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에 등장한 가상국가... 누가 봐도 남북한인데, 대체 왜?

[김성호의 씨네만세 946] 넷플릭스 <지정생존자> 시즌2

훈치우는 같은 역사를 가졌으나 분단돼 두 나라가 되어 지난 반 세기 동안 체제경쟁을 이어왔다. 친미 성향의 민주국가인 서훈치우엔 5만 명에 이르는 미군이 파병돼 주둔하고 있다. 이들과 대치하는 동훈치우는 핵무기 개발을 한다는 의심을 받는 독재국가로 미국에 의해 경제제재를 받고 있다. 수시로 대륙간탄도탄 시험발사를 하며 전란의 위기감을 조성하는 동훈치우는 경제제재 탓에 가난을 벗어날 길이 막막하다.

두 나라 사이엔 육상 비무장지대(DMZ)가 펼쳐져 있다. 양측이 수십만 군대를 주둔시켜 일촉즉발의 군사적 긴장이 팽배하다. 서훈치우 지도자는 국민투표에 의해 선출된 여성 정치인으로 미국은 그녀를 합리적인 인물이라 평가한다. 반면 동훈치우는 반미 일변도의 과격한 인물이 권력을 세습하고 있다.

훈치우는 가상의 국가다. 넷플릭스 오리지날 시리즈로 제작된 미국 드라마 <지정생존자> 시즌2 15화에 인상적으로 등장하는 에피소드로, 두 나라의 대립 속에서 불거진 사건을 해결하려는 미국 대통령의 이야기가 중심 줄기를 이룬다. 말만 한국이 아닌 훈치우일 뿐이지, 양국 지도자의 이름부터 이들을 둘러싼 상황까지가 그대로 한반도 위 두 나라를 연상시킨다. 바로 남북한이다.

지정생존자 시즌2 포스터
지정생존자 시즌2포스터넷플릭스

실패한 시즌2일지라도

<지정생존자>는 2016년 처음 공개된 뒤 그 파격적 설정의 참신함이 높은 평가를 받으며 확장 제작이 이뤄진 명작 드라마다. 한국에서도 대통령 탄핵과 총리며 경제부총리의 권한대행이 이뤄질 때마다 회자되어 제법 너른 시청층을 확보했다. 시즌1의 인기 탓에 2017년 종영 뒤 곧장 시즌2 제작에 돌입했을 만큼 넷플릭스 또한 기대를 가졌다.

아쉽게도 시즌2는 전작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몰락했다. 제작비는 더 커졌으나 작품은 참담하게 실패한 두 번째 시즌을 두고 평자들은 작가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교체되거나 비중이 늘어난 작가들의 역량이 전작에 미치지 못한단 평가를 받는 탓이다. 여기에 더하여 전작의 성공으로 후속작을 급히 준비하느라 준비기간이 부족했던 점 등도 실패의 요인으로 꼽힌다. 무튼 시즌2는 성공한 콘텐츠 속편이 해선 안 될 선택이 무엇인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실패한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시리즈 가운데서도 이야기해볼 만한 지점이 있다. 앞서 적은 것과 같이 훈치우, 실존하는 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를 그 국명을 바꾸어 가상의 것으로 묘사한 선택이 그것이다. 세계 최강대국으로 세계 여러 나라와 긴밀히 얽힐 수밖에 없는 미국 정책결정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수시로 등장하는 시리즈다. 프랑스와 독일, 영국, 멕시코, 일본, 러시아, 우크라이나, 튀르키예, 이란 등 실존하는 여러 나라가 그대로 등장해 각 나라의 민감할 수 있는 정치적 상황을 드라마의 소재로 풀어낸다.

