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민수 감독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스타 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노희경 작가와는 1998년 <거짓말>을 시작으로 <바보 같은 사랑>, <그들이 사는 세상> 등 여러 작품을 함께 하면서 뛰어난 호흡을 과시했다. 당시 표민수 감독은 드라마 업계에서 시청률과 작품성을 모두 잡는 흔치 않은 감독이었다.
2001년 중년의 유부남과 젊은 여대생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푸른 안개>를 통해 많은 논란과 화제를 뿌린 표민수 감독은 <푸른 안개> 이후 KBS에서 퇴사하고 프리랜서로 2002년 신작 <고독>을 연출했다. 하지만 당시 '국민 드라마'로 군림하던 SBS의 <야인시대>와 동시간대에 방송됐던 <고독>은 방영 기간 내내 한 번도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지 못하면서 표민수 감독에게 첫 실패를 안겼다.
<거짓말>부터 <고독>까지 주로 인간의 안쓰러움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을 통해 '작가주의 감독'으로 명성을 떨쳤던 표민수 감독은 2004년 순정만화를 원작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를 차기작으로 선보였다. 그리고 이 작품은 지금까지 표민수 감독이 연출했던 드라마들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표민수 감독의 새로운 대표작이 됐다. 송혜교와 정지훈이 주연을 맡았던 KBS 수목드라마 <풀하우스>였다.
▲드라마 <풀하우스>는 원작만화와는 다른 매력으로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풀하우스> 홈페이지
20대 초반 '시청률 여왕' 꿰찬 배우
중학교 3학년 때인 1996년 교복 브랜드 모델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송혜교는 1997년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에서 오지명 원장의 막내딸 오혜교 역을 맡으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 후 시트콤 <나 어때>와 <행진>에 잇따라 출연하며 전지현 ,배두나 등과 함께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은 송혜교는 2000년 첫 미니시리즈 주연작이었던 <가을동화>에서 비련의 여주인공 은서를 연기했다.
송혜교는 윤석호 감독이 만든 '계절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였던 <가을동화>를 시청률 40%로 이끌며 단숨에 스타로 떠올랐다. 2001년 시청률 30%를 돌파했던 <호텔리어>와 <수호천사>에 출연하며 입지를 넓힌 송혜교는 2003년 당시로선 파격적인 6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 드라마 <올인>에 출연했다. 송혜교가 카지노 딜러를 연기했던 <올인>은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화제가 됐다.
송혜교는 2004년 류승범, 조현재 등 또래 배우들과 함께 출연한 <햇빛 쏟아지다>가 상대적으로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슬럼프를 맞는 듯했다. 하지만 송혜교는 그해 여름 차기작 <풀하우스>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변신하는 인터넷 소설가 한지은을 연기했다. 앞선 작품들에서 주로 청순하고 여린 캐릭터를 맡았던 송혜교의 발랄한 연기 변신은 젊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2005년 차태현과 함께 한 <파랑주의보>를 통해 영화에 진출한 송혜교는 <파랑주의보>에 이어 2006년 <황진이>까지 실패하면서 '흥행퀸'의 명성에 금이 갔다. 하지만 2008년 <그들이 사는 세상>을 통해 한층 성숙한 연기를 보여준 송혜교는 2013년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시각 장애인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그리고 2016년에는 김은숙 작가와 만난 <태양의 후예>로 또 하나의 '인생작'을 만들었다.
2018년 <남자친구>와 2021년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를 통해 박보검, 장기용과 연기 호흡을 맞춘 송혜교는 2022년 김은숙 작가와 재회한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 문동은을 연기했다. 송혜교는 <더 글로리>에서 물오른 연기로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배우임을 입증했고 지난 1월 11년 만에 출연한 한국 영화 <검은 수녀들>이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며 영화에서의 오랜 징크스를 털어냈다.
만화적인 설정과 유쾌한 캐릭터들의 조화
▲송혜교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시청률 30%를 넘긴 드라마 5편에 출연했다.
KBS 화면 캡처
드라마 <풀하우스>는 1993년부터 연재됐던 원수연 작가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작품이다. 포커게임을 즐기는 사람에게 풀하우스는 쓰리 카드와 원페어의 조합으로 인식되지만 드라마와 만화 속에는 '사랑이 충만한 집'을 의미하는 주인공의 집 이름이다. <풀하우스>는 2022년에 방영됐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나희도(김태리 분)와 고유림(김지연 분)이 가장 좋아하던 만화였다.
