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여자프로배구 V리그 흥국생명과 IBK기업은행의 경기. 흥국생명 김연경이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21일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여자프로배구 V리그 흥국생명과 IBK기업은행의 경기. 흥국생명 김연경이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이주영

"어릴 때부터 나는 배구밖에 몰랐다. 지금도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배구이며, 코트에 서 있는 시간이 끝나더라도 남은 날들을 배구를 위해서 살고 싶다." - 김연경 자서전 <아직 끝이 아니다> 중에서

여자 배구선수 김연경(37·흥국생명)이 올 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고 은퇴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대한민국 스포츠 레전드와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다는 사실에, 팬들은 아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는 목소리도 쏟아지고 있다.

김연경은 지난 13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V리그 여자부 '경기를 마치고 진행된 수훈 선수 인터뷰에서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 시즌 끝나고 성적이랑 관계없이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구단과도 이야기가 다 된 상태"고 말했다.

"5월 올스타전이 은퇴경기될 것 같다"

김연경은 자타공인 대한민국 배구계의 GOAT(역대 최고 선수)로 꼽히는 전설이다. 2005~2006 신인 1차 지명을 받고 흥국생명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한 그는 국내에서만 5회의 정규리그 MVP를 수상하며 국내 최고의 선수로 발돋움했다. 이후 일본과 튀르키예 등 해외무대에서 진출해서도 정상급 맹활약을 펼치며 '월드클래스' 스타로 거듭났다. 국가대표팀에서는 2012 런던올림픽 4강, 2016 리우올림픽 8강, 2020 도쿄올림픽 4강 신화 등을 견인하며 세계무대에서 대한민국 여자 배구의 위상을 드높였다.

김연경은 2020 도쿄올림픽을 끝으로 태극마크를 내려놓은 데 이어, 이제는 현역 은퇴를 앞두게 됐다. 해외무대에서 활약하다가 2022년 국내 무대로 복귀했던 그는 1차 국내 복귀였던 2020-21시즌을 포함해 2022-23시즌, 2023-24시즌까지 챔피언결정전에서 준우승만 3연속에 그치는 아쉬움을 겪었다. 지난해 4월 시상식에서 김연경은 은퇴 여부 질문을 받자 "정상에 서 있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한 번 더 도전하기로 결정했다"며 현역 연장을 선언한 바 있다.

2024-25시즌이 김연경의 '라스트 댄스'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예상된 바 있다. 그는 배구선수로서 어느덧 노장이 된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소속팀 흥국생명도 김연경의 활약에 힘입어 최근 8연승 행진을 달렸고, 승점 67(23승5패)로 2위 정관장(승점 53, 19승8패), 3위 현대건설(승점 53, 17승10패)와의 격차를 14점으로 벌리며 정규리그 1위와 챔프전 진출이 유력한 상황이다. 그야말로 '박수칠 때 떠난다'는 말이 걸맞은 김연경의 은퇴 발표는, 흥국생명에게 올시즌 우승 탈환에 대한 동기부여를 더욱 높여주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김연경은 14일 공개된 본인의 유튜브 채널 '식빵언니'에서 이번 은퇴 결정에 대해 좀더 자세한 속사정을 전했다. '2024-25시즌 이후 김연경의 배구인생은 AND인가, END인가'라는 질문에 김연경은 망설임없이 "END"라고 선언하며 "올시즌이 마지막 시즌이다. 이제 김연경의 배구를 못보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와셔 보셔야 한다. 5월에 열리는 올스타전인 'KYK 인터내셔널 2025'가 저의 은퇴 경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은퇴를 결정한 과정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김연경은 "은퇴 시기가 언제가 좋을지 매년 고민해왔다. 그동안 팀도, 개인성적도 계속 좋았기 때문에 가족들이나 주변에서는 '아깝지 않냐'며 만류했다. 하지만 지금은 제가 여기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배구 외에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오래 뛰다 보다 관절 등에 잔부상도 있었다. 그리고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싶다고 늘 생각했기 때문에, 올해가 은퇴하기에 가장 적절한 때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은 시즌 전에 은퇴를 알리고 싶은 생각이 컸다. 많은 분들이 제 은퇴에 대해 관심이 많고, 제 마지막 경기를 보고 싶어 하는 분들도 많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저 혼자만의 생각으로 결정할수는 없어서 구단이나 매니지먼트와 상의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너무 이르게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시즌 중에 3라운드 끝나고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결정했다. 많은 분들도 제 은퇴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고, 그동안 미뤄놨던 김연경의 배구를 이제라도 경기장에 와서 봐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은퇴 결정에 대해 "홀가분하다"고 밝힌 김연경은 "그 정도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배구를 하면서 모든 열정을 쏟았기에 뒤돌아서 후회하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많은 사랑 받은 만큼, 주변에 베풀며 살고 싶다"

 유튜브 '식빵언니' 방송화면 갈무리
유튜브 '식빵언니' 방송화면 갈무리식빵언니

배구인생에서 아쉬움이 남는 순간에 대해서는 두번의 올림픽(런던, 도쿄)에서 4위를 기록하며 메달을 놓친 것을 첫 번째로 꼽았다. 객관적인 전력상 언더독이었던 한국 여자배구가 4강에 오른 것만으로 대단한 이변이었지만, 그럼에도 번번이 마지막 문턱에서 메달의 기회를 놓친 것은 김연경의 화려했던 배구인생에서 몇 안되는 아쉬운 장면이었다.

두 번째로는 이탈리아 진출을 포기했던 순간이 꼽혔다. 김연경은 과거 중국리그에서 뛰던 시기에 유럽 이탈리아 리그에서 반시즌 오퍼 제안이 있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다. 하지만 당시 김연경은 고심 끝에 국내 복귀를 선택했다. 김연경은 "이탈리아 리그를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놓친 게 아쉽다"고 회고했다.

김연경은 자신의 배구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순간으로는 '일본에서 튀르키예(페네르바체)로 이적했던 시기'를 꼽았다. 한국 여자 배구선수가 해외무대로 나아가 세계 최정상으로 꼽히는 유럽리그까지 진출해 활약한 것은 김연경이 개척해낸 최대의 업적이었다. 그는 "성적도 좋았고 배구선수로서나 사람 김연경으로서 많이 성장한 시기였다. 기억에도 많이 남고 되게 좋았던 순간"이라고 자평했다.

화끈하고 당당한 '김연경 리더십'에 대해서는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구한테는 강렬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냉정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면서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다만 저는 자신이 아닌 팀을 위해서 이끌려고 노력했기에 후회는 없다. 저에 대해서 안 좋게 생각하셨다면 오해를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편으로 김연경은 "리더로서 외로움을 느낀 적도 많았다. 좋은 팀원들을 만났고 도움을 받은 것이 리더로서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며 동료들에게 모든 영광을 돌렸다.

마지막으로 김연경은 은퇴를 앞둔 자신에게 "참 많은 일들을 겪었다. 이제는 그 짐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남은 제2의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주변에게 베풀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면서 "앞으로 아마 하기 싫어도 또 뭔가 배구를 위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고생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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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은퇴 흥국생명 GOAT 여자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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