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키드> 스틸컷
영화 <위키드> 스틸컷유니버설 픽처스

미국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흥미로운 분석이 나왔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 애넌버그 포용정책 연구소는 지난 11일(현지시각) 발표한 보고서에서 2024년 최고의 수익을 올린 영화 100편 중 54편에서 여성이나 소녀 배우가 주연 또는 공동 주연을 맡았다고 밝혔다.

이는 여성 주연 영화가 최고 흥행작 100편 중 30편에 그쳤던 2023년보다 훨씬 증가한 수치다. 여성이 주연을 맡은 영화가 과반을 넘은 것은 할리우드 역사상 처음이다. 보고서가 처음 나온 2017년에는 20%에 불과했다.

연구소 설립자 테이시 L. 스미스 박사는 "최고 흥행작에서 성평등(gender equality)이 달성됐다고 말할 수 있는 첫 해"라며 "특히 작년 흥행 상위 영화 5편 중 3편, 10편 중 5편에서 여성이 주연을 맡았다"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신시아 에리보가 주연한 <위키드>, 애니아 테일러 조이가 주연한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데미 무어가 주연한 <서브스턴스> 등이 있다. 지난해 흥행 수익 1위에 오른 애니메이션 < 인사이드 아웃 2 > 역시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이다.

스미스 박사는 "우리는 항상 여성으로 식별되는 주연이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라며 "다만 이는 갑작스러운 경제적 각성의 결과라기보다는 인권 단체, 스튜디오,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이니셔티브를 통해 스크린에서 성평등 필요성을 주장한 다양한 구성원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러한 획기적인 사건이 한 번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출발이 되기를 기대한다"라며 "즉, 스크린에서의 성평등이 이례적이 아니라 표준이 되는 시대를 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나이 들면 사라지는 여성 배우들

 영화 <서브스턴스> 스틸컷
영화 <서브스턴스> 스틸컷워킹 타이틀 필름스

다만, 여성 배우의 나이에 따른 차별은 여전했다. 데미 무어가 주연한 <서브스턴스>가 눈에 띄었으나 50세 이상에서 남성과 달리 여성 배우의 역할은 크게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배우 비율은 30대 35%에서 40대에는 16%로 감소했다. 반면 남성 배우는 30대 25%에서 40대에는 31%로 늘어났다. 50세 이상의 남성 배우는 여성보다 두 배 이상의 역할을 맡았다.

<할리우드리포터>는 "영화계에서 나이가 들수록 남성은 유리한 반면에 여성은 일정 연령이 지나면 소외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라고 평가했다.

유색인종 주연 비율도 급감했다. 2023년 흥행 상위 100편 중 유색 인종이 주연 또는 공동 주연을 맡은 작품은 37편이었는데 작년에는 25편에 그쳤다. 유색인종 여성의 주연 비율도 100편 중 13편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미국 인구에서 유색인종의 비율은 42%에 달하는데 영화가 인종 대표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지적했다.

보고서 주저자인 캐서린 네프 박스는 "올해의 연구 결과는 성평등을 향한 역사적인 진전을 이루었지만, 유색인종 여성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있다"라고 강조했다.

스미스 박사도 "관객은 여성과 유색인종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하는데 스튜디오와 영화 제작자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라고 덧붙였다.

영화계 따라가지 못하는 음악계 성평등

음악계의 성평등은 지지부진했다. 이 연구소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 2024년 빌보드 핫 100 연말 차트에서 여성 아티스트가 37.7%를 차지했다. 2023년 35%에서 크게 늘어나지 않은 수치다. 여성 프로듀서가 참여한 비율도 5.9%에 그쳤다.

보고서는 "여성 아티스트가 그나마 늘어난 것은 남성 아티스트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며 "여성의 활약에 따른 변화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스미스 박사는 "음악 산업의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이는 진전의 신호가 아니다"라며 "음악계에 여성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우리는 앞으로도 별다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할리우드 여성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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