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 3성에서 많이 쓰이는 '챵량'(敞亮)이라는 중국어 단어를 아시나요. '탁 트이다' 내지는 '시원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를 누구보다도 많이 쓰는, 그리고 그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 하얼빈에서 8년 만에 동계 아시안 게임이 열립니다. 하얼빈 현장의 이야기를 탁 트일 수 있도록 시원하게 담겠습니다.[기자말]

 한국 피겨 스케이팅이 국제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남여 우승을 휩쓸었다. 사진은 13일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연기를 펼치는 김채연(왼쪽 사진)과 차준환(오른쪽 사진).
한국 피겨 스케이팅이 국제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남여 우승을 휩쓸었다. 사진은 13일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연기를 펼치는 김채연(왼쪽 사진)과 차준환(오른쪽 사진). 연합뉴스

차준환이 일본 선수를 꺾고 한국 남자 피겨 스케이팅 역사 최초로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 앞서 피겨 여자 싱글 김채연 역시 세계 1위인 일본 사카모토 가오리를 제치고 금메달을 땄다. 이로써 한국 피겨 남녀 싱글 모두 동계 아시안게임 정상에 나란히 오르게 됐다.

13일 밤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 피겨 스케이팅 남자 싱글 프리 프로그램 경기에서 차준환은 카기야마 유마를 상대로 역전에 성공, 금메달을 땄다. 2023년 세계선수권이 생각나는 신들린 듯한 연기를 펼친 차준환은 이제 아시아 최강으로 올라섰다.

기술 점수 99.02점, 예술 점수 88.58점으로 도합 187.60점을 기록한 차준환은 앞서 금메달을 딴 김채연과 함께 한국 피겨 사상 처음으로 남녀 싱글에서 동반으로 정상에 올라선 선수가 됐다. 차준환의 역사는 이제 내년 올림픽으로 향한다.

인생 연기 펼치며 '금' 수확

차준환은 이틀 전이었던 11일 열린 쇼트 프로그램에서는 기술 점수 50.58점과 예술 점수 43.51점을 합해 도합 94.09점으로 일본의 카기야마 유마에 이어 2위에 올랐다.

"나에게 집중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마지막에서 두 번째 순서로 프리 프로그램 연기에 나선 그는 < Balada para un Loco >(미치광이를 위한 발라드)에 맞춰 연기를 시작했다.

눈빛이 남달랐다. 첫 번째 점프로 수행한 쿼드러플 살코를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깔끔한 도약과 착지에 좌중에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어진 쿼드러플 토룹 역시 성공한 차준환은 트리플 럿츠를 단독으로 뛰며 연기를 이어나갔다.

트리플 악셀 역시 안정적으로 도약해 깔끔하게 내려앉았고, 레벨 4의 스텝 시퀀스를 수행하며 연기 후반부로의 진입에 나섰다. 트리플 플립과 싱글 오일러, 트리플 살코를 차례로 해낸 그에게 박수갈채가 여지없이 쏟아졌다.

 피겨 차준환이 13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피겨 남자 싱글 프리 스케이팅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
피겨 차준환이 13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피겨 남자 싱글 프리 스케이팅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겨 차준환이 13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피겨 남자 싱글 프리 스케이팅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차준환은 이날 경기에서 쇼트프로그램 94.09점을 합한 최종 총점 281.69점을 받으며 우승했다.
피겨 차준환이 13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피겨 남자 싱글 프리 스케이팅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차준환은 이날 경기에서 쇼트프로그램 94.09점을 합한 최종 총점 281.69점을 받으며 우승했다. 연합뉴스

트리플 악셀과 더블 악셀을 차례로 뛰어내며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나간 차준환은 체인지 풋 콤비네이션에서 선율에 맞춰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특히 앞서 처리하지 못한 트리플 룹을 트리플 플립에 붙여 해내며 전반부의 아쉬움을 씻어내는 데 성공했다.

모든 점프를 성공시킨 차준환을 자축하는 '세리머니'도 이어졌다. 자신의 특기인 이나바우어를 우아하게 보여준 것. 그야말로 인생 연기를 펼친 그는 남은 스핀 동작을 수행하며 아시안 게임 무대의 대단원을 향해 달려나갔다.

하늘을 향해 몸을 내던지는 자세로 연기를 마친 차준환. 그를 향해 관중석에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점수는 187.60점. 프리에 출전한 선수들 중 가장 높은 점수였다.

이어 연기를 펼친 카기야마 유마는 동작을 수행하던 도중 여러 차례 넘어졌다. 분위기가 묘해졌다.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들어간 카기야마 유마의 점수는 2.00이 감점된 168.95점. 쇼트 점수를 합치더라도 10점 가까이 부족했다. 차준환의 우승이었다.

차준환은 동계 아시안 게임 남자 피겨에서 처음으로 애국가를 울려퍼지게끔 만든 선수로 남게 됐다. 앞서 여자 싱글 금메달을 따낸 김채연이 박수를 보내는 가운데 시상대에 오른 차준환 앞에 애국가가 울려퍼졌다.

한편 이틀 전 진행된 쇼트에서 발목 부상을 입은 김현겸은 프리 프로그램을 기권했고, 북한의 로영명은 프리 프로그램에서 136.65점을 받으며 최종 6위에 올랐다.

"집중하며 준비한 덕분"

 13일 밤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 피겨 스케이팅 남자 싱글 경기에서 우승한 차준환이 공식 기자회견에 임하고 있다.
13일 밤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 피겨 스케이팅 남자 싱글 경기에서 우승한 차준환이 공식 기자회견에 임하고 있다.박장식

차준환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최선을 다해 집중하며 준비했는데 끝까지 열심히 집중한 덕분에 잘 마무리해서 만족스럽다"며 "이번 시즌엔 부상이 있었기 때문에 회복에 집중했다. 연속적으로 경기를 뛰면서 신경을 많이 썼는데, 좋은 흐름을 만들었다. 앞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경기를 보여드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2018 평창 동계 올림픽과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경험하면서 한두 발씩 실수도 있었는데, 그런 부분에서 배움이 있었다"라며 "이번 경기에 임하면서 정말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경기에 온전히 집중을 다했다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차준환은 "다른 선수들의 수행을 보기 보다는 나의 경기에 오롯이 집중했고,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며 "경기 중간도 완벽하지 않았고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집중이 있었기에 플랜B를 고려해 경기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고 했다.

차준환은 오는 20일과 22일에 서울 목동에서 열리는 2025 사대륙선수권에서 또다시 금빛 연기를 펼친다.

한편, 차준환보다 먼저 프리 경기를 펼친 김채연은 쇼트와 프리 총점 219.44점으로 개인 최고점(퍼스널 베스트)를 경신, 점프 실수를 한 사카모토(211.90점)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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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환 피겨스케이팅 남자피겨 금메달 2025하얼빈동계아시안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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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이야기를 찾으면 하나의 심장이 뛰고, 스포츠의 감동적인 모습에 또 하나의 심장이 뛰는 사람. 철도부터 도로, 컬링, 럭비, 그리고 수많은 종목들... 과분한 것을 알면서도 현장의 즐거움을 알기에 양쪽 손에 모두 쥐고 싶어하는, 여전히 '라디오 스타'를 꿈꾸는 욕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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