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인 아카이브 백준오 대표.
이선필
( * 망한줄 알았던 블루레이의 반전... "과감한 투자 통했죠" https://omn.kr/2cakc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사업 다각화의 일환으로 오프라인 극장에 납품하는 영화 굿즈 사업의 비중도 점점 커지고 있다. 롯데시네마를 찾는 극장 관람객들에게 지급하는 지류 굿즈 '시그니처 아트 카드'는 연상호 감독의 <반도>를 시작으로 5년째 이어오고 있다. 블루레이와 출판 사업을 해오면서 지류, 즉 종이를 다루는 인쇄 및 후가공 기술에 업계에서 남다른 노하우를 쌓아온 플레인아카이브의 장기를 극장 굿즈를 통해 살린 사례다.
"블루레이 타이틀을 하나 출시하기 위해 판권을 계약한 시점부터 시장에 내놓기까지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몇 년씩 걸리기도 한다. <올드보이>의 경우 영화에 대한 영화이자 심화 다큐멘터리 <올드 데이즈>까지 제작하느라 더욱 그랬다. 이 경우 투자금을 회수해 수익을 실현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사업적인 측면에서 언제나 고민이었다.
반면 영화관 굿즈는 제작과 납품, 정산까지의 순환이 매우 빠르니까 자금 운영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된다. 한창 어려웠던 시기에는 블루레이 출시 사업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영화관 굿즈 사업으로 커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롯데시네마의 시그니처 굿즈를 주로 납품하고 있지만 1년 전부터는 메가박스와도 굿즈 협업을 시작했고, 독립 배급사나 수입사로부터의 개별적인 제작 의뢰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수익성만 생각했다면 굿즈 사업이나 출판 등 돈 되는 분야를 더 활성화하는 게 맞겠지만 블루레이와 DVD 타이틀을 주력으로 한다는 방침엔 변화가 없어 보인다. 회사명에 '아카이브'가 들어간 이유와 관련이 있었다. 나름 백준오 대표의 철학이기도 하다. 12.3 내란 사태 전후 고환율 등으로 팬데믹 때보다 지금이 더 상황이 어렵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는 "마지막까지 블루레이를 만들어내는 최후의 회사이고 싶다"는 바람이자 목표를 제법 비장하게 드러냈다.
"블루레이 디스크는 한국에 생산설비가 전혀 없기 때문에 온전히 해외 생산을 통한 수입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원달러 환율이 비상계엄 이후 1400원대 후반까지 갔지 않나. 패키지 제작에 사용되는 종이도 대부분 수입지를 쓰는데 이들 종이를 수입하는 제지사들 역시 고환율에 타격이 상당히 클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한 수입 원가 상승 요인을 종이 공급 가격에 재빠르게 적용한다.
외화 블루레이 타이틀을 제작할 때 세일즈사로부터 4K 마스터나 돌비애트모스 파일 등의 선재도 모두 미화 달러로 구매해야 하는데, 디스크 매체의 특성상 이러한 최신 사양을 반영하는 과정에서 그만큼 원가가 오를 수밖에 없어서 고충이 많다."
심리적 장벽을 허물어라
▲영화 <기생충> 블루레이CJ ENM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비디오 대여점을 운영했던 모친의 영향으로 거부감 없이 각종 영화를 섭렵했던 유년시절, 백준오 대표는 알게 모르게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체험했다. VHS 시대가 저문 이후 DVD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때마침 관련 DVD 전문 매거진이나 < 필름 2.0 > 등 영화 주간지에 전문 필진으로 오랜 세월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던 그는 말대로 취미가 업이 된 성덕 중의 성덕이었다.
"블루레이 프로듀서라는 게 영화 자체를 만드는 직업군은 아니지만 한 영화를 가장 좋은 컨디션으로 대중들이 영구히 간직할 수 있도록 정성을 들여 물리적인 형태로 남기는 직업이 아닌가 싶다. 그런 측면에서 나도 영화 산업의 변방일지라도 어쩌면 영화인의 일원이 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으로 이 일을 지속하고 있다. 영화 만들기라는 과정에서 이 작업은 일종의 진정한 엔딩이자 예우를 다 한 마무리랄까.
배우들이 블루레이에 담을 코멘터리 녹음을 하러 녹음실에 모일 때가 있다. 다들 해당 작품의 종영 이후에 다른 영화나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바쁜 감독과 배우들이 저마다 일정을 조정해가며 겨우 한날 한시에 맞춰 한자리에 모이면 이런 얘길 한다. '코멘터리를 녹음하니까 진정으로 이 영화를 마무리하는 것 같다'고.
