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시집살이의 트라우마에 갇혀 세상을 등지고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버린 아내, 가족을 위하여 열심히 살았지만 아내의 상처는 미처 보듬지못했던 남편, 한 젊은 부부의 사연이 시청자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6일 방송된 JTBC 부부솔루션 <이혼숙려캠프>에서는 8기의 두번째 출연자인 '열아홉부부'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자발적 은둔형 외톨이 택한 아내
▲방송 장면 갈무리JTBC
열아홉 부부(김기호-김나운)는 '자발적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가며 모든 사회적 관계를 단절하고 남편에게 의존하는 아내로 인하여 갈등을 빚었다. 만사가 귀찮다는 아내는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사회생활에도 가사에도 무관심했다. 일하는 남편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며 시비를 거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여길 만큼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아내에게도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다. 사실 이 부부는 한 차례 이혼했다가 재결합한 부부였다. 아내는 과거 시집살이를 하면서 시부모와 갈등에 시달리며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시아버지는 주사가 심하고 며느리에게 상습적인 폭력까지 휘둘렀다. 시어머니는 사이비 종교에 빠져 아내에게 가입을 강요했다고 한다. 심지어 부부는 시부모의 반대로 결혼식까지 뒤로 미뤄야 했다.
시부모의 거듭된 도를 넘은 만행을 참다못한 아내는 "그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니면 내가 죽을 것 같았다"며 이혼을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남편 역시 "부모님이 독불장군이었다. 제가 아내와 부모님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못 했다"고 인정했다.
아내는 이혼 이후 아이들이 보고 싶은 마음에 오랜만에 시댁을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던 상처를 고백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내가 울분을 터뜨리는 동안, 남편은 한마디 변명도 하지 못하고 묵묵히 듣기만 했다.
결국 아내는 아이들에 대한 걱정 때문에 이혼한 남편과 1년 만에 어렵게 재결합을 결정했다. 하지만 시부모의 막장 행태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고, 남편 역시 중재 역할을 하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아내가 남편의 사촌 동생으로부터 '너 때문'이라며 비난의 막말을 듣는 사건도 있었다.
결혼의 상처
험난한 결혼생활을 거치며 겪은 상처들은, 아내를 지금의 폐쇄적이고 감정 기복이 심한 모습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현재 아내는 남편과 두 번째 이혼을 고민 중이었다.
순해 보이던 남편에게도 숨겨진 문제가 있었다. 아내가 힘들 때 보호해 주는 데는 무심하던 남편은, 정작 아내와 심하게 다툴 때는 홧김에 자해까지 저지를 만큼 감춰진 폭력성을 드러냈다. 또한 남편은 아내와 언쟁을 벌이다가 돌연 발길질을 하며 장난이라기에는 지나친 행동을 저질렀다. 정색한 서장훈은 "밖에서는 못하면서 왜 아내한테 저러나. 제일 만만하고 약한 사람에게 폭력을 쓰는 게 남자인가?"라며 강하게 질타했다.
한편 아내의 이해할 수 없는 기행도 계속됐다. 아내는 극심한 '월경전증후군(PMS)'에 시달리고 있었고, 이로 인하고 감정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였다. 아내는 예민해질 때마다 남편에게 히스테리를 부렸고 심지어 '죽어서 네 엄마한테 가라'는 막말을 문자로 보내기도 했다.
배달업을 하는 남편은 오토바이를 몰며 근무 중에도 때와 장소를 가라지는 아내의 무한 연락 때문에 이미 사고가 벌어진 경우도 두 번이나 있었다. 아내는 남편의 직장동료와 주변인들과도 사소한 문제로 갈등을 일으켰고, 남편이 있는 배달대행 단톡방에 배달 기사들을 비하하는 욕설을 올리기도 했다고. 곤란해진 남편에게 정작 아내는 박장대소하며 "남편이 골탕먹는 게 즐겁다"는 철없는 반응을 보였다.
아내의 선을 넘은 무책임한 행동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의 휴대전화를 몰래 열어 외부에 공개된 프로필 메시지에 남편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문구로 바꿔놓는 장난을 상습적으로 저질렀다. 심지어 본인의 휴대전화 프로필에도 '사람을 죽이고 교도소에 갈 것'이라는 문구를 적어놓거나 시어머니의 유골함 사진을 배경 화면으로 올려놓으며 보는 이들을 경악하게 했다.
