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백수아파트>에서 안거울을 연기한 배우 경수진.
영화 <백수아파트>에서 안거울을 연기한 배우 경수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데뷔 13년만에 영화 첫 주연을 맡았는데 '백수'다. 그간 여러 드라마에서 체조선수(<역도요정 김복순>), 검사로(<트레인>), PD(<마우스>) 등 팔색조의 모습을 보였던 그는 처음으로 백수를 연기한 결과물로 관객과 만난다. 영화 <백수아파트> 속 안거울을 연기한 그를 25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에서 거울은 말대로 '오지라퍼'다. 이혼한 동생 대신 가사일과 동생의 자녀를 돌보는 가사 노동자인 그는 불의한 일을 보면 참지 못한다. 그 일로 난감한 적이 한두 번 아닌 동생 두온(이지훈)은 거울을 멀리하기 시작하고, 집에서 내쫓기다시피 한 거울이 월세로 살기 시작한 곳이 다름 아닌 백세 아파트다. 이사 직후 자신은 물론이고 단지 내 모든 주민을 괴롭히는 층간소음을 해결하기 위해 거울이 나서며 사건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있는 그대로의 매력

재개발 문제와 건설사 비리, 층간소음 문제를 섞어놓은 영화 안에서 거울의 존재는 유쾌함을 준다. 주변에서 무시당하면서도 그는 당당함을 잃지 않고 사람들을 규합해 나간다. 이를 위해 배우 본연의 성격과 해석력 또한 중요했을 터, 학부생 시절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수진 입장에서도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백수가 제일 바쁘다 하지 않나. 엄밀히 하면 백수는 아닌 가정 주부에 가까운 인물이다. 생동감을 주면서도 감정이 과하지 않게 보이기 위해 감독님과 정말 많은 얘길 했다. 저도 비정규직으로 텔레마케터 일을 한 적 있다. 그 업체 사장이 일종의 악덕 업주였는데 첫 달 월급을 안 주더라. 다음 달에 준다면서도 돈이 안 들어오길래 사람들을 모아서 파업했다. 결국 받아내긴 했다(웃음).

요즘엔 제가 알기로는 층간소음 항의한다고 찾아가면 신고 대상이 될 수도 있다더라. 이럴 때일수록 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주민들 비상 연락망이라도 있으면 서로 양해를 구하거나 사과하기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이런 소통과 배려가 있어야지, 무조건 신고만 생각하면 각박한 세상이 더 각박해지지 않나 싶다. 예전엔 이사 하면 떡도 돌리고 그랬는데, 요즘 많아 없어졌잖나. 우리 영화가 그런 연대와 소통의 소중함을 잘 전달할 것 같다."

 영화 <백수아파트>의 한 장면.
영화 <백수아파트>의 한 장면.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실제로 예능 프로그램 <나혼자 산다> 및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특유의 시원시원한 성격에 다재다능함까지 뽐낸 경수진의 모습이 영화 속 안거울과 많이 닮아 있었다.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는 "예능 프로 출연이 제 변곡점이 된 면도 있다"고 말했다.

"제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인 이후 <백수아파트>도 그렇고 <형사록>, <마우스> 등의 작품도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배우로 보여지는 경수진이 있고, 제 삶도 있지만, 한 번쯤 제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야 연기 범위도 넓어질 수 있다고 본다."

실제 경수진 성격이 시원하고 털털하다는 건 인터뷰 중에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설정상 민낯에 안거울의 상징과도 같은 단벌 빨간 조끼만 입은 소감을 묻자, 그는 크게 웃으며 "나름 화장한 것이다. 옷도 사실 여러 벌 준비해 놓고 갈아입은 건데 조끼 하나만 입는 걸로 보실 순 있을 것 같다"며 "제 유튜브에서도 제가 화장을 하고 나오냐 안 하냐가 논란인데 메이크업 실장님이 공들여서 자연스럽게 해주고 계시다"고 화답했다.

