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벨 에포크(Belle Époque)라 불리던 시대가 있다.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 대체 어떤 시대였기에 다른 시절과 달리 홀로 '아름답다'고 불렸을까.
한때 역사는 물질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우상향, 발전하고 진보한다는 믿음이 통용됐다. 물질문명은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외연적으로 급속 성장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류가 인지하는 세상을 저기 천체 바깥부터 미세한 입자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확장해 나갔다. 평범한 인간이 쓰고 누리는 도구 또한 개선되어 냉방과 난방이며 온갖 가사 노동, 심지어는 여가에 이르기까지 혁명이라 해도 좋을 변화를 마주했다.
유럽은 오래도록 전란 가운데 있었다. 수많은 도시국가, 언어와 인종으로 갈라진 민족국가가 대립하고 경쟁했다. 밀고 밀리며 화합하고 불화하던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다. 18세기 말엽에 이르러 올망졸망한 국가들의 판도를 뒤흔드는 인물이 등장하니 그가 바로 나폴레옹이다. 프랑스 황제에 오른 그는 유럽 대륙, 나아가 북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의 영향력을 확장시켰다. 수단은 전쟁이었다.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육군은 당대 최강이라 해도 틀리지 않은 전력으로 참여한 모든 전쟁을 승리로 장식했다.
▲미드나잇 인 파리포스터
디스테이션
지난 시대에 대한 동경 담은 낭만적 작품
일어난 것은 반드시 쇠한다. 유럽 전체의 지배자를 꿈꾸던 제왕적 통치자는 끝내 서쪽 바다 건너 섬나라와 동방의 추운 제국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나폴레옹의 시대 끝에서 유럽은 다시 수많은 국민국가로 갈라져 나름의 균형을 되찾았다. 힘의 균형이 깨어지면 국가가 살아남기 위해 명운을 건 총력전에 나서야 한단 걸 깨달은 이들은 그 균형으로부터 평화의 씨앗을 찾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 독일의 비스마르크, 프랑스의 탈레랑 등 외교를 통해 각국의 이해관계를 조율해 나간 이들의 노력으로 유럽은 100년의 평화를 맞이한다.
기술의 발전, 사상의 발달, 무엇보다 전란 없는 평화의 시대가 아름다움을 꽃피웠다. 살아남기 위해, 또 지배하기 위해 죽고 죽이는 일이 아닌 곳에 노력을 경주할 수 있는 시대, 그리하여 인간이 사상과 철학, 예술과 아름다움에 골몰한 시대가 바로 벨 에포크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벨 에포크에 대한 동경을 한껏 담은 낭만적 작품이다. 길 펜더(오웬 윌슨 분)는 꽤나 잘 나가는 할리우드 각본가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 아래 상업영화의 기틀이 되는 시나리오와 각색 작업에 매진해 제법 실력 있단 평가까지 듣게 되었다. 그러나 길은 제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 상업영화 각본가가 가진 명백한 한계, 시대를 관통하는 걸출한 작품을 빚지 못하고 관객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나 쓰는 상황이 해소되지 않는 갈증을 자아내는 탓이다. 그리하여 길은 각본가를 관두고 본래 꿈이었던 소설가로 전업하려 한다.
▲미드나잇 인 파리스틸컷
디스테이션
파리가 이보다 멋지게 나오는 영화가 있을까
길의 계획을 못마땅해 하는 이가 있다. 이녜즈(레이첼 맥아담스 분), 길의 약혹녀다. 낭만적 예술가를 꿈꾸는 이답게 파리에서 살고 싶다는 길과 달리 이녜즈는 미국 LA 말리부 해변에서의 삶이 마음에 든다. 길은 이녜즈와 예비 장인, 장모를 모시고 파리 여행을 떠나오는데, 예상과 달리 이곳에서의 시간 또한 스트레스가 될 뿐이다. 이녜즈와 그녀의 친구인 폴(마이클 쉰 분)의 취향이 저와 전혀 맞지 않는 탓이다.
