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는 조선 초기 미술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명작이다. '꿈 속에서 복숭아밭을 거닐다'는 이름 그대로 꿈같은 경치 속에 자리한 복숭아밭이 몽유도원도 안에 들었다. 작품명 몽유도원도를 두루마리의 앞단에 적은 뒤 제작과정이 담긴 기문을 직접 썼으며, 김종서를 비롯해 성삼문, 신숙주, 박팽년 등의 학자, 당대 최고의 음악가 박연 등 스물 하나 명사들로부터 찬문을 받아 함께 실었다. 그리하여 몽유도원도는 비단 그림에 그치지 않고 안평대군의 글과 글씨, 본 작품에 이어 스물 한 명의 명사가 적은 찬문에 이르는 복합예술작품, 이른바 '몽유도원시축(夢遊桃園詩軸)'을 이루었다.
그림은 당대 명사인 안평대군의 꿈으로부터 태어났다. 이십대 젊은 나이에 시서화, 세 분야에서 절정에 이르렀단 평가로 삼절이라 불렸던 안평대군이다. 세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궁에서 자란 안평대군의 주위엔 그의 취향처럼 당대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했다. 화가 안견도 그중 하나로, 집현전 학자들과 복숭아밭을 거니는 꿈을 꾸고 일어난 안평대군이 그를 불러다가 꿈 이야기를 들려준 게 시작이 됐다.
안견은 사흘 간 작업에 착수해 안평대군의 꿈을 작품으로 빚어낸다. 드높이 솟은 기암절벽과 그 깊은 자락에 자리한 복숭아밭이 현실 가운데 찾아볼 수 없는 선경을 떠올리게 한다. 안견이 그린 이 그림을 두고 당대 눈 높은 이들이 말하기를, 안평대군의 꿈에 더해 도연명의 도화원기, 중국 북송 시대 화가 곽희의 화풍이 깃들었다 했다. 중국 역사에 남는 시인 도연명의 작품 '도화원기' 속엔 무릉도원의 원형이 되는 이상적 공간이 등장하며, 대화가 곽희의 그림 가운데는 속세의 어지러움을 찾아볼 수 없는 고결한 산세가 자리하니, 안견이 안평대군의 꿈을 이상적이고 깨끗한 무엇으로 해석해 탄생시켰다 해도 틀리지 않을 테다.
끝내 이뤄지지 않은 몽유도원의 꿈
▲몽유도원스틸컷
필름다빈
안견의 작품은 그 근원이 된 안평대군의 마음에 꼭 들었던가 보다. 제게 의탁한 수많은 예술가들로부터 많은 작품을 받아보았을 그가 유독 몽유도원도에 정성을 들인 것을 보면 말이다. 직접 개문을 짓고 명사들로부터 찬문까지 받아 몽유도원시축을 꾸민 것이 그러하고, 수년이 흐른 뒤 다시 이를 꺼내보며 찬탄하고 재차 시를 지어 붙였다는 일화가 또한 그러하다.
냉정히 돌아보면 삼절이란 평가가 무색하게 안평대군의 글씨와 시는 그저 그러하고, 그림 또한 얽힌 사연만큼 대단한 것인지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명작이라 할 밖에 없는 건 작품이 태어나기까지의 사연과 그에 얽힌 이들의 파란만장한 운명 때문일 테다.
찬문을 적은 김종서는 수양대군에 의해 살해됐고 그림의 주인 안평대군 또한 반란을 도모했단 누명을 쓰고 사사된다. 그림 속 복숭아밭을 안평대군의 꿈 속에서 같이 거닐었다는 학자들은 선대의 영광이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는 반란을 획책했다 죽어나가거나 영원한 배신자로 오명을 남기게 됐다. 그림을 그린 안견은 그 최후조차 알려지지 않았고, 박연은 간신히 목숨만 부지한 채 낙향해 세태를 한탄하다 죽었다. 몽유도원시축에 이름을 올린 누구도 그림과 글 가운데 깃든 평안 비슷한 것조차 맞이하지 못했단 사실, 역사가 전해주는 그 특별한 감상이 작품 그 자체보다도 강한 인상을 남긴단 건 흥미로운 일이다.
긴 시간이 흘러 몽유도원시축은 잊힌 작품이 됐는지 모를 일이다. 일본 대학교에 소장돼 있는 현실, 또 그 과정에 얽힌 사연, 그를 되찾으려는 노력조차 실종된 민망한 오늘이 복잡하게 얽힌 가운데 몽유도원시축은 학창시절 미술 교과에나 조선미술사조를 논하는 과정에서 짤막하게 언급될 뿐이다. 그 몽유도원도를 작품 가운데 받아들인 독특한 영화 한 편이 이달 개봉했다. 장정혜의 <몽유도원>이다.
