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 3성에서 많이 쓰이는 '챵량'(敞亮)이라는 중국어 단어를 아시나요. '탁 트이다' 내지는 '시원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를 누구보다도 많이 쓰는, 그리고 그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 하얼빈에서 8년 만에 동계 아시안 게임이 열립니다. 하얼빈 현장의 이야기를 탁 트일 수 있도록 시원하게 담겠습니다.[기자말]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은메달을 따낸 남자 컬링 대표팀 의성군청 선수들이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마스코트와 함께 '셀카'를 찍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표정민·김진훈·김효준·김은빈·이재범 선수.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은메달을 따낸 남자 컬링 대표팀 의성군청 선수들이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마스코트와 함께 '셀카'를 찍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표정민·김진훈·김효준·김은빈·이재범 선수.박장식

고교 때부터 국내 컬링판을 흔들어놓곤 했던 의성군청 남자 컬링팀 선수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의성군청 결성 이전, 고교 팀과 대학 팀으로 대회에 나올 때마다 특유의 장난기 넘치던 모습도, 자신감 넘치던 선수들이라고 믿기에 너무나도 그늘이 깊었다.

14일 오전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핑팡구컬링관에서 열린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 남자 컬링 결승전에서 필리핀에 일격을 당하며 은메달에 그쳤던 남자 컬링 대표팀. 특유의 긍정 에너지가 넘쳤던 선수들에게는 금메달을 품에서 뺏긴 아쉬움이 너무나도 컸다.

하지만 아쉬움도 잠시. 평균 연령 22.5세의 대표팀 선수들에게 기회는 많다. 이제 국가대표 2연패와 올림픽 출전에 다시금 힘을 낸다. 이들은 봄에 열리는 세계선수권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각오했다.

"이런 큰 무대 처음이었기에 아쉬워... 기회 잡았어야 했다"

이재범 스킵은 "경기 결과가 많이 아쉽다. 이런 무대에서 결승전을 치른 것이 처음이라 긴장감도 있었고, 부담감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라며 "더욱 함께 뭉쳐서 잘해보자고 했는데 부족했다"라고 돌아봤다.

이어 "우리가 아시안 게임이라는 대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다"며 "기회가 왔을 때 잡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 그럼에도 이 아시안 게임이 끝은 아니다. 우리가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표정민 역시 "결승 때 다 같이 긴장도 됐지만, 의지를 다지고 경기에 들어간 덕분에 잘 싸웠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잘 보완해서 다가오는 세계선수권과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을 잘 치러서 내년 올림픽에도 진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살면서 치른 경기 중 가장 큰 대회가 이번 아시안 게임이었다"라며 "(평소보다) 조금 더 긴장한 탓에 우리가 할 수 있는 100%를 모두 발휘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결승전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김은빈은 고질적인 손목 통증을 안고 이번 아시안 게임에 나섰다. "범대륙 때부터 손목에서 통증이 있었다"며 "최근 스위핑을 많이 했다 보니 무리가 된 것 같다. 그럼에도 아픈 것보다는 승리하겠다는 생각으로 이겨낸 것 같다"고 했다.

"중요한 순간 실수 아쉬워"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은메달을 따낸 남자 컬링 대표팀 의성군청 선수들.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은메달을 따낸 남자 컬링 대표팀 의성군청 선수들.박장식

중요한 순간에 대표팀은 샷 미스로 고전했다. 이재범 스킵은 "2엔드 실수는 우리가 대량 득점을 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아쉬움이 컸다"고 돌아봤다. 이어 "빨리 잊고 나머지 엔드에 집중하려 애썼다"라고 회상했다.

표정민 역시 "우리가 약한 웨이트로 돌려서 상대 스톤을 쳤으면 많은 점수를 낼 수 있었는데, 긴장한 탓에 급하게 콜하고 스위핑해서 아쉬웠다. 우리 모두의 실수다"라며 아쉬워했다.

극적인 승리를 노렸던 마지막 샷에서도 아쉬운 결과가 나왔었다. "내가 자신이 있던 샷인데 스위핑 콜이 약간 늦었던 것이 아쉬웠다"는 이재범 스킵은 "조금 더 빨리 콜을 했다면 승리했을 것"이라고 자책하기도 했다.

김효준 선수의 가족들은 멀리 하얼빈의 경기장을 직접 찾아 아들을 향한 응원을 펼치기도 했다. '아들 파이팅'이라며 안아주기도 했다고. 그는 "부모님이 많은 힘이 됐다. 하지만 기대 이상으로 좋은 결과를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며 "더욱 열심히 하는 자식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의성 BTS' 별명 곤란하지만... BTS처럼 잘 하겠다"

남자 컬링 대표팀의 메달 도전은 많은 스포츠 팬들에게 관심이 모이기도 했다. 표정민에게 의성군청 팀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하자 "창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같은 지역에서 같이 자란 형, 동생 사이 선수들이 함께 뛰고 있다"며 "젊은 패기로 똘똘 뭉쳐서 나아가는 팀"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스포츠 팬들 사이에서 '의성 BTS'라는 별명이 붙은 것에 대해서도 "곤란한 별명"이라면서도 "이렇게 된 이상 BTS처럼 잘 해서, 세계 무대에서 멋진 모습 보여주고 싶다. 우리가 아직 시작이고 많은 시간이 남았다. 더욱 발전된 모습 보여주겠다"라고 강조했다.

이재범 스킵은 동생들을 향해 "많이 까불기도 하는데, 그 다음에 내가 부족한 점이 있으면 그 부분을 메워주는 든든한 동생들"이라며 칭찬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다가오는 세계선수권에서 성적을 내야 올림픽 티켓을 딸 수 있다"며 "다시 세계선수권에 초점을 두고 올림픽 출전이라는 꿈을 향해 나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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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이야기를 찾으면 하나의 심장이 뛰고, 스포츠의 감동적인 모습에 또 하나의 심장이 뛰는 사람. 철도부터 도로, 컬링, 럭비, 그리고 수많은 종목들... 과분한 것을 알면서도 현장의 즐거움을 알기에 양쪽 손에 모두 쥐고 싶어하는, 여전히 '라디오 스타'를 꿈꾸는 욕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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