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 3성에서 많이 쓰이는 '챵량'(敞亮)이라는 중국어 단어를 아시나요. '탁 트이다' 내지는 '시원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를 누구보다도 많이 쓰는, 그리고 그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 하얼빈에서 8년 만에 동계 아시안 게임이 열립니다. 하얼빈 현장의 이야기를 탁 트일 수 있도록 시원하게 담겠습니다.[기자말]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핑팡구컬링관 내부의 모습.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핑팡구컬링관 내부의 모습.박장식

믹스더블 컬링에서 남녀 4인조 컬링 대표팀이 성공적인 등판을 마쳤습니다. 남녀 대표팀이 대회 첫날부터 앞다투어 2연승을 했고, 여자 대표팀은 한일전과 태국전을 연달아 승리하며 3연승을 달리고 있습니다.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17년 만의 컬링 종목 금메달을 노리는 남자 대표팀 의성군청(스킵 이재범), 올림픽에 앞서 '아시아 최강'을 증명하고자 하는 여자 대표팀 경기도청(스킵 김은지)의 기세도 대단합니다.

컬링 경기가 열리고 있는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핑팡구컬링관은 꽤나 특이한 건물입니다. 원래 쓰임이 무려 '초등학교 부설 빙상장'이기 때문이죠. 중국의 '꿈나무 아이스하키' 선수를 만드는 이 빙상장은 아시아 전체로 보더라도 독보적인 시설입니다. 그렇기에 다른 컬링 경기장과 차별화되는 특징도 많습니다.

아이스 상태 좋지만... 낮은 습도 탓에 '변화무쌍'

 핑팡구컬링관 내부의 온도와 습도. 외기 온도와 습도가 꽤나 낮은 경기장입니다. 온 아이스 온도는 영하 5도에서 6도 사이를 오갑니다.
핑팡구컬링관 내부의 온도와 습도. 외기 온도와 습도가 꽤나 낮은 경기장입니다. 온 아이스 온도는 영하 5도에서 6도 사이를 오갑니다.박장식

가장 중요한 컬링 경기장의 현황은 어떨까요. 경기장 아이스 위는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얼음판 위를 총괄하는 치프 아이스 테크니션은 독일의 프리츠 조가 맡고 있습니다. 과거 패럴림픽 빙질을 관리하기도 했던 것으로도 알려진 프리츠 조가 핑팡구컬링관의 아이스를 총괄 관리하는 만큼, 빙질은 나쁘지 않습니다.

컬링장 내부 온도는 10도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관계자석을 포함한 관중석 자체가 400석이 안 될 정도로 그리 많지 않다 보니 관중의 열기 때문에 아이스에 변수가 생길 걱정도 덜 하고요. 다만 선수들이 어려워하는 점은 엔드 마다 아이스 변화가 심한 점과 빙판의 '얼음 상태'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하얼빈은 겨울 기온이 영하 10도에서 30도를 오가는, 매우 추운 도시입니다. 공기 중에 수분을 머금는 농도 역시 매우 낮습니다. 그런 탓에 눈도 파우더와 비슷한 건설(乾雪), 이른바 '마른 눈'이 내립니다. 난방을 가동하면 실내가 매우 건조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될 정도기도 하고요.

핑팡구컬링관 역시 마찬가지. 내부의 습도는 30% 내외에 불과합니다. 최민석 의정부 컬링경기장 치프 아이스 테크니션은 "습도가 낮으면 컬링 경기장의 얼음판 위에 '페블'을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설명합니다. 페블은 컬링장 얼음에만 있는 독특한 구성요소로, 아이스 위에 뿌리는 오돌토돌한 얼음 방울을 의미합니다.

페블은 컬링 경기장의 얼음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페블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이스를 평평하게 긁어낸 뒤, 샤워기와 비슷한 장치로 물을 뿌려 아이스 위에 고르게 퍼지도록 합니다.

페블이 왜 중요할까요. 페블이 잘 뿌려져 있어야 스톤이 휘어져 들어가는, 이른바 '컬'이 잘 먹습니다. 비교적 좋은 경기장에서 훈련과 경기를 자주, 많이 치르는 대한민국 선수들에게 유리한 요소이죠. 특히 페블이 있어야 얼음판을 닦는, 이른바 '스위핑'도 원활히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핑팡구컬링관의 경우 아이스메이커들이 좋은 컨디션으로 경기장을 만들지만, 습도가 낮은 탓에 두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경기장이 건조하다면 뿌린 물 중 적잖은 양이 공중에서 증발한다는 것입니다. 공중에서 많은 물이 증발한다면 페블로 가는 물방울이 적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로는 페블 역시 표면적이 넓기 때문에, 습도가 낮다면 스위핑 등의 이유로 페블이 녹으면 바로 수증기가 되는, 즉 페블을 구성하는 물이 증발할 확률이 높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하얼빈이 가장 추웠던 지난 8일까지 경기를 치른 믹스더블 컬링 대표팀은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전반과 다른 아이스 상황에 애를 먹기도 했었습니다.