부담감을 이겨내다

앞서 언급대로 장편영화 첫 주연, 여기에 연출을 맡은 감독 또한 장편 데뷔작이다. 중심 캐릭터로 함께 이끌어 가는 데 경수진 또한 부담감이 적지 않았음을 털어놨다.

"정말 부담감이 컸다. 촬영 시작 전 감독님과 정말 많이 대화했다. 원래 대본리딩 할 때도 한 장면 한 장면씩 하지 않는데 이번엔 정말 자세하게 했다. 캐릭터의 조화를 많이 고민한 덕에 실제 현장에서 마치 감독님과 한 몸이 된 듯 움직힐 수 있었다(웃음). 춘천에서 한달 반을 있었는데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잘 먹지도 못했다. 그리고 체력을 위해 아침마다 러닝을 하기도 했다. 이번 작품에서 주연이라는 부담도 있지만, 책임감을 갖고 싶었고, 경수진의 진짜 모습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안거울이란 인물의 확장성을 경수진으로 다 보여주자는 생각이었다."

이번 영화에 제작자로 참여한 배우 마동석이 경수진의 이런 면모를 알기에 캐스팅에 힘을 보탰다는 후문이다. 오는 4월 개봉 예정인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에 마동석과 함께 촬영하기도 했던 그는 캐스팅 과정에서 마동석과의 일화도 언급했다.

"<데몬 헌터스> 촬영을 마치고 선배님이 제게 어울릴 배역이 있다고 하셨다. 이후 감독님과 함께 만나게 됐는데 이루다 감독님의 패기가 남다르다 느꼈다. 이 영화를 잘 찍을 수 있다는 패기가 있었다. 근데 아무리 제게 맞는 캐릭터라고 해도 시나리오가 궁금해야 한다. 읽는데 생동감 넘치더라. 그 덕인지 어제(24일) 시사회에서 스태프 및 배우들과 소소하게 뒷풀이를 했는데 다들 너무 잘했다고 응원을 주고받았다."

 영화 <백수아파트>에서 안거울을 연기한 배우 경수진.
영화 <백수아파트>에서 안거울을 연기한 배우 경수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14년차 배우로 외길을 걸어온 경수진은 동년배보다 다소 늦은 나이에 데뷔했다. 타과를 전공했다가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연기학원에 다니며 스물다섯에 드라마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한 것. 영화 주연 작업도 어쩌면 비교적 늦다 할 수도 있지만 그는 "단계별로 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 촬영 때도 한 장면씩 소화하면서 그게 완성돼 가는 걸 보니 성취감이 강하더라. 이번 영화로 주연을 했다고 다음 작품을 더 많이 할 수 있길 바라진 않는다. 그저 지금 참여한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고 관객분들에게 사랑받는 게 목표다. 지금 영화 시장이 조금 안 좋다 보니 힘든 때다. 모든 영화들이 잘 됐으면 좋겠다. 관객 분들이 극장에 오셔서 <백수아파트>만의 매력도 찾아주시면 좋겠다."

배우 마동석처럼 제작이나 시나리오 집필에 대한 꿈도 있을까. 경수진은 "솔직히 선배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고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연기 외에 글을 쓰는 재주 등은 없는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지난해 7월 시작한 유튜브 채널 운영 등 본인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이는 활동은 이어나갈 계획이란다. '만취 경수진'(만개의 취미라는 뜻)으로 대중과 접점을 넓히고 있었다.

"촬영 끝나고 사부작사부작 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그게 시작이었다. 근데 전 사실 굉장한 집순이다. 일단 촬영 후에 1개월 정도는 환자처럼 집에만 누워 있는다. 회복 기간이 지나야 뭔가를 하기 시작한다. 취미를 여러 개 하다보니까 이게 본업이 된 느낌이긴 하다. 최근까지 <백수아파트> 같이 출연한 김주령 언니, 유정씨도 출연했다. 다들 유쾌한 분들이다. 지금 제 아지트를 꾸미고 있는데 댓글에선 제발 빨리 진행해달라는 요청이 많다. 3월 중에 아마 많은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다(웃음)."




경수진 백수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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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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