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 3성에서 많이 쓰이는 '챵량'(敞亮)이라는 중국어 단어를 아시나요. '탁 트이다' 내지는 '시원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를 누구보다도 많이 쓰는, 그리고 그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 하얼빈에서 8년 만에 동계 아시안 게임이 열립니다. 하얼빈 현장의 이야기를 탁 트일 수 있도록 시원하게 담겠습니다.[기자말]

 피겨 김채연이 12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피겨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피겨 김채연이 12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피겨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여자 피겨 스케이팅의 신성 김채연이 쇼트 프로그램 개인 최고점(퍼스널 베스트)를 경신하며 처음 출전한 종합 경기 대회에서 '인생 경기'를 펼쳤다.

김채연은 12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에서 71.88점을 기록했다. 시니어 데뷔 시즌이었던 2년 전 사대륙선수권에서 받은 71.39점보다 높다.

이날 쇼트 프로그램에서는 세계선수권 3연패를 기록한 일본의 간판 피겨 선수인 사카모토 카오리가 75.03점으로 1위에 올랐다. 대표팀 선수로 함께 나섰던 김서영은 아쉬운 실수를 범하며 51.23점을 기록, 7위에 머물렀다.

김채연,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었다... 클린 연기로 시즌 베스트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었다. 자로 잰 듯 완벽한 연기를 선보였던 김채연은 '제비뽑기'로 뽑는 아시안 게임 쇼트 순서에서 첫 세션 두 번째 차례로 경기에 나섰다. 25명 중에 두 번째, 시니어 데뷔 이후 세계 무대에서 좀처럼 나섰던 적이 없는 순서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도 출전했던 중국의 주이에 이은 두 번째 순서이기에 부담도 컸을 터. 하지만 은반 위에 올라가자 김채연의 얼굴은 바로 누구보다도 비장해졌다. 이번 시즌 음악인 영화 <트론: 새로운 시작> OST에 맞춰 강렬한 연기를 펼쳤다.

김채연은 더블 악셀을 위해 도약한 뒤 깔끔하게 랜딩했다. 이어 트리플 럿츠와 트리플 토룹 콤비네이션 점프를 막힘 없이 이어가나며 동작 수행 역시 완벽하게 이어나갔다. 플라잉 카멜 스핀은 가장 높은 레벨 4로 수행했다.

후반부 점프에서도 지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10%의 가산점이 붙는 트리플 플립 역시 단 하나 흠 잡을 곳이 없었다.

이밖에 체인지 풋 콤비네이션 스핀, 스텝 시퀀스, 레이 백 스핀을 모두 레벨 4의 난도로 수행했다. 난도가 있는 동작을 막힘 없이 수행한 김채연은 무릎을 꿇어 앉아 하늘을 쳐다보는 자세로 연기를 마쳤다. 큰 경기에서 누구보다도 강한 장기가 그대로 드러났던 무대였다.

한편 김채연의 바로 뒷차례에 나온 김서영은 초반 점프 수행 도중 넘어지거나 균형을 잃으며 첫 아시안 게임 데뷔가 쉽지만은 않은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김서영은 51.23점으로 쇼트 프로그램을 마쳐 7위에 올랐다.

"어머니가 싸주신 명이나물, 덕분에 힘 났어요"

 12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에서 대한민국의 김채연이 연기를 시작하고 있다.
12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에서 대한민국의 김채연이 연기를 시작하고 있다.박장식

 피겨 김채연이 12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피겨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피겨 김채연이 12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피겨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채연은 "어제까지만 해도 '즐겁게 대회 하고 집에 갈 수 있겠다' 싶었다. 원래는 떨지 않았는데, 오늘 아침부터 많이 떨렸다. 걱정이 많았다"며 "내가 나갔던 대회 중에서 가장 크다고 느꼈고, 그런 만큼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개인 최고점을 경신한 그는 "눈이 잘 안 보여서 키스 앤 크라이 존에서는 점수가 어떻게 나왔는지 잘 몰랐는데, 퍼스널 베스트 경신을 확인하고는 너무 기뻤다"며 "긴장한 것 치고는 나쁘지 않은 경기를 해서 다행스러웠다"고 했다.

아시안 게임을 앞둔 그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도 있었을까. 김채연은 "(김)연아 선배님도 그렇고, 다른 선배님들도 '집중해서 내 것만 하면 결과는 따라오니까, 긴장하지 말고 즐기면서 하면 된다'고 말씀을 해 주셨다"고 전했다.

체중 관리 때문에 아무 것이나 먹을 수 없는 피겨 선수들. 김채연은 "어머니께서 즉섭밥과 반찬들을 챙겨주셔서 힘이 날 수 있도록 잘 먹고 있다"며 "이번에 명이나물 싸주신 게 가장 맛있더라"고 말해 취재진들에게 웃음꽃을 피우기도 했다.

그는 "컨디션 관리 잘하고, 프리 프로그램에서는 후반에 배치돼 있는 트리플-트리플 점프에 집중해 깔끔하게 뛰고 싶다"며 "나머지 요소들도 부담 갖지 않고 덜 떨고 집중해서 깔끔하게 경기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13일에는 남녀 피겨 선수들의 '메달 데이'가 이어진다. 한국 시간으로 13일 낮 2시부터는 여자 싱글 프리 프로그램이, 역시 한국 시간 오후 6시 30분부터는 남자 싱글 프리 프로그램이 열린다. 김채연이 '디펜딩 챔피언' 최다빈의 길을 이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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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이야기를 찾으면 하나의 심장이 뛰고, 스포츠의 감동적인 모습에 또 하나의 심장이 뛰는 사람. 철도부터 도로, 컬링, 럭비, 그리고 수많은 종목들... 과분한 것을 알면서도 현장의 즐거움을 알기에 양쪽 손에 모두 쥐고 싶어하는, 여전히 '라디오 스타'를 꿈꾸는 욕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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