서장훈은 "아내가 너무 어릴 때 결혼했고 시댁과의 갈등을 겪으면서 단단한 어른이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내는 39살이지만 아직도 방황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하며 변화의 필요성을 당부했다.
다음날 부부는 정신 상담 시간을 가졌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던 아내는, 남편에게 '이상적인 아버지상'을 기대하고 있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어린아이 같은 장난을 치면서도 "보통 딸에게 아버지가 하듯이 자상하게 받아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전문의는 아내가 친아버지와 시아버지의 모습을 남편에게 투사(자신의 감정, 욕구, 불만은 다른 대상이나 사람에게 옮겨놓는 것)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아내가 남편을 괴롭히는 것은 과거 시아버지에게 받은 상처에 대한 복수심도 반영된 모습이라는 것.
전문의는 아내에게 "이제는 어린 시절의 마음을 탈피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남편은 시아버지와 다르다. 그런데 아내는 남편을 살살 긁어서 시아버지와 같은 행동을 하게 한다"고 분석했다.
시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
알고 보니 아내가 은둔형 외톨이가 된 이유도 바로 시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남편은 이사하고 시댁으로부터 독립한 이후부터 아내가 밖에 나가지 않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부부의 집은 시댁과 불과 5분 거리에 위치해있었고, 아내는 혹시라도 원 수같은 시아버지나 그 지인들과 마주칠까 봐 두려움 때문에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또한 아내는 이전에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경계선 성격장애' 진단을 받은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런 증상을 나타내는 이들은 충동적인 정서와 타인에 대한 변화무쌍한 감정 기복이 특징이다. 아내는 전문적인 의사의 처방이 아니라 본인이 독학하여 배운 지식으로 자기 멋대로 약물 처방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하지만 전문의는 "아내는 경계선 성격장애로 진단할 만큼 증상이 도드라지지는 않는다. 그런 성향은 있지만 장애라고 할 정도로 증상이 저명하지는 않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시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는 아내만이 아니라 남편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남편은 아버지와 달리 가정을 지키기 위하여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정작 아내와 가족들에게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인정받기를 포기했다고 담담히 이야기하는 남편에게 전문의는 "남편은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 인정을 포기했다는 것은 그만큼 인정을 기다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라며 따뜻하게 위로를 전하자 남편은 눈시울을 붉혔다.
전문의는 "부부는 사실 두 사람만 보면 이혼해야 할 만한 위기가 크지 않다. 문제는 시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분석하며 무엇보다 아내에게 '남편과 시아버지를 정서적으로 구분하는 연습'을 솔루션으로 제시했다.
이어 부부들은 연극을 통한 심리치료를 받았다. 배우들이 재현해 낸 자신의 낯부끄러운 본모습을 지켜보며 '거울치료'를 당한 부부들은, 민망하고 쑥스러워하면서도 저마다 생각에 잠겼다.
남편은 주사가 심했던 아버지로 인하여 어린 시절부터 갈등을 빚었고,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위한 바람막이가 되주던 존재였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갈등 때문에 어머니의 마지막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은, 남편에게 두고두고 죄책감으로 남았다. 남편은 심리극을 통하여 어머니에게 못다 한 작별 인사를 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눈물을 흘리는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며, 시어머니를 미워했던 아내도 남편의 상처에 처음으로 공감하며 마음 아파했다.
남편은 심리극을 통하여, 고된 일상에서 지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는 나약한 마음을 떨쳐내고 "힘들어도 할 수 있다"고 다시 의지를 다잡았다. 남편은 "10년가량 투잡을 뛰면서 많이 지쳤지만, 아내와 함께 빛을 보기 전까지는 조금 더 버텨보려 한다"고 책임감을 드러냈다.
아내는 남편의 손을 잡고 사람들과 함께 본인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아내는 "나를 이렇게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나갈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기면서 힘이 났다"고 털어놓았다.
부부는 서로를 끌어안으며 그동안 못다 전한 사랑과 고마움을 털어놓았다. 심리치료를 마친 후, 아내는 남편과 함께 4개월 만에 야외에서 산책을 즐기며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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