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현지시각) 브렌트퍼드전 당시 손흥민
지난 2일(현지시각) 브렌트퍼드전 당시 손흥민로이터=연합뉴스

손흥민(토트넘)에게는 '무관의 제왕'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닌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통산 126골과 69도움(토트넘 역대 1위), 2021~2022시즌 리그 득점왕 등 눈부신 업적을 쌓으며 자타공인 월드클래스이자 EPL와 토트넘의 전설로 자리매김했지만, 우승 트로피가 하나도 없다는 게 유일한 '옥에 티'로 꼽혀왔다.

그런 손흥민의 우승 도전이 또 한번 좌절됐다. 지난 7일 오전 5시(한국 시간) 영국 리버풀의 안필드에서 열린 2024~2025시즌 잉글랜드 리그컵(카라바오컵) 4강 2차전에서 토트넘은 리버풀에게 0-4로 대패를 당했다. 손흥민은 이날 풀타임을 소화했으나 슈팅이 골대를 맞추는 등 운이 따르지 않으며 공격포인트 달성에 실패했다.

지난달 9일 1차전에서 1-0 승리를 거두며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던 토트넘은, 강팀 리버풀의 파상공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합계 스코어 1-4로 역전을 당하며 준결승에서 허무하게 탈락하게 됐다. 지난 2008년 리그컵에서 마지막으로 정상에 오른 이후 모든 공식 대회에서 오랫동안 무관에 시달리던 토트넘은, 이번 시즌 무려 17년 만의 정상 탈환을 노렸으나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잘하는데, 트로피 한번 못 들었다

토트넘의 우승이 또다시 불발되면서 손흥민의 불운한 '무관력'도 덩달아 재조명받고 있다. 손흥민은 2010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프로에 처음 데뷔했고 레버쿠젠을 거쳐 2015년부터 잉글랜드 토트넘에서 벌써 10시즌째 활약중이다.

함부르크와 레버쿠젠은 손흥민이 몸담았던 시절만 해도 독일에서 각각 중위권과 중상위권 정도의 위상으로 우승 전력과는 거리가 있었다. 반면 토트넘은 손흥민이 입단하던 2010년대 중반 부흥기를 맞이해 한때 우승권 팀들에 뒤지지 않는 강력한 전력을 구축했다.

실제로 손흥민은 토트넘에서 그동안 몇 번이나 우승에 근접할 기회를 잡았으나, 번번이 중요한 고비를 넘지 못했다. 커리어를 모두 통틀어 준우승을 기록한 것만 무려 4번이다.

클럽에서는 2016-17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첼시에 이어 2위를 기록했고, 2018-19시즌에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리버풀에 패해 눈물을 흘려야 했다. 2020-21시즌에는 리그컵 결승에서 맨시티에 고배를 마셨다. 잉글랜드 축구협회(FA)컵에서는 4강이 최고성적이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2015년 AFC(아시아축구연맹) 호주 아시안컵 결승에서 홈팀 호주에게 연장전 끝에 패한 것이 손흥민에게 태극마크를 달고 가장 우승에 근접했던 유일한 순간이었다. 손흥민은 한국이 항상 우승후보로 꼽히는 아시안컵에 무려 4번이나 출전했으나 아직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했다. 와일드카드로 출전했던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는 8강에 그쳤다.

손흥민이 프로 데뷔 이후 클럽과 대표팀을 통틀어 유일하게 정상에 올라본 것은 23세 이하 연령대별 대회인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이었다. 하지만 아시안게임은 한국축구에서 사실상 '병역혜택'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주목받고 있을 뿐, 국제축구계에서는 그리 비중이 높은 메이저 대회가 아니다.

손흥민이 통산 3회 출전했던 FIFA(국제축구연맹) 성인월드컵의 경우, 현실적으로 한국의 우승 가능성은 높지 않다. 손흥민이 35세가 될 2027 AFC 사우디 아시안컵이 현실적으로 국가대표팀에서 우승에 도전할 마지막 기회로 꼽힌다.

