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교육이 몰락한 시대라고들 말한다. 지덕체의 균형 잡힌 발달을 이끄는 전인교육이며 민주시민 양성과 같은 교육의 본래 목적은 일선현장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오로지 입시, 더 나은 성적을 받아 전도유망한 미래에 디딤돌이 되는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일만이 교육의 유일한 목적처럼 군림한다.
가치가 사라지고 오로지 이익만이 대접받는 사회상은 이 같은 흐름을 더욱 가속화한다. 권위를 잃은 교사는 학생을 바라보지 않고, 스승을 만나지 못한 학생은 윗세대를 조롱하고 불화한다. 배움의 터전이 아닌 무한경쟁의 옥타곤으로 전락한 학교에서 아름다움이며 공동체와 같은 것들이 뿌리를 뻗을 자리는 없다고 해도 좋겠다.
교육이 무너지고 스승이 사라진 현실은 도리어 참교육과 존경할 만한 스승의 존재를 간절케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때때로 현실 가운데 좀처럼 마주할 수 없는 이상적 스승상을, 또 그를 통해 얻어지는 배움을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개봉 35년이 지나 다시금 재개봉한 <죽은 시인의 사회>도 참다운 교육과 스승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 포스터
롯데시네마
입시가 아닌 교육을 말하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명감독 피터 위어가 할리우드로 진출해 만든 장편인 이 영화는 미국 사립학교 웰튼 아카데미에 부임한 영어교사 존 키팅(로빈 윌리엄스 분)과 그 학생들의 이야기다. 웰튼 아카데미는 소위 아이비리그라 불리는 미국 명문 대학교들에 학생들을 많이 진학시키기로 유명한 명문고다. 자연히 학생과 학부모, 또 교사들의 관심 또한 입시에 매여 있다.
이야기는 웰튼 아카데미 출신으로 케임브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신임교사 키팅이 부임하며 본격적인 막을 올린다. 웰튼 아카데미 학생들의 판에 박힌 삶은 키팅의 부인 이후 완전히 달라진다. 키팅은 다른 교사들과 다르다. 교과서를 곧이곧대로 외우도록 하는 교수법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입시에 필요하지 않은 대목이라도 꽂히면 정성을 기울여 가르치고, 입시에 필요한 내용이라도 관심 밖이면 거침없이 반박한다. 그는 학생들에게 시험에 나오지 않는 희극이며 시를 읊어주며 세상과 문학, 나아가 예술이 절대 괴리된 것이 아님을 말한다.
그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죽은 시인의 사회> 개봉 뒤 한국사회에도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카르페 디엠 Carpe Diem' 정신이다.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송시에 나오는 구절로, 굳이 현대어로 풀자면 오늘 이 순간에 충실하란 뜻이 되겠다. 매 순간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라고, 너희들의 생각은 중요치 않고 시키는 대로 정진하라고만 가르치던 교사들과 달리, 너희가 원하고 느끼는 바에 충실하라는 키팅의 교수법은 그대로 혁신이며 혁명이 된다.
▲<죽은 시인의 사회> 스틸컷
롯데시네마
어른들은 몰라요, 아이들의 마음을
학생들이 키팅에게 마음을 주고, 그의 가르침에 공명하게 되는 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키팅이 학창시절 결성했던 비밀동아리 '죽은 시인의 사회'에 대한 사연이 알려지며 학생들은 아예 그 정신을 이어받아 같은 이름의 비밀동아리를 결성하고 회합을 한다. 시에 담긴 정신을 온전히 탐구하고 그를 삶 가운데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감수성 예민한 청년들에게 얼마나 큰 자극이며 성장의 동력이 되었을지 짐작되는 바다.
그러나 세상은 마음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입시와는 전혀 상관없는 비밀동아리의 존재가 학교에 알려지고 교장을 위시한 학교가 이들을 활동을 금지했다. 동아리 구성원들이 교칙에 어긋난 자유분방한 일들을 일삼는 데다 권위를 조롱하는 등의 태도까지 보여 어른들의 눈 밖에 난 건 결정적 문제가 된다.
동아리 구성원 중 하나인 닐 페리(로버트 숀 레오나드 분)는 제 아버지와 심한 갈등을 겪는다. 그의 아버지는 우등생인 닐이 의과대학에 진학해 의사가 되기를 바라지만, 그에겐 다른 꿈이 있다. 다름 아닌 연극배우다. 연극에 열망을 느껴온 닐은 셰익스피어 연극에서 주요한 배역을 따내며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없는 형편에 자식을 명문 사립대에 보낸 엄격한 부모의 소중한 자식이다. 부모가 제 자식이 입시를 팽개치고 연극에 매진하는 일을 곱게 보아줄 리 없다.
영화는 닐이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고 연극에 참여하는 과정을,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갈등을 그린다. 키팅의 조언에도 닐은 제 아버지에게 제가 원하는 바를 솔직히 털어놓지 못하고 갈등은 곪아만 간다. 그리고 <죽은 시인의 사회> 속 가장 큰 갈등을 일으키기에 이른다.
▲<죽은 시인의 사회> 스틸컷
롯데시네마
교육과 입시의 대립, 어디 영화만일까
<죽은 시인의 사회>는 청소년들이 어른들이 짜 놓은 교육체계, 입시를 향해 매진하는 형식화된 교육과 참된 인간을 길러내는 전인교육이 학교 현장에서 대립하는 모습을 담는다. 키팅의 교육은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그가 아끼는 학생은 죽고, 그의 영향을 받은 공동체도 외부의 압력 아래 갈등하고 분열하는 때문이다. 그의 학생 가운데 일부는 학교 측의 압력에 굴복해 키팅을 거짓으로 고발하기까지 한다. 학생들에게 부적절한 교육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 키팅은 마침내 해고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모두가 알고 있는 명장면, 아마도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장면을 통하여 키팅의 교육이 그저 실패한 것만이 아님을 그려낸다. 그의 제자가 월트 휘트먼의 싯구, 또 키팅의 별명이기도 한 '오 캡틴! 마이 캡틴!(O Captain! My Captain!)'이란 말을 외치고, 학생들이 하나하나 책상 위로 올라 떠나가는 키팅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내는 장면을 통해서다. 수업에 들어온 교장이 이를 제지하려 하지만, 심지어는 퇴학을 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지만 경의가 깃든 학생들의 인사는 멈춰지지 않는다. 비로소 학생들은 외부의 압력이 아닌, 저 자신의 의지로 현재에 충실한 행동을 해낸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진취적인 교사가 틀에 박힌 교육을 벗어나 학생들을 진정으로 지도하는 류의 영화 가운데 첫 손가락에 꼽히는 명작이다. 키팅 선생님은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의 가슴에 남아 쉬이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자리한다.
물론 키팅은 제 일터에서 잘렸고, 그가 떠남으로써 교육 현장에 마지막 남은 시인 또한 죽어버렸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마지막 숨을 다했고, 교육 현장엔 더는 자유를 꿈꾸는 시인이 설 자리가 없다.
영화의 결말은 그래서 보는 이에게 달렸는지도 모른다. "카르페디엠, 날 죽일지라도!"라고 외치며 제 유일한 스승을 떠나보내는 학생이, 또 그런 학생에게 퇴학을 시키겠단 엄포를 놓는 교장이, 그 모습을 보며 뒤돌아 떠나야 하는 교사가 이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 모두 앞에서 지킬 것과 버릴 것, 맞서 싸워야 할 것을 골라야 하는 우리가 이 영화를 진정으로 끝맺는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택하겠는가.
▲<죽은 시인의 사회> 스틸컷롯데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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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배울 것인가, 끝나지 않은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