그런데 일부 나라의 경우엔 실제 국가가 아닌 가상의 이름으로써 언급된다. 누가 보아도 남북한을 떠올릴 밖에 없는 훈치우가 그렇고, 미국과 첨예한 갈등을 빚는 독재국가 쿠나미가 또 그러하다. 특히 독재 왕정국가로 미국과 갈등을 빚어온 제3세계 여러 국가의 모델을 뒤섞은 쿠나미와 달리, 훈치우는 너무나 명확히 한반도 두 나라의 모습을 명확히 떠올리게 하고 있단 점에서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미국, 또 할리우드의 관행이 국가는 물론, 실존인물과 기업명에 이르기까지 최대한 창작의 자유를 허락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굳이 실명을 쓰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관심이 간다. 실재하는 국가를 명확히 지목하지 않음으로써 얻게 되는 효과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지정생존자 시즌2 캠프데이비드에서 미국 대통령과 국무장관이 동서 훈치우 지도자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지정생존자 시즌2캠프데이비드에서 미국 대통령과 국무장관이 동서 훈치우 지도자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넷플릭스

한국 연상케 하는 가상 국가 훈치우

훈치우의 이야기는 15번째 에피소드와 16번째 에피소드, 모두 두 편에 걸쳐 등장한다. 일촉즉발의 군사적 긴장이 감도는 훈치우의 상황 가운데 톰 커크먼 대통령(키퍼 서덜랜드 분)은 양국 정상을 캠프 데이비드로 불러들여 회담을 진행한다. 마치 과거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중재 아래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와 야셰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만났던 것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물론 실제 북한은 미국과 국교가 단절되어 있지만 말이다.

협상 테이블에서까지 팽팽히 대립하던 동서 훈치우 지도자들은 미국의 중재아래 차츰 이견을 좁혀간다. 군비확장 대신 아이언돔과 유사한 방위체계로 국방력을 재편하는 안을 제시한 커크먼은 동훈치우에 그에 따르는 경제적, 군사적 비용을 서훈치우가 상당부분 부담할 것이라 꼬드긴다. 미국의 군사적 지원에 연연할 밖에 없는 서훈치우는 그를 목줄로 압박하는 미국의 조건을 수용할 밖에 없다. 대신 동훈치우의 핵개발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고 국제기구의 핵사찰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달린다.

협상이 곡절을 거쳐 타결될 무렵이 되었을 때 새로운 문제 하나가 불거진다. 동훈치우 위원장의 아들 김준이 미국으로 망명을 시도한 때문이다. 민감한 사안을 망칠 우려가 있음에도 인도적 차원에서 그의 망명을 받아들인 커크먼이지만 김훈의 애인인 정민까지 동훈치우를 탈출하며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흘러간다.

제작자들은 대체 왜 다른 에피소드들과 달리 남북한을 훈치우로 표현했을까. 튀르키예와 러시아, 우크라이나, 멕시코, 영국, 이란 등 여러 에피소드에 걸쳐 다른 국가가 민감하고 불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묘사가 많은 작품이 아닌가. 유독 한국의 사례만 실명으로 표현하지 못한 이유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지정생존자 시즌2 북한 국가원수를 연상케 하는 동훈치우 김경 의장.
지정생존자 시즌2북한 국가원수를 연상케 하는 동훈치우 김경 의장.넷플릭스

누구나 아는 나라 이름, 그럼에도 바꾼 이유는

다른 여러 나라에 대한 묘사와 훈치우에 대한 묘사가 근본적 차이를 보이는 건 바로 이것이다. 실명으로 언급된 다른 나라의 경우엔 특정 인물, 이를테면 권력자며 외교관, 정치인과 사업가 등이 문제를 일으키거나 당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실제 지정학적, 정치외교적 사실관계를 해석한 내용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이란이 문제가 있을 때마다 걸프만을 봉쇄해 이득을 챙긴다거나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려는 움직임을 외교적으로 활용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반면 훈치우의 경우엔 전면적이며 전격적으로 국가 자체의 문제가 부정적으로 등장한다. 핵개발과 군비확장, 군사적 긴장 아래 자국민을 두는 정책, 미군에 국방을 의존하며 주체적이지 못한 선택을 하는 모습, 세습 독재자가 군림하며 민주화를 말살하는 상황 등이 모두 그러하다. 말하자면 일시적이고 개별적 상황이 아닌 훈치우라는 국가 전체를 비정상적이거나 뒤떨어진 모습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누가 보아도 남북한을 연상케 하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지정생존자> 제작진은 이를 가상의 국가로 선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부정적 묘사라도 창작의 자유가 앞선다는 할리우드의 무책임한 통례와 다른 선택이다.

