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콘돔의 중요성'·'피임의 필요'

밈(meme)화 된 온라인상의 유행 때문인지, 짤막한 영화평 가운데서도 위와 같은 이야기를 종종 마주한다. 특히 여러 명의 등장인물이 거듭 실수해 차례로 위기에 빠지는 구성의 재난이며 공포영화에선 위와 같은 평을 더욱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아이들의 섣부른 행동이 커다란 위기를 초래하는 일련의 장면을 보고서 답답함을 표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영화 가운데 지각 있는 어른이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아이들이 저지를 때면 진짜 위기를 초래한 악당이며 재난 그 자체보다도 관객들로부터 더욱 큰 미움을 사게 되지 않던가.

콰이어트 플레이스 2 포스터
콰이어트 플레이스 2포스터롯데엔터테인먼트

아이디어로 쌓아 올린 명작 스릴러

2018년 저예산으로 제작한 영화가 대단한 성공을 거두며 거듭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는 <콰이어트 플레이스>에도 비슷한 평이 달리곤 한다. 첫 편인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도입부터가 소리를 내면 죽는 상황에서 부모 몰래 장난감을 챙겼다가 거기서 난 소리 때문에 죽음을 맞는 꼬마의 모습으로 채워지지 않던가. 그리하여 한국의 많은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고서 위와 같은 평을 쏟아냈던 것인데, 그것이 또 그대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고 즐거움을 유발하였단 건 그럴듯한 이야기다.

그러나 나는 < 콰이어트 플레이스 2 >를 보고 난 뒤 그것이 우리의 못남이며 저들의 나은 점이 아닌가 곱씹게 되었다. 눈앞의 위기와 갈등을 초래하는 미숙한 이를 겨냥한 비난이 결코 그 모두를 감당하며 나아가는 선택보다 낫지 않다는 것을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는 전편의 끝에서부터 시작한다. 전작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미국 전역에 갑자기 출몰한 괴생명체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인간, 그중에서도 도시 외곽 마을에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뤘다. 괴생명체들은 압도적인 물리력으로 수 킬로미터를 수 십 초 만에 주파하고, 드높은 건물도 손쉽게 오르내린다. 이들이 세상을 감각하는 방식은 절대적인 청각에 의존하는 것이다. 수백 미터가 떨어진 곳에서 작은 기침 소리라도 들리라치면 순식간에 달려들어 아작을 내니 사람들은 숨죽일 수밖에 다른 대책을 생각해 내지 못한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2 > 스틸컷
<콰이어트 플레이스 2 > 스틸컷롯데엔터테인먼트

위험천만한 세상을 헤매는 어느 가족

다행인 것은 청각 이외의 감각이 없다시피 하단 것이다. 눈으로 무얼 보지도, 코로 냄새를 맡지도 못하는 모양으로, 소리만 내지 않으면 바로 앞에서도 다른 생명체를 지각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처음의 재난 뒤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생존에 전념하는 것으로 수백일을 버텨낸다.

< 콰이어트 플레이스 2 >는 막내아이와 남편을 잃고 홀로 남은 세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주인공 애블린(에밀리 블런트 분)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괴생명체들과의 혈투 끝에 살아남은 이들은 불타는 집을 버리고 새로운 터전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며칠 만에 남편의 오랜 친구인 에밋(킬리언 머피 분)을 만나기에 이른다. 그는 2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자식과 아내를 모두 잃어버리고 홀로 남아 있는 상태다.