얼핏보면 난잡하고 초점이 없어 보이는 어수선한 영화로 느낄 수 있겠다. 안견과 안평대군의 이야기부터 제목인 그림 '몽유도원'이 언급되고, 이들과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조지 오웰과 그의 작품, 그밖에도 여러 예술가와 예술작품이 직간접적으로 등장하는데도 정작 영화의 중심된 줄기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그 고리며 의미를 포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어느 영화감독의 사무실에 그와 친분 있는 제작사 대표가 찾아와 한담을 나누며 시작한다. 감독(이갑선 분)은 예전 제법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재능을 인정받은 이였는데 오랫동안 차기작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있는 터다. 최근에도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진 모양인데, 예고 없이 친구가 찾아와 함께 대화하게 된 것이다.
우연한 만남과 필연일 사건들
▲몽유도원스틸컷
필름다빈
둘은 별 영양가 없는 얘기를 나누다가는 제작자(임태산 분)의 제안으로 그가 알고 지내는 제법 이름 있는 작가(이호성 분)의 집에 들르게 된다. 이 자리에서 함께 술 한 잔을 나누게 된 세 사람이다. 작가는 제게 선의를 보이는 제작자에게 알 수 없는 이유로 면박을 주는 한편, 그 친구인 감독에게는 또한 호감을 표현한다. 그는 제가 간밤에 꾼 꿈이 있다며 감독 또한 그러하느냐고 묻는데, 둘 사이엔 구체적인 내용이 오가지 않는다. 자리는 작가의 딸(이호진 분)이 술자리에 찾아들며 파하게 되고, 작가가 암으로 곧 죽을 운명이란 사실이 공개된다.
이야기는 이 만남으로부터 전혀 다른 곳으로 나아간다. 감독은 조감독과 함께 산을 오르다 꽤나 인상적인 장소를 발견하고, 지인을 찾아 그녀가 운영하는 북카페에 마주앉아 도무지 책이 팔리지 않는단 한탄을 듣기도 한다. 또 어느 날엔 기타 치고 그림 그리는 여러 예술가들과 함께 자리하여 대낮부터 한가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다 찾아온 여자, 전에 만난 작가의 딸이다. 작가는 이미 세상을 떠난 듯하고, 딸은 그의 뜻이라며 한 뭉치 미완의 글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가 꼭 제게 이 글을 전해주라 했다면서.
그로부터 영화는 아마도 이때 건네받은 글을 영화로 빚어가는 과정으로 흘러간다. 전에 보았던 장소가 촬영지가 되고 친구인 극단 대표와 만나 그가 데리고 있는 배우들을 상대로 오디션을 보는 과정들이 이어진다. 중간엔 과거 사귀었던 여자(이유하 분)의 연락을 받고 나가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는 에피소드도 있는 것인데, 그것이 도무지 어떤 이유로 들어간 것인지를 명확히 이해하긴 쉽지 않다.
말하자면 <몽유도원>은 어느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고, 그 사이사이 그가 보내는 일상이기도 하며, 일상 가운데 만난 이들과 나누는 잡다한 대화들의 연속이기도 하다. 대체 이 영화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를 한참 고민하여도 명확히 잡히지 않는 가운데, 그 모호함과 난잡함이 도리어 영화를 제작한 뜻에 집중하도록 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대체 이런 영화를 왜 만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답을 찾는 과정에 올라서는 것이다.
다다른 결론은 이것이다. 안평대군의 꿈이 안견에게 이어져 한 폭의 작품을 이루었던 것처럼, 영화 속 작가의 꿈이 감독에게 전달돼 한 편의 영화로 태어난다. 그 속엔 안평대군과 안견의 관계처럼 이해와 오해가 기묘하게 뒤엉켜서 그대로 예술이라 부를 무엇으로 다가서려 든다. 깊은 산 속 복숭아밭에 안평대군이 끝내 도달할 수 없었듯, 하룻밤을 보낸 옛 여자와 감독은 끝끝내 이뤄지지 못한다.
그 모든 것이 뒤엉켜 빚어내는 이색적 감상을 쉬이 무엇이라 단정할 수 없는 난해함이 내게는 예술이라 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를 예술이라 여기는 이도 이 세상에 분명히 있는 것이다. 타인의 꿈을 이해한다는 건 그래서 영원히 이룰 수 없는 도전에 가깝지 않은가 한다.
▲몽유도원포스터필름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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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조선시대 명작 '몽유도원도'에서 이름 빌려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