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을 초월한 또 다른 세계의 음악 여행

[인터뷰] 제16회 아창제 양악부문 박다은 작곡가

 박다은 작곡가
박다은 작곡가박다은

"이곳에 자신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순간은 작곡가, 연주자, 지휘자 등을 포함한 모든 예술인의 꿈이 아닐까요? 제 창작 오케스트라 곡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단체와 지휘자의 연주로 만나볼 수 있다니 아직도 실감 나지 않습니다."

오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지는 제16회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이하 '아창제') 무대를 앞두고 박다은 작곡가(26)는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 학부를 졸업한 그는 이번 아창제가 오랜만에 느끼는 배움의 장이었다고 고백했다. 본 공연을 앞두고 지난 10일 만난 자리에서 그는 단순히 책에서 배울 수 없는 지식과 음악적 경험을 담아 앞으로 한층 발전하는 작곡가가 되겠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박다은씨는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재학 중 고양시립합창단 제71회 정기연주회에 '세계의 끝에서, 언젠가 다시 한번'이 위촉 연주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나섰다. 이후에 제3회 제주국제관악작곡콩쿠르에서 '탐라환상곡'으로 1위 없는 2위와 특별상을 동시에 수상했으며, 제43회 한국음악협회 해외파견콩쿠르 작곡 부문에서 모든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1위에 입상한 바 있다.

현재는 ㈜FLASIC 소속 작·편곡가로 게임음악공연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그가 참여한 작품으로는 '게임음악회 카트라이더',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심포니', 'Brawl Stars OST Concert', 'Pokémon The Orchestra : 보물 같은 여정', '디지몬 심포니 : 선택받은 아이들' 등이 있다. 또한 천안시립교향악단, 청주시립교향악단,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구 경기도립국악단), 헝가리 Liszt Academy Wind Ensemble 등 다양한 단체들과 협업으로 연주했다.

"창작곡이 태어나는 순간은 청중과 만날 때"

"당시 상임 지휘자였던 이민영 선생님으로부터 제의받아 고양시립합창단 정기연주회 마지막 곡으로 '세계의 끝에서, 언젠가 다시 한번'이라는 합창곡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감사하게도 연주회 제목도 제 곡으로 지정됐을뿐 아니라 마지막 곡으로 연주되어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박 작곡가는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 당시를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평범한 대학교 3학년처럼 학내 연주 외에는 아무 경험이 없던 그가 처음으로 많은 대중들에게 음악을 들려줄 수 있던 특별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마치 연예인으로 치면 데뷔 무대와 같은 의미로 느껴졌다며 말이다.

"창작곡이 태어나는 순간은 곡이 완성되는 게 아니라 실제 연주에서 처음으로 청중과 만나는 순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양시립합창단 위촉 연주 전에는 사실 작곡가가 아니었어요. 제가 직업을 작곡가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이 연주회부터죠. 경험도, 경력도 없던 학부생의 곡을 듣고 인정해 위촉 연주를 제안해 주신 이민영 지휘자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제주국제관악작곡콩쿠르 실황
제주국제관악작곡콩쿠르 실황박다은

그는 여러 개의 수상 경력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제3회 제주국제관악작곡콩쿠르 1위 없는 2위와 특별상으로 꼽았다.

"그동안 노력이 배신했던 순간들이 너무 많았어요. 신기하게도 간절하게 원했던 것들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는데, 이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어요. 제주국제관악작곡콩쿠르 수상은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노력에 화답했던 순간입니다. 콩쿠르에 전혀 관심이 없던 제가 우연히 학내에 붙은 포스터를 보게 됐어요. 알고 보니 존경하는 선배가 전년도에 수상했고, 국내에 유일한 오케스트라 실연 콩쿠르이자 거의 없는 조성 음악 콩쿠르 중 하나였어요.

그래서 '제게 후회 없는 곡을 쓰자'라는 목표로 몇 개월간 작업해서 2관왕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탐라환상곡'은 다음 시즌 제주국제관악제 개막식의 첫 곡으로 연주됐고, 헝가리 Liszt Academy에서도 재연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아창제 초연의 수상이 그에겐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는 아창제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창작 오케스트라 곡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는 연주회라는 점에서 의미를 두었다. 오케스트라 곡을 실연하는 경험은 작곡가 개인으로서는 이루기 힘든 작업이며, 일생에서 편곡이 아닌 작곡으로 창작 오케스트라 곡을 발표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언젠가 창작 관현악곡을 발표하리라는 원대한 꿈을 꾸었다. 이번 아창제로 초연되는 곡인 'The Song of Water'는 학부 마지막 실기 곡으로 작업했던 곡이며, 편곡이 아닌 작곡 작품으로서 첫 대규모 관현악곡이다.

박 작곡가는 원래는 특목고에 진학하려고 했지만, 막상 고등학교를 정해야 할 때가 다가오니 음악을 하고 싶다는 어릴 적의 생각이 떠올라 처음으로 부모님께 반항해 예고에 진학했다. 그런데 그는 졸업할 때까지도 제대로 된 음악적 기초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무지했다고 고백했다. 선생님을 잘못 만났다는 핑계 뒤에 숨어 음악 공부를 하지 않았고, 대학을 잘 가기 위해 실기보다는 성적을 잘 받는 데만 연연했다. 그만큼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대규모 악곡을 써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게임음악 공연만의 특별한 경험

그가 현재 편곡가와 오케스트레이터로 소속된 단체는 FLASIC(이하 '플래직')이다. 플래직은 포켓몬스터, 발로란트, 리그오브레전드, 라그나로크, 브롤스타즈, 문명, 디지몬 등 다양한 글로벌 IP와 정식 계약을 맺고 고품질의 서브컬처 공연을 제작해 오고 있는 공연 전문 제작사이다.