순정만화 원작의 영화나 드라마가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풀하우스> 역시 방영 초기엔 원작 팬들 사이에서 캐스팅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았다. 특히 원작의 엘리 지와 드라마 속 한지은의 싱크로율이 너무 낮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송혜교는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한지은을 잘 표현하면서 논란을 씻어냈다. 특히 지은이 할머니(고 김지영 분)에게 불러준 노래 <곰 세 마리>는 <풀하우스> 최고의 명장면이 됐다.
친구에게 사기를 당한 주인공이 우연한 기회로 유명 배우와 계약 결혼을 하게 된다는 설정부터 매우 비현실적인 <풀하우스>는 여느 로맨스 드라마와 달리 두 주인공이 싸우는 장면이 유난히 많이 나온다. 특히 이영재(정지훈 분)는 '분노조절장애'가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로 한지은에게 화를 많이 낸다. 물론 <풀하우스> 역시 극 후반으로 갈수록 여느 멜로 드라마들처럼 이야기가 점점 진지해진다.
가수로 먼저 데뷔해 이미 정상을 찍은 정지훈에게 <풀하우스>는 2003년 <상두야 ,학교가자>에 이은 두 번째 드라마였다. 출연이 예정됐던 영화 <바람의 파이터>가 스케줄 문제로 무산된 후 드라마로 먼저 데뷔한 정지훈은 <풀하우스>에서 한지은과의 계약결혼 후 점점 사랑에 빠지는 스타배우 이영재 역을 맡았다. <풀하우스>는 정지훈에게 배우로서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게 만들어준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최고 시청률 40%를 돌파하며 많은 사랑을 받은 <풀하우스>는 속편 제작에 대한 루머가 꾸준히 있었지만 실현되지 못하다가 2012년 황정음과 노민우 주연의 < 풀하우스 TAKE2 >가 SBS Plus 채널을 통해 방송됐다. 하지만 디자이너 지망생이 아이돌 가수의 비밀 숙소에 스타일리스트로 위장 취업해 함께 사는 이야기를 그린 < 풀하우스 TAKE2 >는 8년 전에 방송됐던 시즌1만큼의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친구 잘 만나 감옥행 면한 '사기꾼 커플'
▲친구의 전재산을 '계획적으로' 가로챈 희진(왼쪽)과 동욱 커플은 현실이었다면 징역형을 피하기 힘들었을 것이다.KBS 화면 캡처
2018년 한다감으로 개명한 한은정은 <명랑소녀 성공기>·<순수의 시대>·<대한민국 변호사>·<신데렐라맨> 등에서 서브 여주인공을 많이 연기했다. 한다감은 <풀하우스>에서도 이영재의 첫사랑이자 패션 디자이너 강혜원 역을 맡았다. 혜원은 자신을 좋아했던 이영재를 어장 안에 가두고 정작 본인은 능력 좋고 잘생긴 청년 사업가 유민혁(김성수 분)을 짝사랑하는 조금 얄밉고 이기적인 캐릭터였다.
1999년 <지구용사 벡터맨>에서 이글 역을 맡으며 데뷔한 김성수는 2004년 <사랑한다 말해줘>에 이어 <풀하우스>에서 유민혁을 연기하며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렸다. 엉뚱하지만 상상력이 뛰어난 한지은을 시놉시스 작가로 채용한 유민혁은 서서히 한지은의 매력에 빠져든다. 이영재와 한지은을 두고 다투는 연적이지만 몰락 위기의 이영재를 자신이 제작한 영화에 캐스팅해 재기를 돕기도 했다.
지난 2017년 세상을 떠난 고 김지영 배우가 맡았던 영재의 할머니는 부모도 없고 직업도 변변치 않은 초라한 조건의 지은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건들로 지은과 여러 가지 추억을 쌓은 할머니는 지은과 정이 들고 나중엔 지은을 친손녀처럼 대한다. 특히 지은이 할머니에게 <곰 세 마리> 노래를 불러준 후엔 지은을 이름 대신 '곰 세 마리'라는 자신만의 애칭으로 불렀다.
강도한과 이영은이 연기한 동욱-희진 커플은 <풀하우스> 속 최악의 빌런이자 지은의 유일한 친구라는 독특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가 시작되자마자 지은의 전 재산을 훔치고 집까지 팔아버린 원수지만 지은은 이 사기꾼 커플을 고소하기는커녕 너그럽게 용서해 준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드라마 초기부터 임신했다는 설정의 희진이 마지막 회까지 전혀 배가 부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더 글로리' 동은이가 부르던 '곰 세 마리'의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