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벌레>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03.
"정말 마지막이야. 같이 안 할 거야? 네가 아직 어려서 뭘 잘 모르니까 그러는 거야."
파업을 주도하는 윤희가 찾아와 설득하는 장면과 사측인 한 팀장(김준범 분)이 내민 하청 계약직 전환 동의서에 이름 석 자를 사인하는 장면은 모두 정확히 하나의 딜레마 사이에 위치한다. 노조가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하청 계약직으로 전환된다는 의미가 당장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도 알지 못하는 어린 노동자에게 어른들의 사정이 맞부딪히는 시간은 그저 두려움만 남길 뿐이다. 자신의 편이 되어달라고 외칠 뿐, 어느 누구도 현재의 상황이나 마주하게 될 내일에 대해 설명해 주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제 영화는 하나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집을 다시 비춘다. 파리가 날아다니고, 짙은 곰팡이로 인해 벽지가 뜯긴 천장 모서리가 그곳에 있다. 손녀가 일터에 나가 있는 동안 곰팡이가 떠다니는 떡국을 홀로 챙겨 먹는 할머니의 모습도 함께다.
정규직, 계약직의 문제를 떠나 일을 계속해야만 하는 하나의 사정이 공장 바깥의 장면에 위치한다면, 어떤 비참한 대우를 받더라도 그만둘 수 없는 참담한 현실은 공장 내부의 화면 속에 담긴다. 과열된 기계를 다루는 작업을 하는 동안 수도 없이 데이며 생긴 화상 자국은 그중 하나다. 파업에 참여하는 인원 대신 현장 일을 돕기 위해 내려왔다는 사무 정규직 직원들은 같은 자리에 서자마자 어떻게 이런 일을 자신에게 시키냐며 불만을 드러낸다. 하나는 그동안 그 일을 왜 참고 버텨내야만 했을까. 자신의 팔등이 타들어 가는 동안에 아무런 불평 하나 하지 못하고. 이유는 하나다. 내일을 위한 월급.
04.
파업에 참여했던 노조가 사측과의 협상에 성공하고 공장으로 돌아오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진다. 그동안 회사의 말만 믿고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채로 열심히 일만 했던 직원들은 이제 하청업체 소속으로 전환된 상태로 회사에서 쫓겨날 처지가 된다. 동의서에 사인을 마친 하나도 마찬가지다. 되려 파업에 참여한 이들만이 회사에 남아 계속 일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쥐꼬리만 한 월급만 제때 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노조에도 가입하지 않고, 파업 대신 출근을 선택했던 것인데 이제 더 이상 직원이 아니라는 냉혹한 대답만이 돌아온다.
우습기도 하다. 어떤 소용돌이에도 휩쓸리지 않길 바라며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사측과 노동자 사이에서 한번, 공장 노동자와 사무 노동자 사이에서 한번, 마지막으로 노조에 가입된 노동자와 가입되지 않은 노동자 사이에서까지 갈등을 또 한번 겪는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파업에 나선 어른들의 사정을 지나 회사로 출근한 일? 계약직 전환 동의서 앞에서 팀장의 눈치에 못 이겨 질문 하나 하지 못하고 사인을 했던 일? 그것도 아니라면 정대리(김효진 분)처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 못했던 일이었을까.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자리에도 할머니와 하나가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사정은 놓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영화 <벌레> 스틸컷인디그라운드
05.
후반부에 이르러 감독은 일터를 잃은 노동자의 모습을 벌레에 빗대어 표현한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로 주어진 상황 속에 자신을 갈아 넣고 태우는 동안 새겨지는 상처 위에서 비유의 이미지 하나가 떠오른다. 목소리를 높여보지만 어느 하나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실상과 망가지고 부서지도록 뛰어보지만 뒷받침되지 못하는 제도와 현실의 냉혹함 앞에서 무기력해지고 마는 수많은 이들의 표상이다. 하찮고 볼품이 없어서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천대받고 쫓겨나기 쉽기에 형용되는 자리다.
영화의 처음에서 하나와 할머니의 모습이 따뜻한 색감으로 채워지는 것을 봤다. 하청 계약직 동의서와 노조의 파업 사이에 서 있을 때 두 사람의 집으로 푸르고 시린 빛이 쏟아져 내렸다. 회사에서 쫓겨난 다음, 지금은 어떤 장면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 언젠가 집으로 돌아와 제 방에서 홀로 터뜨리던 울음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할매 내 회사에서 잘렸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우리 이제 우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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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