영화는 길이 파리에서 겪은 놀랍고 짜릿한, 낭만적이며 아름다운 경험을 다룬다. 길은 함께 춤을 추러 나가자는 이녜즈와 폴의 제안을 거절하고 홀로 술을 마신다. 밤늦은 시각, 기분 좋게 취한 길은 호텔로 돌아가던 중 길을 잃고 거리의 어느 계단에 주저앉아 쉬다가 믿기 힘든 일을 겪는 것이다. 어디선가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오고 제 앞에 오래된 자동차가 멈춰 선다. 차에 탄 이들이 함께 놀자는 제안을 하고 그를 받아들여 차에 오르는 길, 그로부터 영화는 한 세기 전인 1920년대로 건너가는 것이다.
저 유명한 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와 젤다 부부, 어니스트 헤밍웨이, 가수 콜 포터가 있는 파티에서 길은 즐겁고 짜릿한 시간을 보낸다. 다음날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나타난 차를 타고 그 시대로 건너간 길은 이번엔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과 화가 파블로 피카소, 또 당대 예술가들을 현혹하는 매력적인 여인 아드리아나를 만난다.
▲미드나잇 인 파리스틸컷
디스테이션
낭만, 예술, 그리고 아름다움이 있는
아드리아나와 길은 통하는 구석이 많다. 길이 지난 시대와 작가들을 동경하듯, 아드리아나는 지난 시대의 아름다움, 정확히는 벨 에포크 시대를 동경한다. 길은 제가 사는 현시대로부터 1920년대로 건너갔던 것처럼 1920년대의 아드리아나와 함께 벨 에포크 시대로 나아간다.
이번엔 고풍스런 구식 자동차가 아닌 벨 에포크 시대의 마차를 타고서다. 19세기 술집엔 에드가 드가와 폴 고갱, 툴루즈 로트랙 등 당대의 명사들이 잔뜩 자리하고 있다. 온 시대를 가로질러 예술가에게 가장 행복한 시대를 사는 이들, 그러나 아드리아나와 길의 생각과 달리 그들은 또 저들이 살지 못한 과거를, 지난 시대를 동경한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도시 파리에서 또 익숙하면서도 낯선 시간으로 건너가며 전개된다. 미국 LA에서 활동하는 작가에게 파리는 제가 꿈꾸는 모든 것이 있는 도시인 것만 같다. 이 시대를 사는 각본가에게 1920년대는 낭만과 철학이 깃든 작품들이 태어난 시대인 것만 같다. 그러나 1920년대를 사는 이는 지난 시대인 벨 에포크를, 또 벨 에포크의 예술가들은 르네상스를 동경한다. 예술이, 아름다움이, 작가와 낭만이 있는 시대는 그렇다면 어디인가.
▲미드나잇 인 파리스틸컷디스테이션
태평성대와 천박한 시대의 사이에서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길이 처한 현실과 그가 꿈꾸는 낭만을 마주 댄다. 그 사이에서 속물적인 것과 낭만적인 것이 갈라지고 현실과 안주, 꿈과 타협이 나뉜다. 길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제가 꿈꾸고 동경하던 것의 허상을, 그럼에도 지키고 싶은 낭만을 깨닫는다. 잃어버린 것과 얻은 것이 슬며시 제 모습을 드러내는 이 영화의 결말은 예술과 아름다움, 낭만과 멋을 추구하는 이에게 더없이 만족스러운 감상을 허한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프랑스 파리의 공간을 멋스럽게 부각하는 작품이다. 지금 파리로 떠나서도 바로 마주할 수 있는 관광 명소들이 영화 가운데 스치듯 지나가고, 그로부터 파리란 공간을 더욱 낭만적으로 여기도록 한다. 지난 시대의 예술에 관심 있는 이에겐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을 살아 움직이는 인물로 마주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 영화가 나오지 수년이 흘러서까지 꾸준히 회자되고, 한국에서도 재개봉에 이른 건 이 같은 영향일 테다.
영화는 낯선 도시, 오랫동안 동경하던 시절로 건너가 도리어 현재의 삶을 주목하도록 이끈다. 1920년대와 벨 에포크, 르네상스와 지금 이 시대가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돌아보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누군가는 태평성대라고, 또 누군가는 천박하고 비열한 때라고 말할 수도 있을 일이다. 번영과 평화 가운데 비겁과 저열함이 뒤섞여 있는 오늘을 우리는 어떻게 빚어 가려는가. <미드나잇 인 파리>는 2025년 한국과 그렇게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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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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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란 뭘까? 낯선 여인과 파리 거닐며 찾은 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