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67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가수 비욘세가 '올해의 앨범상' 수상 후 발언하고 있다.
지난 2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67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가수 비욘세가 '올해의 앨범상' 수상 후 발언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67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켄드릭 라마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 2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67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켄드릭 라마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래미 역사상 최초로 '디스곡'이 올해의 노래상을 받았다.

지난 2월 2일(현지 시각) 미국 LA 크립토 아레나에서 2025 제67회 그래미 어워드가 열렸다. 래퍼 켄드릭 라마는 자신의 노래 'Not Like Us'(낫 라이크 어스)로 그래미의 주요 본상(General Field)에 해당하는 올해의 노래상, 올해의 레코드상을 받았다.

래퍼 드레이크(Drake)와 '디스전'을 펼치는 가운데 발표된 노래 'Not Like Us'는 단순한 디스곡을 넘어섰다.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에 오르고, 스포티파이에서 10억 건 이상의 스트리밍 횟수를 기록하는 등 2024년 최고의 랩 히트곡이 됐으며, 서부 힙합의 새로운 송가로 우뚝 섰다. 대중음악 역사에 남을 명반들을 여러 장 발표해 왔지만, 그가 그래미에서 본상을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외에도 켄드릭 라마가 최우수 랩 노래, 최우수 랩 퍼포먼스, 최우수 뮤직비디오 등 총 다섯 개 부문에서 수상하면서, 통산 그래미 수상 기록을 22개로 늘렸다. 수상 소감에서 "랩 음악이 가장 강력한 음악이다"라며 장르의 자존심을 외친 켄드릭 라마는 다음주 펼쳐질 미국 슈퍼볼 하프타임쇼에 대한 기대감 역시 높였다.

지난해 < COWBOY CARTER >(카우보이 카터)를 발표한 '팝의 여왕' 비욘세 역시 그래미의 주인공이 됐다. 비욘세는 본상 중 하나인 '올해의 앨범상'을 비롯해 최우수 컨트리 앨범상과 최우수 컨트리 듀오/그룹 퍼포먼스상 등을 받았다. 이로써 비욘세는 역사상 가장 많은 그래미 트로피(35개)를 보유한 아티스트이자, 가장 많이 후보에 오른 아티스트(99개)의 자리를 더욱 공고히 했다.

< Lemonade >(레모네이드, 2016)와 < Renaissance >(르네상스, 2022) 등의 명반이 당시 '올해의 앨범상' 유력 후보로 여겨졌으나, 매번 좌절된 바 있다. 비욘세는 어린 시절부터 컨트리, 아메리카나 음악을 즐겨 들었고, 기존에도 컨트리 음악을 시도했던 바 있다.

< COWBOY CARTER >는 백인의 음악으로 여겨지는 장르를 흑인 여성의 목소리로 재조명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장르의 경계를 무색하게 만든 비욘세는 1999년 로린 힐 이후 처음으로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을 받은 흑인 여성, 그리고 최초로 최우수 컨트리 앨범상을 받은 흑인 아티스트로도 기록됐다.

본상 중 인생에 단 한 번만 받을 수 있는 '최우수 신인 아티스트상'은 채플 론(Chappell Roan)에게 돌아갔다. 보수 기독교의 질서가 지배하는 미국 중서부 출신의 채플 론은 성소수자 여성인 자신의 정체성을 녹여낸 음악과 콘셉트, 퍼포먼스로 2024년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오랜 무명 시절을 겪었던 채플 론은 "음악 레이블이 아티스트에게 생계를 위한 임금과 의료 보험을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보호에 나설 필요가 있다"며 뼈 있는 수상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여성 뮤지션, 록·힙합·팝에서 모두 빛났다

 지난 2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67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사브리나 카펜터가 공연하고 있다.
지난 2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67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사브리나 카펜터가 공연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해 그래미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여성 뮤지션들의 초강세는 올해에도 이어졌다. 데뷔 10년 차 가수지만 오랫동안 저평가받아왔던 팝스타 사브리나 카펜터는 최우수 팝 보컬 앨범상 등 두 개의 그래미를 받았다. 사브리나 카펜터는 자신을 세계적인 팝스타로 만든 'Espresso'(에스프레소)와 'Please Please Please'(플리즈 플리즈 플리즈)를 무대에서 모두 선보였다.

지난해 발표한 < BRAT >(브랫) 앨범으로 압도적인 찬사를 받은 것은 물론, 'Brat Summer'(브랫 섬머)라는 문화적 현상마저 끌어낸 찰리 xcx도 최우수 댄스 팝 레코딩상과 댄스 일렉트로닉 앨범상 등을 받으며 첫 그래미 트로피를 챙겼다. 찰리 xcx는 그래미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시상식의 마지막 공연을 장식하기도 했다.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여성 신예 래퍼 도치(Doechii)는 에미넴, 제이콜 등의 거물을 제치고 최우수 랩 앨범상을 받았다. 로린 힐, 카디비에 이어 세 번째로 이 상을 받은 여성 래퍼가 된 도치는 "나를 지켜보는 흑인 여성들에게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곧 그 증거다"라는 수상 소감을 전하며 눈물을 흘렸다. 최근 내한 공연을 펼친 세인트 빈센트(St.Vincent)도 최우수 록 노래 등 3개의 상을 받았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얼굴 역시 등장했다. 바로 신곡 'CRY FOR ME'와 'Timeless'를 부르기 위해 등장한 위켄드(The Weeknd)였다. 위켄드는 자신이 발표한 2020년 최고의 히트곡 'Blinding Lights'가 그래미의 어느 부문에도 후보에 오르지 못하자 "그래미는 부패했다"고 선언했다. 그는 최종 심사를 결정하는 '비밀위원회'의 존재를 문제삼으며 줄곧 시상식을 보이콧했다. 이른바 '위켄드 스넙' 으로 불린 사태 이후 그래미에 대한 음악 팬들의 신뢰는 크게 추락했다.

"그래미는 달라져야만 했고, 행동으로 옮겼다"는 레코딩 아카데미 CEO 하비 메이슨 주니어의 고백이 보여주듯, 이후 그래미는 비밀위원회를 폐지했으며, 여성과 유색인종 등으로 구성된 선거 인단을 대거 추가하는 등의 변화를 꾀했다. 그래미와 극적인 화해를 이뤄낸 위켄드가 2026년 그래미에서 어떤 성적을 거두게 될지에도 관심이 집중될 듯하다.

한편 올해 그래미 어워드는 LA를 휩쓴 '화마'의 상흔이 남아있는 가운데 열렸다. 공연 내내 산불 피해자들에 대한 모금을 진행했고, 아티스트들의 연대와 응원 역시 전해졌다. 올해의 앨범상 수상자를 발표한 주인공 역시 유명 인사가 아니라 LA의 소방관이었다.

지난해 타계한 프로듀서 퀸시 존스를 추모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스티비 원더는, 자신이 40년 전 참여했던 노래 'We Are The World'를 불렀다. 에티오피아 난민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가 LA를 위로하는 노래로 변신했다. 환란과 재해, 폭력의 시간에도, 음악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과 같은 노래였다.

 지난 2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67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채플 론이 공연하고 있다.
지난 2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67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채플 론이 공연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2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67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래퍼 도치가 공연하고 있다.
지난 2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67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래퍼 도치가 공연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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