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 3성에서 많이 쓰이는 '챵량'(敞亮)이라는 중국어 단어를 아시나요. '탁 트이다' 내지는 '시원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를 누구보다도 많이 쓰는, 그리고 그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 하얼빈에서 8년 만에 동계 아시안 게임이 열립니다. 하얼빈 현장의 이야기를 탁 트일 수 있도록 시원하게 담겠습니다.[기자말]

 '전승'으로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 조별리그를 마친 남자 컬링 대표팀 선수들.
'전승'으로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 조별리그를 마친 남자 컬링 대표팀 선수들.박장식

남자 컬링 대표팀이 단 한 번의 패배도 내주지 않고 동계 아시안 게임 남자 컬링 조별리그를 마쳤다. 2007년 창춘 대회 이후 18년 만의 금메달을 노리는 남자 컬링 대표팀은 어느 때보다도 전망이 밝다.

중국·일본과 직접적인 맞대결을 피하며 라운드로빈을 시작한 남자 컬링 대표팀(의성군청, 이재범·김효준·김은빈·표정민·김진훈)은 필리핀과의 경기에서 완승한 것을 시작으로 키르기즈스탄·대만, 그리고 카자흐스탄을 꺾고 라운드로빈 1위를 달성, 준결승 직행을 확정지었다.

일정에 운도 따랐다. 다른 팀이 경기를 치르는 12일에 단 한 경기도 배정받지 않았다. 준결승 직행도 확정한 만큼 남자 대표팀에는 만 이틀 정도의 온전한 휴식 시간도 주어진다. 하지만 이 휴식에는 '핸드폰'이 빠졌다. 온라인 반응을 찾거나 불필요한 연락을 받는 대신 경기 내에 집중하기로 한 것.

무패행진... 실력도, 행운도 따랐다

대한민국은 이번 라운드 로빈 A조에 속했다. A조의 구성국은 대한민국을 비롯해 필리핀, 키르기즈스탄, 그리고 대만과 카자흐스탄까지 5개국이었다. 반면 B조에는 중국과 일본을 비롯해 홍콩, 태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까지 6개 나라가 속해 쉽지 않은 맞경기가 펼쳐졌다.

대한민국은 '난적' 중국과 일본도 피하고, 금메달 도전이 유력한 팀들에 대비해 한 경기까지 덜 치를 수 있는 천우일조의 행운을 맞이할 수 있었다. 실력도 따랐다. 스위스 국가대표 경력을 보유한 앤리코·마르코 피스터 형제가 브룸을 잡고 있는 필리핀을 만난 첫 경기부터 큰 점수차로 꺾으며 선전했다.

이어진 키르기즈스탄·대만, 그리고 카자흐스탄과의 경기에서도 막힘 없는 면모를 보이며 큰 점수차로 일찍 승리를 거둔 남자 컬링 대표팀은 한국 시간 11일 오후 3시 열린 카자흐스탄전 다음 경기로 13일 오후 8시 치르는 준결승전에 나선다.

조 1위로 직행권을 얻어낸 준결승전 역시 카자흐스탄과 홍콩의 맞대결에서의 승자와 치르는 것으로 결정됐다. 두 번째 경기부터 준결승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껄끄러움이 덜한 상대와 연속해서 맞붙는 셈이다.

중국의 '홈 경기'를 최소한 결승까지 피한 것도 다행스러웠다. 2014 소치 동계 올림픽에도 출전했던 쉬샤오밍이 은퇴를 번복하고 이번 아시안 게임 2연패를 위해 복귀했다. 부상을 회복한 뒤 다시금 경기장에 나선 쉬샤오밍은 중국 대표팀 스킵으로 나서 지난해 범대륙선수권 우승을 이뤄낸 바 있다.

대학·주니어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꾸린 일본은 '베테랑' 쉬샤오밍이 버티고 있는 중국과의 라운드 로빈 최종전에서 마지막 엔드 무려 석 점의 스틸 패배를 내줬다. 일본은 컬링 인프라가 비교적 좋지 않은 홍콩에게까지 패배하며 조별 리그 3위까지 굴러떨어지는 등 수난이 이어졌다.

휴대폰도 걷고 '집중'

 12일 하얼빈 핑팡구컬링관에서 열리는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에 나선 여자 컬링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남자 컬링 대표팀 선수들은 휴대폰 없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12일 하얼빈 핑팡구컬링관에서 열리는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에 나선 여자 컬링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남자 컬링 대표팀 선수들은 휴대폰 없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박장식

남자 컬링 대표팀은 지난 11일 카자흐스탄과의 경기에 앞서 휴대폰을 김진훈 선수에게 모두 건넸다. 가족·친구와 꼭 필요한 연락이 필요할 때만 휴대폰을 쓰고, 꼭 필요하지 않을 때는 김진훈 선수가 보관하고 있는 방식이다.

실제로 12일 여자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찾은 경기장에서 만난 선수들은 휴대폰 없이 경기를 지켜보기도 했다. 선수들 역시 '휴대폰이 없는 것이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에 "딱히 그렇지 않다"고 했다.

휴대폰을 선수가 걷어서 보관하는 방식은 이동건 감독이 제안했다. 경기력에 지장이 될 수도 있는 불필요한 연락을 받지 않고, 온라인 및 언론 반응을 살피지 않기 위해서다.

18년 만의 금메달에 가까워지기 위해 이른바 '수행'에 나서고 있는, 그리고 누구보다도 아시안 게임 정상이 간절한 남자 대표팀 선수들의 메달 도전은 (이하 한국 시간) 13일 오후 8시 준결승전, 그리고 14일 오전 10시 하얼빈 핑팡구컬링관에서 열리는 결승전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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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이야기를 찾으면 하나의 심장이 뛰고, 스포츠의 감동적인 모습에 또 하나의 심장이 뛰는 사람. 철도부터 도로, 컬링, 럭비, 그리고 수많은 종목들... 과분한 것을 알면서도 현장의 즐거움을 알기에 양쪽 손에 모두 쥐고 싶어하는, 여전히 '라디오 스타'를 꿈꾸는 욕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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