애니메이션 음악이나 게임 음악은 국내에서 연주될 때 저작권에 대한 명료한 해결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플래직은 유일하게 국내 공연계에서 만연한 저작권 문제를 타파하며, 저작권 클린 캠페인의 모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그래서 편곡가로서도 안심하고 오직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다.

마니아층이 많은 게임음악의 특성상 대부분의 공연은 국립극장, KBS홀, 롯데콘서트홀 등 대규모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곳에서 이루어지고, 제가 편곡한 음악이 공연을 영상과 조명을 포함한 연출과 함께 나오기 때문에 공연을 보러 갈 때면 마치 남이 편곡한 음악을 듣는 것처럼 새로운 기분을 느낀단다.

"게임 음악은 팬층이 두텁기 때문에, 대부분의 관객분들도 몇 년 이상 게임을 한 마니아 분입니다. 콘서트가 끝나면 눈물을 훔치시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연주단체와 함께하는 작곡가와는 다르게 주기적으로 추억을 선물해 드리는 기분입니다. 프로젝트마다 관객분들의 연령층이 매우 다른 것을 보는 것도 일반적인 연주회와 다른 재미입니다."

박 작곡가는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새로운 시공간을 만드는 작곡가'라 부른다. 이와 관련해 그는 '새로운 시공간'에 관한 설명을 이렇게 들려줬다.

"제 음악을 들으시는 분들이 음악이 연주되는 순간만큼은 다른 시공간에 있다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연주회장에서 듣는 음악'이 아니라 좋은 영화나 책을 읽을 때처럼 '몰입'의 감정을 선사해 드리고 싶어요.

제가 말하는 '새로운 시공간'은 또 청중 분들마다 다르게 작용합니다. 한 음악을 들어도 모든 분들은 다른 감정을 느낄 것이고, 음악을 듣는 내내 그려지는 장면도 각각 다를 거예요. 그 모든 순간이 각자의 정답입니다. 그래서 음악을 작업할 때 제가 영화감독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음악'을 들려주는 것보다 제가 창출하는 새로운 시공간에 청자를 초대하고 싶어요."

 제16회 아창제 포스터
제16회 아창제 포스터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 갈무리

그가 이번에 들려주는 'The Song of Water'는 하프와 피아노를 포함한 3관 오케스트라를 위한 악곡으로, 총 두 악장으로 구성됐다. 두 악장 모두 열대우림을 배경으로 1악장은 간헐적으로 내리는 빗방울이 스콜(열대성 소나기)까지 이르는 과정을 표현했다. 물의 특징인 '흐름'과 '떨어짐(하강)'의 이미지를 거시적인 악곡의 흐름과 미시적인 요소로 표현했다.

1악장의 후반부로 진행되면서 세차게 내리던 스콜이 점점 그치고 안개가 걷히며 미지의 땅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 문명에 의해 발견되지 않은 '물의 부족(部族)'이 살아가는 곳이라는 뜻이다.

2악장은 '물의 부족'에 관한 이야기이다. 가상의 이야기를 음악적으로 서술하는 과정에서 실제 아마존 원주민인 'Yanonami'의 노래 일부를 가져와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원시적이고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 1악장에서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미분음(微分音)이 사용됐다. 물의 부족은 앞으로도 계속 발견되지 않고, 기록되지 않을 것이며, 다만 영원히 자연과 하나돼 살아갈 것이다. 결국 이 노래는 적어도 이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들을 위한 유일한 기록이 될 것이라 소개했다.

1악장에서 주된 음향으로 사용된 요소들은 '물'과 자연을 상징한다. 이는 2주제의 다른 원주민의 습격을 받는 부분에서 변주돼 다시 등장하며 물의 종족이 싸우는 방식 또한 자연(특히, '물')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평화를 찾고, 그들의 우주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희망을 보여준다.

"이 곡은 실제로 비가 오는 날에 시작됐어요. 악곡의 도입부도 실제 그날의 빗소리를 모티브로 했어요. 'The Song of Water'는 학부 4학년 과정의 실기 작품입니다. 저는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명확하지 않은 절대 음악보다는 표제음악을 작곡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이 곡을 시작하는 날에도 딱히 생각나는 소재가 없어서 노트북을 들고 학교 앞 카페에 앉아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왔어요. 모닥불 소리를 내며 간헐적으로 내리다가 이내 폭우로 바뀌었습니다. 폭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이내 하늘은 비가 내리기 전보다 맑게 변했습니다. 이 과정을 카페 창문을 통해 지켜보면서, '비'를 의인화해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 가상의 '물의 부족(部族)'입니다. 제가 상정한 물의 부족은 현재에도 문명인들이 발견하지 못한 열대우림에 살고 있고, 항시 내리는 열대성 소나기는 일종의 경계가 돼 물의 부족을 다른 세계와 떨어뜨려 놓습니다.

1악장은 물의 부족이 사는 곳에 가기 위한 여정의 시작부터 마침내 열대성 소나기가 그치는 순간까지를 그리며, 2악장부터는 본격적인 물의 부족의 역사와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청자분들이 제 음악을 복잡한 생각 없이 청취하며 본인만의 물의 부족 이야기를 아주 자유로이 머릿속에 떠올려보시면 좋겠습니다."


아창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쓰고 있다. 문화예술 시사 월간지에서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에서 객원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과 전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만나고 있다. 현재는 '서울문화투데이' '더프리뷰' 등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