애블린의 맏딸인 리건(말리센트 시몬스 분)은 전작의 끝에서 괴생명체들을 물리칠 수 있는 무기를 확보했다. 청각장애인인 그녀의 보청기가 스피커와 만나 내는 하울링(공명현상으로 인한 잡음)이 바로 그것이다. 이 소리를 들으면 괴생명체들을 고통에 몸서리치며 다른 행동을 하지 못한다. 그 틈을 노려 드러난 약점을 타격하면 괴생명체를 어렵지 않게 잡아낼 수 있다. 리건은 이 소리를 전국으로 송출되는 라디오에 실어 보냄으로써 괴생명체를 물리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그녀는 유일하게 전파를 보내오는 방송국을 향하여 먼 여정을 떠나기로 선택한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2 > 스틸컷
<콰이어트 플레이스 2 > 스틸컷롯데엔터테인먼트

괴물에 맞서 가족을 지키려는 이들의 분투

< 콰이어트 플레이스 2 >는 에밋의 은신처에 남아 가족을 지키려는 엄마 애블린의 분투와 방송국을 찾아 떠난 리건과 그녀와 동행하는 에밋 사이를 오가며 긴장감 있게 전개된다. 이제 겨우 한 살인 아기에게 필요한 물품을 구하러 외출하는 애블린과 그 사이 홀로 동생을 지켜야 하는 아들 마커스(노아 주프 분)의 상황이 한 축이고, 괴생명체만큼 두려운 존재가 되어버린 인간들을 피하여 안전한 땅을 찾아가는 리건과 에밋이 또 다른 축이 된다. 두 상황 모두에서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는 설정이 관객마저 숨을 죽일 만큼 긴장감 있게 작용한다.

< 콰이어트 플레이스 2 >의 차별점은 비슷한 스타일의 스릴러와 달리 문제의 해소를 어른들에게서 찾지 않는단 점에 있다. 비중 있는 배우인 에밀리 블런트와 킬리언 머피를 기용함에도 이들이 문제를 해소하는 결정적 역할을 맡는 것은 아니다. 괴생명체에게 결정타를 치는 주역은 어른이 아닌 아이들, 소년소녀라 해야 적합할 리건과 마커스다. 이들이 온갖 위기를 넘어 가족을 구하고 세상을 구하기까지의 여정을 영화가 잘 만들어진 스릴러이자 그럴듯한 성장기로써 그려낸다.

저편에선 방송국 마이크에 보청기를 걸어 하울링을 일으키는 리건이 있고, 이편에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하울링 소리를 괴생명체 낮짝에 가져다 대고 총알을 박는 마커스가 있다. 애블린과 에밋이 아닌, 어린 리건과 마커스의 활약으로 괴생명체의 위협을 걷어내는 모습은 그대로 이 영화의 메시지가 된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2 > 스틸컷
<콰이어트 플레이스 2 > 스틸컷롯데엔터테인먼트

아이를 지키는 어른, 모두를 구하는 아이

물론 어른들, 애블린과 에밋은 각기 제 곁에 있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분투한다. 어른들은 아이를 지키고, 아이들은 제 부모며 어른들의 기대를 뛰어넘어 문제를 해소하는 결정적 역할을 맡아낸다. 말하자면 지난 세대와 자라나는 다음 세대의 절묘한 역할 분담이다.

한국 관객들은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에 대해 너무 많은 아이를 가진 가족형태며 개연성을 일부 훼손하는 임신과 출산, 또 아이들이 초래하는 실수와 위기 등을 흠잡고는 한다. 또 영화 내내 엿보이는 가족주의가 할리우드의 전형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생각해 보자면 비슷한 설정으로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자면 결코 하지 않을 선택을 이 시리즈가 이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면 <콰이어트 플레이트> 시리즈의 선택이 흔한 비판보다도 건전하고 건강한 사회상에 터 잡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한 쌍의 부모 아래 넷이나 되는 아이들이 있고, 부모는 온몸을 내던져 제 자식들을 지키며, 아이들은 제 나름대로 성장하여 부모가 생각지 못한 해법을 찾아내는 일련의 과정이 그대로 생명력 강한 사회의 특성이 아닌가 싶어지는 것이다. 이 영화에 쏟아진 한국의 비판들은 그대로 실수며 실패, 손해를 용납하지 않는 한국형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 아닌지 씁쓸한 마음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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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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