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 파트2 스틸컷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 파트2스틸컷롯데컬처웍스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의 말로 잘못 알려진 이 문구는 멸망이란 절대적 사건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는 인간의 자세를 다시 보도록 하는 명 구절이다.

누군가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오늘과는 다른 삶을 추구할 것이라 말한다. 심지어는 온갖 부정과 범죄를 저지르고 다른 이를 해하고라도 오늘의 쾌락을 키울 것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 실제로 국가의 멸망과 사회의 몰락 앞에서 무질서한 폭동이 번져나간 사례를 우리는 역사 가운데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그와 같지는 않음을 어떤 철학자들은 이야기했다. 내일에 대한 기약과 약속 없이도 오늘의 할일을 묵묵히 해내려는 이들이, 승리에 대한 기대 없이 전장에 나서고 수확에 대한 믿음 없이도 밭을 가는 이들이 세상엔 존재하는 것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이들,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는 철학을 지닌 단단한 이들이 이 세상엔 한줌이나마 남아 있다.

인류 멸망까지 남은 시간 6개월

모두 두 편으로 나누어 한국에 개봉한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 두 번째 작품 파트2도 그와 같은 이야기다. 워낙 긴 제목 탓에 <데데디디>로 줄여 부르기도 하는 이 영화의 전편 < 데데디디: 파트1 >은 6개월 후 인류가 멸망한다는 충격적 결말을 예고하며 막을 올렸다. < 데데디디: 파트2 >는 그로부터 이어진 이야기로, 인류가 종말에 이르는 마지막 6개월을 다룬다.

전작은 외계 침략자들이 타고 온 거대한 우주선이 도쿄 상공에 출현한 뒤 3년 여 동안 벌어진 이야기를 다뤘다. 주인공들은 여고생들로, 그중에서도 단짝인 카도데와 오우란이 극을 이끌어간다. 처음 우주선이 나타났을 때 인류는 그를 요격하려 시도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을 펼쳤으나 그 모든 행위가 무용하단 사실이 드러나고 사실상 그를 방치해왔다. 미군이 발사한 특수무기는 그에 피폭된 피해자만을 낳았고 외계 생명체에게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분명히 인류의 기술로는 범접할 수 없는 비행체가 나타났는데도 인류의 삶은 근본적으론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듯 보인다. 학생들은 공부를 하고 입시에 매진하며 정치인은 표를 모으고 시민들은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외계인들이 세상 가운데 그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말이다.

외계인이 나타나자 인간은 둘로 나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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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데디디: 파트2 >는 본격적으로 외계인이 인간 사회 곳곳에 출몰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외형부터 확연히 다른 외계인들은 인류문명보다 발달한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인간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무기를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 결과 인간들은 무차별적으로 이들을 사냥하기 시작하는데, 외계인들은 일방적으로 학살당할 뿐 대응하지 못한다.

물론 인간들 가운데서도 외계인을 죽이지 않아야 한다는 인도적 단체가 결성되고 활동하지만 그 반대자들에 비해 세가 강하다고는 할 수 없다. 거리에선 연일 외계인을 제거하자는 쪽과 공존하자는 쪽이 두 패로 갈라져서 소리 높여 싸운다. 이 가운데 테러를 일으켜서까지 여론을 움직이려는 급진적 단체가 생겨나고, 두 집단의 대립은 갈수록 격렬해진다. 세상 또한 꼭 그만큼 어지러워지니 인간 세상은 그렇게 멸망을 향해 다가서는 것이다.

< 데데디디: 파트2 >는 외계인의 처리문제를 두고 극명히 갈라진 두 개의 집단이 일으키는 충돌 한 편으로, 예고된 파국을 차츰 드러낸다. 그건 다름 아닌 우주선의 폭발이다. 알고 보니 도쿄 상공에 뜬 우주선은 심하게 고장이 난 상태로, 우주선을 몰고 온 이들도 그를 고치지 못해 마침내 지구에 발을 디뎠다는 이야기다. 원자로가 폭발하기까지 남은 시간이 불과 몇 개월인데 인간들은 갈라져 저들끼리 싸우고 외계인을 사냥하니 제대로 된 대응이 이뤄질 턱이 없는 것이다.

세상이 멸망한다 해도 일상을 소중히 챙기는

이 같은 상황에서 주인공인 카도데와 오우란이 할 수 있는 건 소시민적 행동뿐이다. 인류의 미래를 결정지을 거대한 변화를 앞에 두고서도 소시민이 일으킬 수 있는 변화가 얼마 없음을 < 데데디디: 파트2 >는 자연스레 그려낸다.

그는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 가운데 빚어지는 수많은 사건들과 그에 대한 대응과도 얼마 다르지 않아서, 소시민들이 소위 정치가며 기업가보다 판단력이 떨어지지 않을지라도 세상에 얼마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주어지는 변화에 적응할 뿐임을 알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저 거기서 끝나는가. 영화는 카도데와 오우란이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저들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저들의 우정을, 관계를 공고히 하고 할 수 있는 한 선을 이루려는 이들의 노력이 그럴듯하게 담긴다. 또 그 과정에서 전작에서 넌지시 내보인 초과학적 도구들과 그를 활용한 과거의 사연들이 색다르게 풀려나간다. 이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인류가 계속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스스로 긍정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돌아보게도 된다.

난잡하고 어설프지만 의미가 있다면

< 데데디디: 파트2 >는 다분히 일본적인 애니메이션이다. SF란 장르적 특성과 인류의 멸망을 앞둔 혼란기를 다루었단 점에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그보다는 십대 소녀들의 우정과 성장을 다룬 청춘드라마의 색깔을 보다 진하게 드러낸다. 다분히 일본적인 캐릭터들이 여럿 등장하고, 정치며 사회상 또한 일본의 특색이 강하게 묻어난다.

영화가 여러모로 난잡하다거나 뿌려진 떡밥들이 충실히 회수되지 않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처음엔 독창적 설정처럼 출발한 작품이 여느 SF영화와 얼마 다르지 않은 모습에 일본 청춘드라마를 대강 섞은 정도로 주저앉고 마는 것도 명백한 단점이다. 그럼에도 애니의 특성을 활용해 실사라면 구현할 수 없는 외계인의 등장과 종말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간 시도만큼은 인정할 만하다.

인간이란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삶을 제대로 돌아볼 수 있는 존재다. 인류 또한 마찬가지여서, 그 끝을 눈앞에 두어야 지난 역사와 오늘의 세상을 제대로 돌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멸망을 눈앞에 두고서야 정말 중요한 것을 깨닫는 <데데디디: 파트2> 속 인물들의 모습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남다르게 다가온다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테다.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 파트2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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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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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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