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 3성에서 많이 쓰이는 '챵량'(敞亮)이라는 중국어 단어를 아시나요. '탁 트이다' 내지는 '시원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를 누구보다도 많이 쓰는, 그리고 그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 하얼빈에서 8년 만에 동계 아시안 게임이 열립니다. 하얼빈 현장의 이야기를 탁 트일 수 있도록 시원하게 담겠습니다.[기자말]
지난 9일은 한국 쇼트트랙에 '개운치 못한' 마무리를 했던 날이었다.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마지막 날 남녀 모두 계주에서 '노 메달'에 그치며 아쉬움을 삼켜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여자 계주 마지막 바퀴 넘어진 김길리에게는 아쉬움이 더욱 컸을 터. 김길리는 1500m 개인전과 혼성 계주에서 금메달을, 500m와 1000m에서 은메달을 따내는 등 아시안 게임에서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지만, 계주에서의 죄책감 탓에 여러 차례 눈물을 보이는 등 아쉬웠던 마지막을 곱씹었다.

9일 모든 경기가 끝난 후 만난 대표팀 선수들은 '좋은 경험이었음'을 이야기했다. '계주 마지막 주자'의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최민정은 "마음을 너무 잘 알아서 무어라 말하기 어렵지만, 미안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다"며 감쌌고, 김길리는 "더 중요한 무대에서 실수 없이 경기하겠다"며 다짐했다.

"길리, 미안할 필요 없어"

 9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가 끝난 후 최민정이 여자 1000m에서 따낸 금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9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가 끝난 후 최민정이 여자 1000m에서 따낸 금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박장식

최민정과 김길리는 소속팀에서부터 '룸메이트'를 할 정도로 절친한 선후배 사이다. 특히 대표팀에서도 최민정 선수가 '계주 마지막 주자' 자리를 오랫동안 차지했을 정도로 '에이스' 노릇을 했고, 김길리 역시 최민정의 뒤를 이어 그 자리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하지만 9일 열린 여자 3000m 계주에서 막판 스퍼트를 내던 도중 마지막 바퀴에서 뒤따라오던 중국을 견제하다 넘어지면서 아쉬운 결과가 나온 김길리. 김길리는 '언니들과 함께 세리머니를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자꾸만 눈물을 흘렸다. 인터뷰 도중에도 세 번 넘게 자리를 비웠을 정도였다.

최민정은 "사실 길리 선수 마음이 누구보다도 이해가 간다"면서 "나도 어릴 때부터 마지막 주자를 많이 해왔기에 부담이 얼마나 큰지 안다. 내가 다 안타깝고 속상했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말로 위로하더라도 될 것이 아니다. (길리의) 마음을 잘 알아서 무어라 말을 못 하겠다"며 "(길리가)이렇게 힘든 만큼 성장하리라 믿는다. 앞으로 쇼트트랙을 이끌어 나갈 선수인 만큼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라 했다.

김길리는 연신 동료 선수들에게 미안함을 드러냈다. 이를 두고 최민정은 "선배들에게 배운 것이 있다. 계주는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라며 "잘한 건 모두가 잘한 것이고, 못했다면 모두가 못 한 것이니 미안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사흘 간의 이번 쇼트트랙 경기는 어땠을까. 최민정은 "중국 선수들이 계주에서의 조직력이 워낙 좋고, 속도나 기술력도 좋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을 많이 했다"며 "한국 선수들이 보완해야 할 점을 많이 알았던 이번 대회였다"라고 돌아봤다.

"응원 글, 격려 너무 감사해... 올림픽에서 실수 없이 하겠다"

 9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가 끝난 후 김길리가 인터뷰에 나서고 있다.
9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가 끝난 후 김길리가 인터뷰에 나서고 있다.박장식

대표팀 막내이지만, 그 어떤 선수보다도 강인했던 김길리. 하지만 이번 아쉬움은 너무 컸다. 겨우 눈물을 참고 믹스드 존으로 들어왔지만, 바로 앞 TV에서 여자 계주 시상식이 나오자 김길리는 '못 보겠다'며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김길리는 "마지막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서 언니들과 같이 세레머니 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마지막에 넘어지는 바람에 다 같이 시상대 위에 못 올라가서 너무 아쉽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앞으로 큰 대회가 남았다. 이번 아시안 게임이 내가 더 성장해 갈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계주 마지막 상황을 돌아봤던 김길리는 "우리가 앞에 있을 때 상황을 모두 고려해서 경기에 임했지만, 1 대 1 상황 내가 더욱 부담이 컸던 것 같다"며 "마지막 실수로 부딪히면서 넘어진 것이 아쉽고 속상했다"고 했다.

이어 "민정 언니와 함께 레이스를 하니까 더욱 든든하고 마음 편하게 레이스에 임했다"며 "언니들 모두가 위로해 줬다. 특히 민정 언니는 '나도 마지막 주자를 많이 해 봐서 안다, 괜찮다"라고 말해줬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이번 경기하면서 많은 분들이 응원과 격려를 많이 해주셨다. 힘들 때마다 응원글을 보면서 힘 많이 냈다. 감사하다"며 "이번 아시안 게임은 모든 과정에서 내가 많이 배웠다. 앞으로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 무대에서 실수 없도록 해서, 더욱 단단하게 경기를 펼치겠다"며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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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이야기를 찾으면 하나의 심장이 뛰고, 스포츠의 감동적인 모습에 또 하나의 심장이 뛰는 사람. 철도부터 도로, 컬링, 럭비, 그리고 수많은 종목들... 과분한 것을 알면서도 현장의 즐거움을 알기에 양쪽 손에 모두 쥐고 싶어하는, 여전히 '라디오 스타'를 꿈꾸는 욕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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