 창작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을 관람한 문해학교 학생인 할머니들은 이렇게 소감을 말했다. 일흔에서 아흔 살에 이르는 이들은 태어나서 뮤지컬을 본 것이 처음이라고 고백했는데, 과연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

'문해교육'이란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부족해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성인들을 위한 교육과정이다. 문해학교에 다니며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창작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시골 노인들의 평범한 일상을 담은 기록물이라고 보면 맞을까. 실제로 경북 칠곡군 할머니들이 뒤늦게 한글을 배우고 시를 쓰는 과정을 기록한 김재환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2019)과 이듬해 감독이 직접 쓴 에세이 <오지게 재밌게 나이듦>(출판 북하우스)을 원작 삼아 뮤지컬로 재구성했다.

뮤지컬은 가난과 성차별 때문에 배우지 못한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우고 시를 쓰면서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그린다. 아흔을 바라봐도 매일같이 배움을 이어가는 할머니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선사한다. 특히 실제 문해학교 할머니들이 쓴 스무 편의 시가 뮤지컬 넘버로 재탄생해 원작과는 또 다른 감동을 안겨준다.

오는 27일까지 계속되는 이 작품은 이후에도 칠곡 등 일부 지역의 문예회관에서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지난 19일, 공연 제작에 앞서 다큐멘터리 영화와 원작을 쓴 김재환 감독과, 이것을 뮤지컬로 재탄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라이브 제작사의 강병원 대표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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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할머니께 특별한 경험 선물할 수 있는 뮤지컬"

- 공연 제작에 앞서 다큐멘터리 영화로 작품을 만들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2015년 즈음에 유독 어머니의 나이듦이 눈에 밟혔다. '더 늦기 전에 작품으로 효도 한번 하자'는 마음으로 어머니와 친구들을 웃게 할 이야기를 찾고 있던 어느 날, 김사인 시인이 진행하던 '시시한 다방'이라는 팟캐스트를 들었다. 처음 한글을 배운 칠곡 할머니들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당신들이 쓴 글을 읽었다. 할머니들의 글은 그냥 힘 빼고 툭 던지는데 마음속으로 들어와 울림을 던졌다.

2016년 할머니들을 처음 만났고 3년간 꿈 같은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나온 작품이 <칠곡가시나들>이다. 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사라진 다음에 '사랑하는 어머니께'라는 마지막 자막을 올릴 수 있어 기뻤다."

- <칠곡가시나들> 할머니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는가?
"출연한 일곱 분 중에 다섯 분은 하늘나라로 가셨다. 두 분 중 무릎 건강이 좋은 안윤선 할머니는 뮤지컬을 보러 오셨다. <칠곡가시나들>로 난생처음 영화관에 가봤고,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로 89세에 뮤지컬에도 입문하셨다. 돌아가신 할머니들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10년을 보내고 담백하게 가셨다. 유족 분들이 한목소리로 저랑 문해학교 주석희 선생님께 감사하다고 전했다. 우리 엄마의 힘겨웠던 인생 마지막을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채워줘서 고맙다고."

- 다큐멘터리 제작 당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처음에 할머니들과 친해지고 술 때문에 좀 힘들었다. 할머니들은 소주를 손주 다음으로 좋아했다. 날이면 날마다 촬영팀에게 술을 권하며 놀리셨다. 우리가 서울 감독 나이 때는 밤새 술 마시고 아침에 바로 농사지으러 나갔다고. 계속 이렇게 받아 마시다가는 칠곡에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할머니들은 특히 '소야'를 좋아하셨다. 소주 5에 야쿠르트 1 정도를 섞은, 유래를 알 수 없는 칵테일이다. 처음엔 저걸 어떻게 먹나 했는데 중독성이 있다."

 김재환 감독
김재환 감독라이브(주)

- 할머니들과 함께 한 가장 행복했던 하루를 꼽자면?
"태어나서 처음 소풍 가던 날이다. 그날 선생님이 '그네 타실래요?' 물어봤다. 그네와 할머니는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아닌가. 그런데 안 태워드렸으면 큰일 날 뻔했다. 정말 신나게 타셨다. 내일모레 나이 구십에 일어선 채로 타겠다고 우기시더라.

그제야 알았다. 나이가 많다고 그네 타고 싶은 욕망이 사라져버린 게 아니구나. 할머니들에게도 그네는 여전히 즐거움인데 아무도 권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할머니들 곁에 문해학교 선생님 같은 젊은 친구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녀들이 할 수 없는 역할을 문해학교 선생님이 했다. 엄마나 할머니께 '뮤지컬 보러 가지 않으실래요'라고 권해보는 건 어떨까?"

-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시작된 작품이 이젠 무대 위 공연 예술로 완성됐다.
"다큐멘터리 <칠곡가시나들>은 문소리씨가 문해학교 선생님으로 나온 MBC 예능 프로그램 <가시나들>로, 또 <오지게 재밌게 나이듦>이라는 에세이로, 다시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로 장르를 변신하며 거듭났다. 원소스 멀티유즈의 대표 사례이다."

- 관객들에게 이 작품이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는가?
"20~30대도 좋아할 뮤지컬이지만, 엄마나 할머니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물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작품은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을 본 모든 분들에게 설렘의 통로가 되고 싶다."





뮤지컬 문해학교 대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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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쓰고 있다. 문화예술 시사 월간지에서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에서 객원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과 전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만나고 있다. 현재는 '서울문화투데이' '더프리뷰' 등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