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한국 여자야구 대표팀이 세계 대회 진출권을 획득한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황혜정
이들에게 대표팀은 소중하고 바라던 기회였다. 누구나 국가대표 자리를 마다할 사람 없다지만, 여자야구 선수들에겐 대표팀은 '유일한' 놀이터였다. 선수들은 입을 모아 "그나마 체계적인 훈련을 밀도있게 배울 수 있는 곳은 대표팀뿐"이라고 했다.
평일에는 학교에 다니거나, 회사 직장인으로서 사회생활을 함에도, 주말이면 쉬지 않고 운동장에 모여 1박 2일 합숙 훈련을 받는다. 1세대 여자야구 국가대표 출신이자 당시 대표팀 트레이너로 일하던 방순진씨는 "벚꽃 축제가 한창인 3월에도 선수들은 한 명도 불참하지 않고 대표팀 소집에 응한다. 벚꽃보다 야구가 좋기 때문"이라고 했다.
배움에 목마른 이들은 사비로 레슨장에 다니면서 야구를 배웠고, 야구 동영상, 야구 관련 서적을 꿰고 살았다. 야구를 더 잘하고 싶어서 안 찾아보고, 안 해본 게 없다고.
"왜 그렇게까지 하세요?" 대표팀 최고참인 외야수 신누리(38)씨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는 담담히 답했다.
"사랑하는데 뭘 못할까요. 야구를 사랑하니까 그냥 하는 거죠."
느린 공 속에 담긴 그녀들의 철학이 좋다
그렇게 '야알못'인 필자는, 똑같이 '야알못'이었다가 국가대표까지 된 여자 선수들에게 야구를, 인생을 배웠다.
'초짜' 야구기자에게 이들은 너무나 기초적이기에 어느 구단 감독도 알려주지 않은 것들을 아낌없이 가르쳐줬다. 그립 잡는 법부터, 타석과 마운드에 섰을 때 심리까지. 나는 여자야구를 취재하며 선수·상황마다 사용하는 배트, 글러브, 신발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어느 날 프로야구 현장 취재를 갔을 때 키움히어로즈 내야수 최주환의 1루수 미트가 이질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최주환은 1루수를 맡은 지 얼마 안 된 선수인데 글러브가 너무나도 낡았기 때문이다. 조심스레 질문을 하니 그가 웃으며 "이 글러브엔 사연이 있다"며 특별한 이야기를 귀띔해줬다. 글러브가 다 낡아 끈이 떨어질 정도로 한 글러브를 오래 써온 여자야구 선수들을 관찰하다 보니 자연스레 얻어낸 기사거리였다.
야구가 너무 하고 싶어 레슨장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야구공을 던져온 투수 최송희(33)씨와 10m 거리도 던지지 못했던 외야수 안수지(36)씨가 8년 간의 각고의 노력 끝에 30살이 넘어 대표팀에 승선했다는 이야기는 떠올릴 때마다 전율이 인다. 포수 김해리(32)씨는 웬만한 야구기자들보다 더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뛰는 선수들을 잘 아는 것 같다. 해외야구까지 다 챙겨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난해 9월, 첫 직장을 퇴사했다. 더 이상 발제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여전히 여자야구 대표팀 훈련 현장을 찾고, 선수들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여자야구, 정말 재밌다. 남자 선수들처럼 시속 150km 공을 던지진 않지만, 직접 보다 보면 느린 공 속에 자신들만의 철학이 있다. 어떤 형식으로든 이들의 이야기는 전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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