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는 나를 살려준 작품"이라고 언급했다.
박찬욱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는 나를 살려준 작품"이라고 언급했다. CJ ENM

"제가 이 영화(공동경비구역 JSA)로 해외 영화제를 많이 갔는데요, 그때마다 꼭 받는 질문이 있어요.' 실제로 판문점에서 찍었냐'는 거예요. 그래서 '실제로 찍을 수 있었다면, 이런 영화가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어요. 그런데 참... 아직도 변함없이 이 영화의 내용이 젊은 세대에게도 똑같은 감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건 어찌 보면 슬픈 일이에요. 개봉 50주년 때는 그저 옛날얘기로 말할 수 있는 환경이 돼 있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 공동경비구역 JSA > 개봉 25주년을 기념해 영화의 주연 배우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박찬욱 감독이 한 말이다.

영화를 연출한 박 감독과 주연 배우 송강호·이병헌·이영애·김태우는 4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GV)에 참석했다.

이 자리는 CJ ENM이 30주년 기념 비저너리(Visionary)에 < 공동경비구역 JSA >이 선정되면서 마련됐다. CJ ENM은 2020년부터 방송·영화·음악·예능 등 한국 대중문화 전 분야에서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토대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대체 불가의 인물들을 '올해의 인물' 격인 비저너리로 선정해 왔다. 다만, 올해는 영화 부문에서 인물이 아닌 작품으로 < 공동경비구역 JSA >을 선정했다.

"비장한 각오로 만든 작품"

 4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관객과의대화(GV)에 앞서 포즈를 취하는 감독과 배우들. 왼쪽부터 배우 이병헌, 이영애, 박찬욱 감독, 김태우, 송강호.
4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관객과의대화(GV)에 앞서 포즈를 취하는 감독과 배우들. 왼쪽부터 배우 이병헌, 이영애, 박찬욱 감독, 김태우, 송강호. CJ ENM

이날, 박 감독은 2000년 개봉해 580만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를 두고 "당시 비장한 각오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영화에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둔 남북한 병사들이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이 담겼기에 '국가보안법'이 신경 쓰였다는 뜻이었다.

"지금도 국가보안법 존재하지만, 영화를 만들던 1990년대 후반에는 국가보안법이 좀 더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어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해석이 가능한 법 조항이 있어서요.

그런데 우리 영화(공동경비구역 JSA)는 민간인도 아니고 (남북)군인의 이야기가 나오니까 많이 긴장했죠. 반국가단체와 그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 또는 고무한다고 보고 찬양고무죄로 걸면 위험하겠다 싶으면서요. 제작사인 명필름 관계자들과 비장한 각오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개봉 전 6.15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거예요. 그래서 분위기가 좀 좋아졌고, 무사히 개봉했습니다. 다행이죠."

< 공동경비구역 JSA >는 판문점 비무장지대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과 이를 둘러싼 남북 군인들의 이야기를 큰 줄기로 삼는다. 남북 군인은 함께 공기놀이하고, 담배를 나누어 피고, 김광석의 노래를 듣는다. 영화에서 극중 남한 장군은 "이곳 사람은 빨갱이와 빨갱이의 적, 딱 둘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하지만, 군사분계선 초소를 넘나드는 남북 군은 서로를 '적'이 아닌 '형·동생'으로 부르며 우정을 쌓아간다.

이 때문에 영화는 분단 현실을 인간적인 시선으로 풀어내며 한국 영화사의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한 작품으로 꼽힌다. 이전까지 북한 주민들을 악마화하거나 심각한 영양실조로 걸린 사람들로 묘사하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는데, < 공동경비구역 JSA >는 처음으로 북한군을 '평범한 사람들'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북군인 자신들의 우정을 설득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이들은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며 결국 '분단'의 꼬리표를 잘라내지 못한다.

"영화 두 개 말아먹은 감독이었지만..."

 왼쪽부터 박찬욱 감독, 배우 송강호, 배우 이병헌.
왼쪽부터 박찬욱 감독, 배우 송강호, 배우 이병헌. CJ ENM

한국 영화에서 다루지 않은 소재와 주제, 게다가 남북의 긴장감도 상당했던 1990년 후반에 배우들은 어떻게 영화 출연을 결심했을까.

