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애나엑스> 공연사진
(주)글림아티스트, (주)글림컴퍼니
이런 사회를 이해하는 데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보드리야르는 현대인은 상품의 실용적 가치가 아니라 기호적 가치, 즉 이미지를 소비한다고 진단했다. 이는 사람들이 명품으로 치장하고 사치를 부리는 현상을 효과적으로 설명하는데, 이때 사람들의 자아는 사라지고 소비된 상품의 이미지로만 남게 된다.
이제 사람들은 정해진 이미지에 맞춰 스스로를 꾸며내고, 그렇게 인정받은 사람을 또 다른 사람들이 따라하는 매커니즘이 완성된다. 이렇게 사람들은 실체를 찾을 수 없는 복제품으로 전락하며, 이를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라는 용어로 정의했다. 시뮬라크르의 세상에서 더 이상 진짜 모습은 중요치 않다. 애나의 사례처럼 말이다.
그렇게 연극은 관객으로 하여금 애나를 비난하기보다 세상을 향해 의문을 던질 것을 자극한다. 우리는 과연 진실된 모습을 원하는지, 누군가 지나치게 진실된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외면하진 않는지 묻게 한다. 허상을 원하는 건 아닌지, 무엇보다 우리 자신부터 허상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성찰하게 한다.
반칙해서 성공하면 사업가가 되고, 실패하면 사기꾼이 된다는 극중 애나의 말로 <애나엑스>가 비판하는 사회상이 간명하게 요약된다. 애나에게 잘못이 없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가짜가 되는 것을 종용하고 암묵적으로 허용하지만, 가짜라는 사실을 들켰을 때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세상이 우습다는 것이다.
<애나엑스>에 등장하는 또 한 명의 인물, 아리엘을 통해서도 사회의 모순이 드러난다. 아리엘은 '제네시스'라는 데이팅 앱을 만들었다. 앱 자체는 기존의 데이팅 앱과 다르지 않았지만, 상류층만 회원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단지 상류층만 가입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럴 듯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아리엘은 사람들이 급을 매기고 구별하는 걸 비판하면서도 무엇보다 구별 짓기에 끌린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바로 그런 '인간의 본성적인 천박함'에 투자한 것이라는 아리엘의 비웃음은 사회를 향한 것이기도 하면서, 그런 사회를 문제 의식 없이 살아가는 관객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 <애나엑스> 공연사진(주)글림아티스트, (주)글림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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