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 설치된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이벤트 포토존
유정렬
디즈니 마블의 야심작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월드>(이하 캡아 4)가 개봉했다. 사실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낮았다. 최근 마블 영화 중 재밌었던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2019년 이후 5년 동안 총 11개 작품을 개봉했는데,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제외하면 마블 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의 흥행은 처참했다. 영화마다 가족주의와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하고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하기도 했다. 결국 기존 코어 팬 중에서도 이탈이 일어났다.
마블의 패착
무엇보다 가장 큰 패착은 캐릭터 서사 부여에 공을 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웅들이 왕창 나오는 어벤져스 시리즈는 재밌었지만, 캐릭터들의 고뇌와 성장을 다뤄낸 개별 영웅들의 시리즈도 재밌었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등의 영화도 어벤져스 못지않게 사랑 받았다.
그에 반해 엔드게임 이후 등장한 캐릭터들은 어떤가. 캐릭터도 낯선데, 서사조차 제대로 부여해 주지 않는다. 소위 어벤져스를 잇는다는 2세대 영웅 캐릭터들은 하나 같이 매력을 느끼기 어려웠다. 히어로 장르물의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게 캐릭터의 매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주인공의 매력이 없으니 영화가 재밌을 리 없다. 1대 어벤져스 멤버들을 멋있게 퇴장시켜 놓고, 그 뒤에 나온 캐릭터에 공을 들이지 않았으니 팬들의 외면은 당연한 결과였다.
덕분에 마블 영화가 꾸준히 제작되고 개봉됐지만 그 인기는 확 식었다. 기존의 코어 팬조차 이탈했다. 필자 역시 마블의 팬으로서 한 때는 영화의 개봉일만 손꼽아 기다렸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대책 없이 무너져가는 마블 영화들의 모습을 보면서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설레지도, 기다려지지도 않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금번 '캡아 4'도 크게 기대감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캡아 4의 예고편을 보고 나니 조금씩 호기심이 생겼다. 예고편의 액션씬 부분이 예전 캡틴 아메리카 2: 시빌워(이하 캡아 2)의 느낌이 났기 때문이다.
'캡아 2'는 마블 시리즈 중에서도 나의 인생 영화다. 이 영화를 통해 마블의 입문을 했고, 동시에 입덕 했다. 정치 스릴러물의 장르 색깔을 가져가면서 액션 또한 기가 막히게 연출한 캡아 2의 밸런스는 그야말로 최고다. 알려진 대로 캡아 2의 감독은 어벤져스 인피니티워와 엔드게임을 제작한 '루소 형제'다. 결국 '캡아 4'에 기대 반, 우려반의 마음으로 극장을 향했다.
'캡아 4'의 핵심 포인트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월드> 이벤트 존에는 굿즈와 포스터 등을 판매했다.유정렬
이번 '캡아 4'의 핵심 포인트는 '자기 증명'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내적인 부분과 외적인 요소 모두 그렇다. 영화 줄거리를 축약하자면 1대 캡틴이었던 스티브 로저스(이하 스티브)를 잇는 샘 윌슨(이하 샘)이 과연 2대 캡틴 아메리카로서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증명해 내야 한다.
그동안 샘의 고민은 두 가지였다. 자신이 흑인이라는 것과 슈퍼솔져 혈청을 맞지 않았다는 점이다. 캐릭터명에서 알 수 있듯이 캡틴 아메리카는 극 중 미국을 대표하는 영웅의 포지션이다. 샘은 이전 캡틴인 스티브에게 직접 방패(캡틴의 자리)를 물려받았음에도 그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워했다. 더불어 슈퍼 솔져 혈청을 맞지 않은 그는 초인적인 힘을 낼 수 없는 일반인에 불과했다.
'캡아 4'에서 샘은 언급한 두 가지 산을 극복하고 2대 캡틴의 자격이 충분하다는 걸 증명한다. 흑인으로 차별받은 이사야(극 중 비밀리에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슈퍼솔저)와의 만남을 통해 샘은 자신부터 피부색이 다르다는 편견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더불어 엔드게임에서 스티브가 샘에게 방패를 물려준 것 자체가 그가 자격이 있음을 뒷받침한다. 캡아 1편 '퍼스터 어벤져'에서 스티브가 슈퍼 솔저 프로젝트의 적임자로 선정될 수 있었던 건 그가 백인이어서가 아니라 타인보다 뛰어난 이타심과 정의감을 소유했기 때문이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스티브이기에 샘에게 방패를 준 것이다.
혈청을 맞지 않았다는 건, 사실 샘에게 큰 약점이다. 대신 와칸다의 기술력으로 극복해 낸다. 버키(윈터솔저)의 배려로 비브라늄 슈트를 받은 샘은 새로운 캡틴으로서 부족함 없는 전투력을 선보인다. 물론, 지상에서 벌이는 육탄전의 파괴력과 긴장감은 기존 스티브의 캡틴이 보여준 것보다는 조금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못지않다는 점이다. 이전과 확실히 성장한 샘의 격투기술을 보고 있으면 그가 일반 사람으로서 얼마나 훈련을 많이 했을지 그 노력이 보인다.
이는 단순히 슈트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슈트가 없을 때도 그는 위축되지 않고 당당히 적에게 맞선다. 비브라늄 방패와 업그레이드된 윙 슈트는 훨씬 기동성 있는 전투신을 보여주었다. 특히, 공중전은 미친 연출 그 자체다. 하늘에서 전투기들과 맞서는 그의 액션은 흡사 탑건: 매버릭을 떠오르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혈청의 슈퍼파워가 없음에도, 공중과 지상을 아우르며 활약을 펼치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샘의 성장 서사에 충실하면서 그는 자신이 왜 캡아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완벽히 증명해 낸다. 예고편에도 조금 나오지만 마지막은 샘의 캡아와 레드 헐크의 대결로 마무리된다. 아무리 슈트를 입었다지만 최강 파워 헐크를 샘이 상대나 할 수 있을까. 참고로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우리가 아는 녹색 헐크가 폭주했을 때 아이언맨의 헐크 버스터(헐크 대적용 슈트)도 당해내지 못했다. 샘이 레드 헐크와 벌이는 전투는 이 영화의 최고 하이라이트다.
캡아 4는 다 죽어가던 마블 시리즈에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마블을 다시 살려낸 셈이다. 덕분에 다시금 앞으로 개봉하게 될 마블 시리즈에 대한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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