영화에서 조국을 향한 충성심을 지닌 채 남한군과 우정을 나누고 의리를 지키는 북한군 중사 오경필을 연기한 배우 송강호는 "사실 한 번 거절했던 시나리오"라고 털어놨다. 그는 "시나리오가 너무 밀도 있게 꽉 짜여 있었다. 한국 영화가 이걸 과연 구현할 수 있을까, 시나리오만 완벽하고 (결국) 이상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 믿음이 가지 않았다"고 웃으면서도 "박 감독님 영화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징인데, 이 작품에도 지울 수 없는 기품이 있고, 사라지지 않는 깊이가 있다"고 했다.

남한군 병장 이수혁을 연기한 이병헌은 < 공동경비구역 JSA >를 두고 "흥행의 맛을 보게 해 준 영화"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이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처음으로 시상식에서 '흥행 배우 이병헌'이라고 제 자신을 소개했다"며 "기분 좋은 인사였지만, 숫자에 연연하는 영화인들의 풍토에 반항하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이전에 찍었던 영화들이 망해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숫자로만 불리는 게 조금 싫었다"고 털어놨다.

처음엔 북한군의 호의를 경계하던 남한군 남성식 역을 한 배우 김태우는 작품에 합류하게 된 계기를 두고 '우연이자 천운'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우연찮게 시나리오를 먼저 보게 됐다. 제 데뷔작 '접속'의 제작사인 명필름에서 제작을 맡았기 때문에 꼭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며 "오늘 영화를 보고 나니 '공동경비구역 JSA'는 저에게 천운 같은 작품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배우 이영애는 영화에서 중립국 감독위원회 법무장교 소피 E. 장 소령 역할을 맡았다. 사실 원작소설 < DMZ >에서 중립국 감독위원회 법무장교 역은 중년 남성이었다. 영화화되는 과정에서 젊은 한국계 혼혈여성으로 설정이 변했다. 이영애는 "(캐스팅 당시) 내가 좋은 조건의 배우는 아니었는데, 좋은 작품이 되려니까 좋은 분들이 모인 것 같다"며 "타이밍도 좋았고 대본도 좋았다"고 했다.

박 감독은 "당시 영화를 두 개 말아먹고 흥행의 쓴맛을 본 상황"이었다며 "세 번째 기회마저 놓치면 'JSA'가 유작이 될 거라는 절박한 마음이었다. 이 영화는 나를 살려준 작품"이라고 떠올렸다. 실제 박 감독의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과 < 3인조 >는 흥행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었다. 이후 그는 < 공동경비구역 JSA >을 통해 한국영화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히며, <복수는 나의 것>·<올드보이>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 갔다.

"21세기였다면, 퀴어 코드 녹였을 것"

  '공동경비구역 JSA' 관객과의대화(GV)에 앞서 포즈를 취하는 배우 이영애
'공동경비구역 JSA' 관객과의대화(GV)에 앞서 포즈를 취하는 배우 이영애CJ ENM

박 감독은 작품의 뒷이야기도 털어놓았다. 세월이 지난 후 이수혁 병장이 살아서 제3국에서 오경필 중사를 만나러 가는 엔딩을 선호했던 그는 결국 '희망'을 담는 대신 지금의 엔딩을 택했다고 전했다. 분단의 현실이 남북 군인 각자의 비극으로 이어지며 결국 이수혁 병장은 자기 목숨을 끊었지만, 영화 마지막은 남북군인 네 명이 우연히 함께 찍힌 사진으로 장식하며 좋았던 한때를 기억하게 만든다.

박 감독은 '퀴어 코드'를 생각했다는 말도 전했다. 그는 "작품 제작 당시 퀴어 소재로 만들고 싶었으나, 제작사의 반대로 무산됐다"면서 "만약 영화가 21세기에 만들어졌다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만, 이 영화를 만들었던 1999년에는 실현하기에 어려운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주연 배우들은 영화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송강호는 "30년이란 긴 세월 동안 배우로서 숱한 굴곡과 일이 있었지만, 이 영화는 저에게 잊히지 않는 첫 번째 화양연화(꽃처럼 아름다운 시절)이자 가장 그리워할 만한 화양연화"라고 강조했다.

이병헌은 "외국에 가서 저를 소개할 때 가장 먼저 얘기하는 작품이 이 영화"라며 "여전히 젊은 영화 팬들은 한국 영화를 논할 때 이 영화를 빼놓지 않는다"고 했다. 이영애는 "20대에 이 작품을 만나서 30대에 좋은 작품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내게 기적 같은 작품"이라고 전했다.

 CJ ENM이 30주년 기념 비저너리(Visionary)에 선정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관객과의대화(GV)가 4일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렸다.
CJ ENM이 30주년 기념 비저너리(Visionary)에 선정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관객과의대화(GV)가 4일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렸다.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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