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가수겸 DJ 구준엽의 아내로 유명했던 대만 여배우 서희원(徐熙媛·쉬시위안)이 별세했다. 한국과 대만, 그리고 중화권 주요 언론들은 지난 2월 2일 '서희원이 가족들과 일본 여행 중 급성폐렴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향년 48세.
서희원의 동생이자 방송인인 서희제(쉬시디)도 3일 소속사를 통해 "언니 서희원이 안타깝게도 우리 곁을 떠났다"고 밝히며 공식적으로 사망 사실을 확인했다.
산차이로 스타 된 서희원
▲방송 장면 갈무리
tvN
1976년생인 서희원은 18세였던 1994년 동생 서희제)와 SOS(Sisters of Shu; 서가자매)라는 걸그룹 활동으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언니인 서희원은 '대S', 동생 쉬시디는 '소S'라는 예명으로 불리며 아이돌 미소녀 스타 자매로 이름을 알렸다.
서희원은 2001년 그녀의 대표작이 된 <유성화원>에서 주인공 '산차이(한국판 금잔디 역)' 역을 출연하며 배우로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유성화원>은 인기 만화 원작으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지에서 드라마화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꽃보다 남자>시리즈의 대만 버전이다. 여기서 서희원은 엘리트 사립학교에서 부유한 집안의 상속자들과 얽혀서 고군분투하는 당찬 서민층 출신 소녀를 연기했다.
이 작품이 대만을 넘어 아시아권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서희원은 특유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통하여 대만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지금까지도 드라마 팬들 사이에서는 원작 여주인공의 캐릭터를 실사로 가장 잘 구현해낸 작품으로 서희원의 산차이를 첫손에 꼽는 이들이 많다.
이후 2000년대 대만을 중심으로 서희원은 영화와 드라마, 시대극과 현대극을 넘나들며 활발한 연기활동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대중들에게는 주로 <유성화원>의 영향으로 귀엽고 청순한 동안 미소녀나, 로맨스 주인공 이미지가 가장 강하게 각인됐지만, 정작 서희원은 액션에서 코미디, 판타지까지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며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 여배우였다.
2003년에는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한 고전 <천녀유혼>의 드라마 버전에서 주인공인 섭소천(영화판의 왕조현 분)을 맡아 성숙미가 부각된 영화 버전과는 또 다른 느낌의 깜찍 발랄한 처녀 귀신 캐릭터를 구현해 냈다. 2004년에는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멜로드라마 <전신(마르스)>에서는 <유성화원>의 상대역이던 주유민과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춰, 전작과는 또 다른 어둡고 우울한 매력이 돋보이는 성인 멜로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2010년에는 오우삼 감독이 연출하고 정우성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검우강호>에서 여성살수 엽탄청 역할을 맡아 기존의 이미지와는 180도 다른 팜므파탈이자 악역도 훌륭하게 소화하여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이 밖에도 드라마 <구혼사무소>·<전각우도애>·<포말지하>, 영화 <커넥트>·< 미래경찰X >·<전성열련>·<용봉점>·<대무생> 등 다수의 작품에서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꾸준하게 활동을 이어갔다.
서희원·구준엽의 만남과 이별
▲방송 장면 갈무리tvN
하지만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서희원의 필모그래피는 눈에 띄게 감소했다. 2011년 들어 중국인 중국인 사업가 왕샤오페이(왕소비)와 결혼했다. 이후 가정과 출산, 육아에 집중하느라 바쁜 시기를 보내며 자연스럽게 활동이 줄어들었다.
서희원은 공식적인 은퇴선언을 한 적은 없지만, 이미 2010년대 후반 이후 사실상 연기활동을 잠정 중단한 상태였다. 다만 이 기간에도 간간이 방송에는 패널이나 게스트로 출연하여 얼굴을 비췄다. 이 시기 여동생 서희제와 함께 출연했던 한 중화권 여행 예능에서는 연기활동 재개가 쉽지 않은 이유를 '한 젊은 후배 스타배우의 엄마 역할을 제안받고 충격을 받아 고사했다'며 역할이 한정된 40대 여배우로서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또한 서희원의 배우 커리어에 발목을 잡은 가장 큰 원인은 건강 문제였다. 사실 서희원은 젊은 시절부터 몸이 약한 편이었고, 첫 번째 결혼 기간 동안 남편과의 불화로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증과 뇌전증 등이 더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첫 번째 남편인 왕샤오페이와는 결국 2021년 협의 이혼했다. 이후 서희원은 한동안 별다른 대외 활동 역시 칩거하며 긴 공백기를 가졌다.
서희원의 이름이 다시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2022년 전 연인이던 구준엽과의 깜짝 재회와 두 번째 결혼 발표였다. 무려 2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두 사람의 '영화보다 영화 같은 로맨스'는 한국과 대만 양쪽에서 모두 큰 화제가 됐다.
훗날 구준엽은 <유 퀴즈 온 더 블럭> 등에 출연해 서희원과의 연애사를 밝혔다. 서희원은 본래 구준엽의 팬이었고, 1998년 구준엽이 활동하던 듀오 '클론'이 대만에 진출하며 서희원 자매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처음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느껴 교제를 시작했다.
