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제리 스프링거 쇼 : 파이트, 카메라, 액션>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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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스프링거 쇼는 2000년을 전후해 전환점을 맞는다. 1998년, 제리는 쇼에 출연한 포르노 스타 둘과 스리섬을 한다. 하지만 그는 전처와 장애인 딸을 극진히 사랑하는 충실한 남편이자 아빠 이미지가 강했기에, 요즘이라면 폐지 수순이었으나 흐지부지 넘어갔다. 그럼에도 타격을 받은 건 사실이다.
이른바 1위 쇼로 우뚝 선 후 리처드는 프로듀서들을 더욱더 가혹하게 대했다. 시청률이 안 나오면 해고당하는 게 일상이었다. 쇼가 폐지되지 않게 1위까지 올라갔으니 이제 해고되지 않게 1위를 유지해야 했다. 시청자들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폭력의 위험 수위를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2000년, 여느 때와 다를 게 없는 삼각관계 에피소드가 방영되는데 당사자 중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결국 살인자는 유죄를 받았다. 하지만 쇼는 어떤 책임감 있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어떤 불이익도 없었다. 다만 쇼의 상황이 위험해졌다는 걸 보여줬다.
쇼 안팎의 압박과 비판이 이어졌다. 쇼의 안에선 리처드가 더욱더 심하게 몰아붙였고 프로듀서들은 자괴감에 휩싸여 갔다. 반면 제리는 독야청청 홀로 착하고 진실되고 고귀했다. 쇼의 밖에선 폭력 조장, 조작 진위 등의 비판이 몰아쳤다. 이 쇼를 비판하고 비난하지 않은 이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
제리 스프링거 쇼는 시대가 낳은 괴물이었다. 진지한 토크쇼였다가 시청률 압박, 폐지 협박에 막장 쇼로 전환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을 데려다가 콜로세움에 세워 구경꾼들에게 먹잇감으로 던져 버린 꼴이었다. 그러나 시대를 타락시킨 장본인이기도 했다. 인기가 정점을 찍은 후의 행보는 반론의 여지가 많지 않을 만큼 처참하다.
그렇게 해서 남은 건 뭘까. 최초의 포부, 전에 몰랐던 삶에 관한 뭔가를 알게 된 점은 무궁무진하니 목적은 달성한 걸까. 전설의 오프라 윈프리 쇼를 꺾은 최초의 토크쇼로 길이 남아 좋을까. 티브이가이드가 뽑은 역사상 최악의 TV 프로그램으로 뽑힌 것도 좋아할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대표적 사례다. 'TV 프로그램=시청률'이라는 다분히 현실적이고 누구도 반론할 수 없는 공식을 악용해 온갖 막장 엽기 저질을 가져왔다. 욕을 먹어야 하는 대상은 '제리 스프링거 쇼'가 아니라 '제리 스프링거'라고 본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의 쇼가 아닌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제리 스프링거 쇼 : 파이트, 카메라, 액션> 포스터.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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