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 3성에서 많이 쓰이는 '챵량'(敞亮)이라는 중국어 단어를 아시나요. '탁 트이다' 내지는 '시원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를 누구보다도 많이 쓰는, 그리고 그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 하얼빈에서 8년 만에 동계 아시안 게임이 열립니다. 하얼빈 현장의 이야기를 탁 트일 수 있도록 시원하게 담겠습니다.[기자말]

 11일 밤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핑팡구컬링관에서 펼쳐진 여자 컬링 한중전에서 (왼쪽부터)설예은·김수지 선수가 스톤을 스위핑하고 있다.
11일 밤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핑팡구컬링관에서 펼쳐진 여자 컬링 한중전에서 (왼쪽부터)설예은·김수지 선수가 스톤을 스위핑하고 있다.박장식

여자 컬링 대표팀 경기도청 '5G'가 중국을 꺾고 전승 우승 목표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섰다. 대표팀(김은지·김민지·김수지·설예은·설예지)은 중국을 4대 3으로 꺾었다.

11일 밤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핑팡구컬링관에서 펼쳐진 여자 컬링 한중전. 중국은 경기 초반부터 한국을 상대로 스틸을 따내는 등 우세한 모습을 보이나 싶었다. 하지만 세계 무대에서의 관록을 지닌 대표팀 선수들은 평정심을 갖고 경기에 임했다. 대한민국은 연속 스틸을 곁들인 3연속 득점으로 기어이 역전승을 얻어냈다.

이번 대회 가장 까다로운 상대 중국을 꺾고 플레이오프 전망을 청신호로 밝힌 선수들은 "조급해하지 않은 덕분에 승리를 거둔 것 같다"며 "여유를 찾으니 시야도 넓어지더라"고 한중전을 돌아봤다.

연속 스틸, '관록' 느껴졌던 버튼 드로우... 한중전 웃었다

중국 컬링팀은 비교적 정보가 적은 팀이다.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전후해 해외 투어 출전 빈도가 크게 줄어들면서 상대의 전략과 선호하는 작전·라인 등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왕루이가 스킵을, 한유가 서드를 맡은 이번 대표팀도 마찬가지. 그럼에도 대표팀은 세계 랭킹 2위까지 올라섰던 경험과 관록으로 후반 주도권을 잡았다.

후공권을 쥔 중국이 초반 유리했다. 1엔드 하우스를 비우며 후공권을 다음 엔드로 가져간 중국은 2엔드 한 점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한국의 첫 공격인 3엔드에서는 매끄럽지 못한 상황도 이어졌다. 버튼 안에 정확히 넣은 중국의 스톤을 쳐내지 못하며 상대에 한 점의 스틸을 내주고 만 것.

4엔드 대표팀은 심기일전해 한 점을 올렸지만, 스코어는 1대 2로 불리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들어간 후반전. 5엔드 대표팀이 스틸을 만들었다. 가드 스톤 뒤에 완벽하게 숨은 한국의 스톤을 왕루이가 쳐내려다 그대로 하우스 뒤까지 지나가 버리고 만 것. 대한민국은 단숨에 동점을 만들었다.

6엔드에도 김은지가 하우스의 버튼 바로 위에 자신들의 스톤을 배치해 상대로 하여금 실수를 유도했다. 이 전략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중국이 마지막 샷에서 1번 스톤을 만드는 데 실패해 한 점을 또 내줬다. 역전이었다. 중국은 7엔드에도 1점만을 얻어내며 동점에 대한민국 후공이라는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

마지막 8엔드는 치열하게 펼쳐졌다. 하지만 마지막 스톤에서 중국이 실수를 범하며 한국이 드로우 하나만 하우스 안에 넣는다면 가볍게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이 이어졌다. 김은지 선수가 투구하려는 찰나 관중석에서 '중국 대표팀 힘내!'라는 응원이 큰 소리로 들려왔다.

앞선 엔드에서도 별안간 응원전이 벌어졌지만, 가장 중요한 투구를 앞두고 들린 응원이 순간적으로 멘탈을 흔들 수도 있을 터. 하지만 김은지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김은지는 가볍게 하우스 안에 스톤을 밀어 넣으며 대한민국의 득점을 확정, 상대로부터 악수를 받아내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우리의 강점 살린 경기... 좋아해주셔서 감사"

 11일 밤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핑팡구컬링관에서 펼쳐진 여자 컬링 한중전에서 중국의 한유 선수가 한국 선수들에게 패배를 인정하는 악수를 보내고 있다.
11일 밤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핑팡구컬링관에서 펼쳐진 여자 컬링 한중전에서 중국의 한유 선수가 한국 선수들에게 패배를 인정하는 악수를 보내고 있다.박장식

한중전이라는 큰 산을 넘은 뒤 만난 김은지 스킵은 "경기 초반은 적응의 과정이었다. 지고 있을 때도 조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며, "그러니 시야도 넓어지고 여유도 생기면서 더욱 좋은 경기를 펼치게 되더라"고 앞선 경기를 돌아봤다.

과거 중국과 맞붙었던 경험이 많은 김민지 역시 "단순히 상대해야 할 팀 중 하나였다. 아이스가 변화되면서 우리도, 상대도 적응하기 어려운 싸움이었다. 바뀌는 아이스에 누가 먼저 적응하느냐의 싸움에서 우리가 이긴 것"이라며 승리 소감을 전했다.

마지막 샷 투구 직전 중국 관중들의 육성 응원은 부담되지 않았을까. 김은지 스킵은 "그랜드슬램이나 세계선수권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관중이 많고 시끄럽다"며 "그래서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투구했다"고 의연하게 말했다.

예선 세 경기를 남기고 있는 여자 대표팀의 '키 포인트'는 초반 경기력. 김수지는 "경기 초반 경기력을 올리는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면서도 "우리가 아이스가 변화될 때는 상대보다 조금 더 강하다는 장점이 있기에, 초반 경기력을 높인다면 결승 때 더욱 좋은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여자 컬링 대표팀의 경기는 이번 아시안 게임 기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설예지는 "아시안 게임이 다르긴 다르더라"며 "SNS 등으로 지인들이나 팬들의 연락이 많이 온다. '자랑스럽다', '잘 한다'고 말해주더라"고 전했다.

설예은 역시 "인스타그램으로 많이 응원해 주고 계신다. 하지만 실력이 좋아야 인기가 올라간다. 지면 아무 소용 없지 않냐"라면서 "그래서 더 이기려고 했고, 그래서 팬들이 더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컬링 대표팀은 한국 시간으로 12일 오전 10시에 카자흐스탄과의 경기를, 오후 8시에 필리핀과의 경기를 치른다. 필리핀은 미국에서 컬링했던 선수들이 대표팀에 포함돼 있어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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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이야기를 찾으면 하나의 심장이 뛰고, 스포츠의 감동적인 모습에 또 하나의 심장이 뛰는 사람. 철도부터 도로, 컬링, 럭비, 그리고 수많은 종목들... 과분한 것을 알면서도 현장의 즐거움을 알기에 양쪽 손에 모두 쥐고 싶어하는, 여전히 '라디오 스타'를 꿈꾸는 욕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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