내 입장에선 영화를 만든 이들이 영화를 그제서야 손에서 놓아주고 이별하는 그때가 시작이다. 영화산업 측면에서 부분적이나마 공적 역할을 분담한다는 생각도 한다. 특히나 영화의 제작과정을 다룬 메이킹 영상은 누가 신경 써 챙기지 않으면 소실되는 경우가 많다.
의무적으로 한국영화의 본편 마스터를 납품 받아 보존하고 관리하는 한국영상자료원이 있지만, 그들이 메이킹 영상 자료까진 꼼꼼히 챙기지는 못하는 게 현실이니까. 우리가 메이킹 영상을 멋지게 편집해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으로 제작하는 순간 그 영화의 탄생과정이 분명한 기록으로서 영원히 보존되는 셈이다. 운이 좋다면 <올드 데이즈>처럼 부가 영상이지만 세계 각국으로 수출될 수도 있다.
지금은 <헤어질 결심> 블루레이에 수록되는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2년 가까이 작업하고 있는데, 팬들이 보게 된다면 그야말로 두근거릴법한 진귀한 제작 현장의 영상들을 한땀 한땀 수놓듯 세공하고 있다.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메이킹 다큐멘터리는 중요한 한국영화의 유산으로 남을 이 작품의 제작 과정을 현미경 들이대듯 꼼꼼히 조명한 값진 기록물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저물어 가는 물리매체 시대. 영화진흥위원회 통계로 봐도 50억 원이 채 안 되는 이 시장에서 그는 여전히 수집과 거리가 먼 일반 잠재 소비자들을 공략해야 할 것인가.
"블루레이의 경우 지금까진 이른바 '진성 콜렉터'를 위해 과하다 싶을 정도의 풍성하고 화려한 패키지 구성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점점 고가의 한정판 상품이 됐다. 블루레이가 생소한 일반인들이 물리매체에 입문하는 허들이 높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어느 정도 초판 한정판으로 수익을 충분히 거둔 작품들은 가볍고 캐주얼한 구성의 보급판 블루레이를 내놓는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출판 쪽에서도 고급 아트북을 표방해 시간과 비용을 쏟아부은 도서가 초판 완판은커녕 200권 내외만 팔린 경우가 두어 번 있었다. 아름다운 소장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진심을 다해 노력했지만, 지금과 같은 불황기에 너무 접근성을 낮춘 게 아닌가 싶었다. 최근에는 가벼운 문고본 콘셉트로 1만 원 중반대의 영화 에세이 시리즈 'PA CAT BOOK' 브랜드를 런칭해 두 권을 내놨다. 직업과 삶의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영화를 접점으로 살아가는 우리 주변인 혹은 씨네필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잠재 소비자들께 드리고 싶은 말은 OTT로 언제 어디서든 영원히 내가 원하는 때 클릭 한 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영화가 어느 날 갑자기 플랫폼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하게는 IP 공급사와 OTT 플랫폼의 계약이 종료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조금 더 심각하게는 이런 저런 이유로 권리사가 폐업을 하거나, 복잡한 판권 문제로 바로 어제까지 내 손에 잡힐 듯 섬네일로 보이던 영화가 그 어떤 플랫폼에서도 볼 수 없게 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
물리매체는 일단 사두면 물리적 손상을 입지 않는 한 평생 소장이 가능하다. 제 관점에선 블루레이나 DVD를 구매하는 모든 분들이 마치 블록체인 기술처럼 이 영화의 가장 온전한 상태를 각자 개인적으로 아카이브하고 있는 '민간 아카이브 기관'이라고 생각한다.
홈비디오 산업을 기술의 발전과 세상의 변화에 따라 도태될 민간 산업으로만 못 박고 외면할 게 아니라, 조금이나마 공적 아카이브의 역할을 분담한다는 차원에서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블루레이 제작비 일부라도 지원을 해주면 좋겠다. 영화 제작의 중요한 녹취 기록으로서 가치를 갖는 코멘터리 녹음-믹싱료라도 말이다.
영국은 BFI 차원에서 직접 블루레이 사업을 하기도 하니까 부러울 때가 많다. 한국영상자료원이 기념비적인 고전 한국영화 걸작선을 매년 2~3작품씩 블루레이로 출시하고 있긴 하지만, 199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 초반의 한국영화는 그 혜택을 못받고 있기 때문에 이들 영화를 블루레이로 출시하려는 회사들을 위한 민간 지원도 좀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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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