당시 '인기 연예인의 공개연애'에 대한 국내 대중들의 보수적 시선 등으로 결국 이별했다. 구준엽도 훗날 서희원과의 이별을 "매우 후회했고 미안했다. 그때는 내가 비겁했다"고 여러 차례 고백했다. 또한 결별 직후 서희원의 대표작이 된 <유성화원> 출연 당시 구준엽이 전한 뒷이야기에 따르면, 극 중에서 서희원이 드라마에서 입고 나왔던 의상 중 하나가 배우 본인의 옷이었는데 바로 구준엽과 교제 시절 '커플룩'으로 구매했던 재킷이었다고. 드라마를 통하여 서희원의 의상을 보고 추억을 떠올린 구준엽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시간이 흘러 서희원은 결혼을 하고 자녀까지 낳았지만, 구준엽은 이후로도 50대까지 독신으로 남았다. 그러던 2021년, 서희원의 이혼 소식을 우연히 뉴스로 듣게 된 구준엽은 자신이 그녀를 아직 잊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당시 아직 간직하고 있던 서희원의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서희원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번호를 바꾸지 않고 있었고, 두 사람은 20년 만에 다시 전화로 재회하면서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했다. 구준엽은 "첫 통화 이후 또 너무 통화가 하고 싶어서 (전화할) 거리를 막 만들었다. 그때부터 가슴에 묻어뒀던 사랑이 올라왔다. 대화 몇 번 해보고 20년 전으로 바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대만의 국민형부 된 구준엽
당시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이라 구준엽과 서희원은 영상통화로만 데이트를 이어갔다. 대만의 방역정책상 외국인이 입국하려면 현지인의 가족만이 가능했기에, 구준엽은 서희원과 재회를 겸하여 결혼하자고 프러포즈 했고, 서희원도 이를 수락했다.
구준엽은 서희원과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며 한국과 대만 양쪽에서 모두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대만에서는 구준엽의 입국과 자가격리 과정까지 일일이 생중계할 만큼 열광했고, 현지 누리꾼들은 '광더우(光頭, 대머리) 국민 형부(國民姐夫)' 등의 친근한 애칭으로 불릴 만큼 많은 응원을 보냈다.
훗날 구준엽은 서희원과의 20년 만의 첫 재회 순간을 담은 영상을 전격 공개하기도 했다. 구준엽은 당시를 회상하며 "희원이가 먼저 용기를 내어 확 안기는 순간 '역시 이 여자야'라고 생각했다"고 고백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20년의 세월과 국적, 거리, 팬데믹마저 모두 뛰어넘어 젊은 시절 못다 이룬 사랑을 확인하고 뜨거운 포옹을 나누는 두 사람의 용기 있는 모습은 수많은 이들에게도 큰 감동을 선사했다.
이후 두 사람은 한국과 대만에서 혼인신고를 마치고 정식 부부가 됐다. 약 3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부부의 인연을 이어가며 '잉꼬 커플'로 한국과 대만 양쪽에서 모두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구준엽은 서희원과 결혼 이후 아내가 거주하는 대만 타이베이의 위도와 경도를 새긴 타투를 한 사실을 고백하며, "서희원이 있는 곳이 내가 닻을 내릴 곳"이라고 선언했다. 구준엽은 실제로 대만에서 정착하며 새 가정을 꾸리고 활동도 이어 나갔다.
2022년 10월 <보그 타이완>지의 화보 촬영과 인터뷰는 부부가 결혼 이후 드물게 공식 석상에서 함께 활동했던 유일한 기록으로 남았다. 여기서 서희원은 "오빠 성격이 정말 좋다. 여태껏 화내는 걸 본 적이 없다"라며 "자가격리를 마치고 대만에서 오빠를 보는 순간 정말 감동적이어서 서로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라며 구준엽을 향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부의 행복했던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설 연휴 동안 가족과 일본 여행을 떠났던 서희원은 현지에서 독감에 이은 폐렴 합병증으로 너무나 갑작스럽게 구준엽과 팬들의 곁을 영원히 떠나고 말았다.
서희원이 최근까지도 비교적 건강한 모습을 보이며 SNS에 "클론 포에버. DJ KOO 정말 멋지다"며 남편 구준엽의 무대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올리거나,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연말을 보내는 사진도 공개했기에 대중들 역시 갑작스러운 이별을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건강을 회복하여 언젠가는 '배우로서의 서희원'도 다시 복귀하기를 기대했던 팬들의 바램도 이제는 더 이상 이룰 수 없게 됐다. 지금도 한국과 중화권의 각종 SNS와 커뮤니티에는 서희원에 대한 애도와 추모의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다.
2022년 <유퀴즈> 출연 당시 아내 서희원을 두고 "희원이는 사랑이 너무 많다. 같이 있으면 사랑이 막 묻는 느낌이 들 정도다. 저는 매일 표현하면서 우리 희원이에게 제가 줄 수 있는 사랑을 다 주고 싶다"고 한 구준엽의 애틋한 고백은, 끝내 이루지 못한 소망으로 남아 팬들에게도 역시 먹먹함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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