아쉬운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선택은 존중받을 지점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한국의 흔한 콘텐츠가 한국보다 경제적, 문화적 후진국이라 여겨지는 국가들을 묘사하는 폭력적 방식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사실상 미국이 부당하게 일으킨 것이 확인된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가해국임에도 거리낌 없이 베트남 참전 군인들의 무용담을 풀어놓는 여러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류승완의 <밀수> 속 등장인물이 베트콩을 여럿 죽였단 이야기를 자랑스레 늘어놓는다거나, 베트남 넷플릭스에서 퇴출된 드라마 <작은 아씨들> 속 등장인물이 베트남에서 무공을 세운 것으로 표현되고 한국군 한 명이 베트콩 스무 명을 죽였다는 등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교환비를 자랑스레 설명하는 묘사 등이 또한 그렇다.

지정생존자 시즌2 박근혜와 문재인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 듯 보이는 서훈치우 한 대통령.
지정생존자 시즌2박근혜와 문재인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 듯 보이는 서훈치우 한 대통령.넷플릭스

한국콘텐츠 속 타국 묘사 돌아보게 한다

어디 베트남뿐인가. 실제 사실로부터 상당부분 영감을 받아 제작한 <수리남> 또한 특정국가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점이 논란이 돼 현지는 물론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제목을 < Narcos-Saints >로 바꾸어 방영했다. 수리남에선 아예 장관이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천명했고 중남미 일대에선 한인사회에 대한 부정적 여론확산과 안전문제 우려가 제기돼 대사관 차원의 공식대응까지 있었을 정도다.

홍원찬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같은 영화의 경우엔 태국을 아예 범죄가 난립하고 심각한 부패로 치안이 바로서지 않는 모습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국제사회에서도 안전국가로 평가될 만큼 치안이 잘 관리되는 국가인 태국임에도 영화는 상상 이상으로 경찰력을 부패하고 무능하게 그린다. 인신매매와 마약 등의 범죄 또한 일상적인 것으로 묘사한다. 이는 실제와도 동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그 근거 역시 박약한 수준이다.

이처럼 한국에서 제작된 많은 작품이 동남아나 아프리카, 중남미 등 상대적 빈국을 사실 이상으로, 때로는 놀라울 만큼 사실을 무시한 채 무참히 묘사하는 경우가 잦다. 표현의 자유가 중시되는 할리우드 작품에 비해도 더욱 심한 수준임에도 이에 경각심을 갖는 태도를 얼마 찾아볼 수 없단 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반면 한국 평단과 관객들이 한국에 대한 묘사가 약간이라도 부정적인 외국 작품에 대해 극도로 민감하고 불편한 반응을 쏟아낸 수많은 사례를 생각하자면 이것이야말로 낯부끄러운 내로남불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드는 것이다. 극중 인물이 욕설을 섞어 '김치 냄새가 난다'는 대사를 했다는 이유로 오스카 수상작에 대한 보이콧까지 일었던 <버드맨> 논란이 그 대표격이 아닌가.

<지정생존자> 시즌2 속 훈치우는 타국에 대한 부정적 묘사에 앞서 어떤 수준의 고민이 이뤄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시리즈 내내 이어진 각본의 실패로 보잘 것 없는 작품이라 평가할 밖에 없는 드라마임에도 모든 면에서 허접하다 할 수 없는 건 이러한 고민이 엿보이는 몇 개의 지점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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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