하얼빈은 이번 주까지 영하 25도를 넘나드는 맹추위를 기록할 것이라는 예보도 나옵니다. 여자 대표팀 선수들 역시 '얼음이 잘 뻗는다'라며 빙질에 대해 평하기도 했고요.

다행히도 남자 대표팀은 아이스 품질에 대해 "우리에게 딱 맞는 아이스"라며 칭찬한 데다, 그에 맞게 연승을 달리고 있는 만큼 걱정은 조금 덜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결국 기후에 따른 아이스 컨디션을 고려해 좋은 전략을 펼치는 것이 승리의 키 포인트인 셈입니다.

특별한 핑팡구컬링장

 하얼빈 핑팡구컬링관의 아이스메이커들이 아이스 위에 페블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하얼빈 핑팡구컬링관의 아이스메이커들이 아이스 위에 페블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박장식

핑팡구컬링관만의 특별한 점도 있습니다. 바로 초등학교 체육관을 컬링장으로 변모시킨 것이죠. 관중석 규모는 아이스하키·쇼트트랙 등을 위한 경기장보다 작지만, 정규 규모의 아이스링크가 마련된 어엿한 빙상장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핑팡구컬링장이 위치한 하얼빈 난청제일초등학교는 하얼빈 도심에서 40분 거리, 꽤 먼 거리에 있습니다. 도심에서 가까운 초등학교, 아니 고등학교나 대학교 체육관도 충분히 있을 텐데, 여기서 컬링 경기를 여는 이유, 아니 애초에 이런 곳에 빙상장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핑팡신구 일대는 하얼빈 도심과의 거리가 꽤나 먼 축에 속하지만, 교통이 편리하고 물가가 비교적 저렴합니다. 그래서 소득이 높지 않은 농촌 출신 노동자 자녀도 많습니다. '중국청년보'에 따르면, 그런 아이들에게 성공의 기회를 하나라도 더 주기 위해 학교 차원에서 고심한 것이 아이스하키였습니다.

그래서 핑팡구컬링장은 중국은 물론 아시아에도 몇 없는 '초등학교 부설 빙상장'이 되었습니다. 난청제일초등학교는 260명이 넘는 아이스하키 선수들을 배출한 아이스하키 명문 학교입니다. 이른바 '운동부' 뿐만 아니라, 일반 학생들도 일주일에 한 시간씩 아이스하키 수업을 듣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방학 기간인 지금은 초등학교를 통째로 경기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선수 라커룸을 비롯해 미디어를 위한 작업 공간, 조직위원회 사무실을 비롯한 지원 시설 등은 초등학교 교실을 쓰고 있고, 기자회견장은 독특하게도 초등학교 컴퓨터실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핑팡구컬링관의 이야기는 한국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몇몇 지방 학교들이 학교를 살리기 위해 야구부를 창단해 학생들을 수급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핑팡구컬링관은 아시안 게임이라는 공간을 잠시나마 '동심'으로 잠시 돌아갈 수 있게 해 준 공간입니다.어린 학생들이 경기장을 찾는 선수와 관계자를 위해 그린 귀여운 그림과 함께할 수 있는, 특별한 컬링장에서의 경기가 오는 14일까지 이어집니다.

 핑팡구컬링관의 전경. 오른쪽에 보이는 붉은 건물이 컬링관이고,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난청제일초등학교 건물이다.
핑팡구컬링관의 전경. 오른쪽에 보이는 붉은 건물이 컬링관이고,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난청제일초등학교 건물이다.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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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이야기를 찾으면 하나의 심장이 뛰고, 스포츠의 감동적인 모습에 또 하나의 심장이 뛰는 사람. 철도부터 도로, 컬링, 럭비, 그리고 수많은 종목들... 과분한 것을 알면서도 현장의 즐거움을 알기에 양쪽 손에 모두 쥐고 싶어하는, 여전히 '라디오 스타'를 꿈꾸는 욕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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