그와 함께 역대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레전드들은 모두 메이저대회 우승을 경험했다. 차범근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UEFA컵(유로파리그) 우승을 두 차례나 경험했다. 박지성은 일본과 유럽무대를 넘나들며 각종 우승횟수만 총 17회에 이르는 최고의 우승청부사였다. 개인 기록 면에서는 이미 선배들을 초월했다고 평가받는 손흥민이 '우승복'에 있어서만큼은 얼마나 불운했는지 비교되는 기록이다.

세계 축구계를 통틀어도 손흥민 정도로 화려한 개인 커리어를 쌓은 선수가 우승이 전무하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손흥민도 울고갈 정도로 '무관의 제왕'으로 불리는 대표적인 선수 하면 역시 예전 팀동료인 해리 케인(바이에른 뮌헨)이 가장 먼저 거론된다.

'무관 듀오' 케인도 우승할 판인데...

 지난 6일 리버풀과의 카라바오컵 4강전 당시 손흥민의 모습
지난 6일 리버풀과의 카라바오컵 4강전 당시 손흥민의 모습로이터=연합뉴스

케인은 손흥민과 토트넘에서 8시즌이나 함께 호흡을 맞췄고 '손케 듀오'라는 환상의 콤비로 불릴만큼 전성기를 함께했으나 덩달아 우승과도 역시 인연이 없었다. 실제로 케인은 클럽과 대표팀을 아울러 준우승 경력만 무려 8번(리그 2회, 컵대회 6회)으로 손흥민의 두 배에 이른다.

케인은 무관 징크스를 탈피하기 위해 2023년 토트넘을 떠나 독일 분데스리가 최강팀으로 꼽히는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케인이 이적하자마자 뮌헨이 2023-24시즌 리그 연속 제패 기록이 끊기고 무관에 그치며 '케인의 저주'라는 조롱을 듣기도 했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도 유럽선수권(유로 2020, 2024)에서만 2회 연속 준우승에 그쳤다.

지난 2024년 유럽 통계 전문 사이트 '트랜스퍼마르크트'가 분석한 '유럽 5대리그에서 메이저 트로피를 들지 못한 선수 중 최다골 랭킹'에서 안토니오 디 나탈레, 비삼 벤 예데르, 아리츠 아두리스 등을 모두 제치고 압도적인 1위(손흥민은 5위)를 차지한 것도 케인이었다. 이들 무관 최다골 상위 빅5 중에서 현역 선수는 오직 케인과 손흥민 둘뿐이었다.

적어도 케인의 무관 징크스는 조만간 과거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케인의 소속팀 뮌헨은 2024-25시즌 분데스리가에서 16승 3무 1패 승점 51점으로 2위 레버쿠젠(승점 45)을 6점차로 앞서며 2년만의 우승탈환을 위해 순항중이다.

케인도 올시즌 19골을 넣으며 지난 시즌에 이어 2년 연속 리그 득점왕이 유력한 상황이다. 또한 올시즌만이 아니더라도 소속팀이 유럽 최고의 클럽 중 하나로 꼽히는 뮌헨이기에, 케인이 뮌헨을 떠나기 전까지 어떻게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릴 것은 시간문제로 꼽힌다.

반면 손흥민의 우승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는 최근 토트넘이 1년 계약 연장 옵션을 단행해 2026년까지 토트넘에 머물러야 한다. 토트넘은 올시즌 리그에서 8승 4무 13패로 승점 27점에 그치며 우승이나 다음시즌 유럽클럽대항전 진출은 고사하고 강등권 추락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그나마 유로파리그에서는 16강에 진출했고, FA컵도 남아있지만,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는 토트넘의 전력을 고려할 때 트로피를 들어올릴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 한번 쓰디쓴 좌절을 맛본 손흥민이 과연 은퇴하기 전까지 지긋지긋한 '무관지옥'을 탈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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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해리케인 무관의제왕 차범근 박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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